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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166
한자 高瀛豪
영어음역 Go Yeongh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 1186[한림남1길 1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창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 1186[한림남1길 16]지도보기
성별
생년 1920년연표보기
몰년 2004년연표보기
본관 제주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1934년 구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6학년 때 일본인 교장 나카야마[中山重義]가 조선어 사용을 억제하는 것에 항의하여 정학 처분을 받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심상고등소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노동 현장에서 조선인에 대한 극심한 차별을 체험한 후 항일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42년 4월 중학교 동창 윤병윤(尹炳允)·한종치(韓宗治)·정진환(鄭鎭煥)·하백문(河伯文)·이행철 등과 함께 오사카의 한 자택에서 조국 광복에 나서기로 서약하고 조선독립청년단을 결성하였다.

1942년 6월 조선독립청년단 회합에서 비밀을 엄수할 것, 민족 의식을 앙양하는 운동을 펼칠 것 등을 결의하였다. 또한 한국 내의 애국 동지와 종교계 인사들과 연계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원과도 접촉을 시도하기로 결정하였다.

1943년 2월 고베시의 한 자택에서 회합을 가지고 있을 때 일제에 모두 체포되었다. 당시 고영호는 메이지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체포 후 일제의 혹독한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1944년 1월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1945년 7월 만기 출감하였다.

해방 후 1945년 10월 초 오사카에서 열린 한민족궐기대회에 참석하였다. 1947년 봄 메이지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중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전쟁 중에 몸에 박힌 파편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았고 완쾌 후 여러 회사에서 근무하였으며, 1984년 귀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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