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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412
한자 金益烈
영어음역 Kim Ikryeo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찬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군인
출신지 경상남도 하동
성별
생년 1921년연표보기
몰년 1988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제7사단장|제8사단장|제1관구 사령관|제1군단장|제2군단장|국방대학원장

[정의]

1948년 제주 4·3사건 때 국방경비대 제9연대장을 역임한 군인.

[활동사항]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소위에 임관되었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일본군 학병으로 귀환하였고, 1946년 1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소위에 임관되었다.

1947년 9월 제9연대 부연대장(소령)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 1948년 2월 제9연대장(중령)으로 승진한 직후 제주 4·3사건이 일어났다. 김익렬은 무장대에 대한 무력 진압에 앞서 선무 작전을 전개하여 4월 말 무장대 지도자 김달삼(金達三)과 평화 협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5월 초 미군정이 강경 진압 방침으로 선회하였고, 5월 5일 제주도에서 열린 수뇌부 회의에서 김익렬조병옥(趙炳玉) 경무부장과 충돌하였다. 결국 5월 6일 제9연대장에서 해임되어 여수 주둔 제14연대장으로 전출되었다. 후임에는 박진경(朴珍景) 중령이 부임하여 강경 토벌 작전을 추진하다가 1948년 6월 18일 부하에게 피살되었다.

1948년 6월 박진경 연대장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받아 미군 CIC(Counter Intelligence Corps: 육군 소속의 방첩대)의 조사를 받았다. 1948년 8월 충청남도 온양 주둔 제13연대장으로 발령받았고, 1950년 6월 경기도 문산 주둔 제13연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북진 작전을 수행하였다.

1952년 5월 제8사단장, 1955년 7월 제7사단장, 1960년 제1관구 사령관, 1962년 제1·2군단장, 1967년 5월 국방대학원장 등을 역임하고 1969년 1월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예편 후 말년에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담은 유고를 남겼다

[상훈과 추모]

1988년 12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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