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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372
한자 金尙憲
영어음역 Kim Sangheon
이칭/별칭 숙도(叔度),청음(淸陰),문정(文正),서간노인(西磵老人),석실산인(石室山人)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제주어사
성별
생년 1570년(선조 3)연표보기
몰년 1652년(효종 3)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제주안무어사|좌의정|동부승지|예조판서

[정의]

조선 중기 제주어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 시호는 문정(文正). 일명 서간노인(西磵老人)·석실산인(石室山人)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돈녕부 도정(都正)이었던 김극효(金克孝)이며, 우의정 김상용(金常容)[1561~1637]의 동생이다.

[활동사항]

1590년(선조 23)에 진사가 되었으며, 1596년(선조 29) 임진왜란 중에 실시된 정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부수찬(副修撰)·좌랑(佐郞)·부교리(副校理)를 지냈다.

제주에서 1601년(선조 34) 9월 역적 길운절(吉雲節)[?~1601], 소덕유(蘇德裕)[?~1601] 등의 모반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제주어사로 파견되어 1602년 1월 말에 떠났는데 민정을 위유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선조 때 제주목사였던 이경록(李慶祿)[1533~1599]은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당시 방어에 많은 공적을 남겼는데, 우도에 숨어 있는 왜구와 접전을 벌이려고 수산방호소를 성산으로 옮겨 외성을 축조할 때였다. 마침 1601년에 제주어사 김상헌이 부임하여 이를 보고 “성산은 제주의 한 군더더기 땅인데 외적에게 오히려 포위될 위험이 있어 계략치고는 졸작이다.”라고 혹평하였는데, 1602년(선조 35) 제주목사 성윤문(成允文)이 부임하여 다시 수산 쪽으로 방호소를 환원하였다.

김상헌은 1602년(선조 35)에 고산찰방(高山察訪)과 경성도호부판관을 지냈고, 1608년(선조 41)에 중시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으며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1636년(인조 14)에는 예조판서 재임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화론을 배척하고 끝까지 주전론을 펴다가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자 안동에서 은거하였다. 1639년(인조 17)에는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압송되어 6년 후 귀국하였다.

김상헌은 서인 청서파의 영수로서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의 화의를 배척하는 주전론을 강력히 주장, 의기와 간박(懇迫)한 충정에 앞장섰다. 또한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 대노(大老)라고 존경을 받았다.

[저술 및 작품]

저술에는 『조천록(朝天錄)』·『남사록(南槎錄)』·『청평록(淸平錄)』·『설교집(雪窖集)』·『남한기략(南漢紀略)』 등으로 구성된 『청음집』 40권과 『야인담록(野人談錄)』·『독례수초(讀禮隨抄)』 등이 있다. 『청음집』은 40권 14책으로 된 목판본이며, 1671년(현종 12)경 김상헌이 직접 편집한 초고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또한 100여 편에 달하는 묘도문자(墓道文字)를 제작하였으며, 서독은 별로 많지 않으나 1623년(인조 1)에 쓴 「여북저김판서서(與北渚金判書書)」가 있고,「김충암묘문(金沖庵廟文)」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산6에 있으며 1987년 2월에 경기도기념물 제100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1653년(효종 4)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661년(현종 2)에 효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조정에서는 1682년(숙종 8)에 당시 예랑이었던 안건지(安健之)[1646~?]를 보내어 귤림서원(橘林書院)을 사액하고 김정(金淨)[1486~1521], 송인수(宋麟壽)[1487~1547], 정온(鄭蘊)[1569~1641]과 함께 김상헌을 제주의 사현(四賢)으로 봉향하였다. 1695년(숙종 21)에 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추가로 봉향하여 이들을 제주의 오현(五賢)이라고 해서 오늘날까지 도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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