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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388
한자 金蓍耉
영어음역 Kim Sigu
이칭/별칭 몽휴(夢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제주목사
출신지 경상북도 예천읍
성별
생년 1724년(경종 4)연표보기
몰년 1795년(정조 19)연표보기
본관 경주(慶州)
대표관직 제주목사|예문관검열|사헌부지평|동지돈녕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몽휴(夢休). 아버지는 사헌부장령을 지낸 김광운(金光運)이다.

[활동사항]

사마시에 합격하고 진사가 된 뒤 1754년(영조 30) 문과 증광시에서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1754년 강원도 원주의 보안찰방으로 밀려났다가 곧 복귀하여 사헌부지평이 되었으나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아 1758년 전라남도 광주의 경양찰방으로 좌천되었다.

1762년(영조 38) 사헌부장령이 되었고, 1767년(영조 43) 전사관(典祀官)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었다. 1772(영조 48)년 승정원승지에 올랐고, 이후 동지돈녕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이르렀다.

1781년(정조 5) 3월 김영수(金永綏) 후임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유배인의 죄상을 심문하였는데, 유배인 중에는 그의 정치적 반대파인 조정철(趙貞喆)[1751~1831]이 있었다. 조정철의 애첩 홍윤애(洪允愛)[?~1781]에게 조정철의 비행을 말하라고 모진 고문을 가하였으나, 홍윤애는 끝까지 거부하고 사망하였다. 김시구는 1781년 7월 유배인을 잘 단속하지 못한 일로 체포되었으며, 제주판관 황인채(黃麟采)[1716~?]는 파직되었다. 한편 조정철은 순조가 즉위하여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풀려났으며, 1811년(순조 11)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홍윤애의 묘소를 찾아가 넋을 위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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