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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석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083
한자 姜泰碩
영어음역 Kang Taeseok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유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미술가|서양화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1동
성별
생년 1938년연표보기
몰년 1976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제주여자중고등학교 교사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의 서양화가.

[개설]

제도권의 예술적인 행태의 답습을 거부하고 스스로 한국적인 미학을 찾기 위해 현대 미술의 실험 정신 속에서 독자적인 길을 갔던 정열적인 화가이다. 한국적이고 제주적인 미학을 찾는 과정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던 중 갑자기 폐결핵으로 요절한 비운의 화가이다.

[활동 사항]

1950년 제주 북 초등학교, 1954년 오현 중학교, 1957년 서울 예술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 예술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제주시 남궁 다방에서 서양화 15점을 갖고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제주 최초의 학생 개인전으로 1955년 7월 6일자 『제주 신보』는 “양질감 있는 강군의 솜씨가 관객들의 놀라움을 샀다”고 칭찬하였다. 이후 1957년 서울 대학교 미술 대학 회화과에 입학하였고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였다.

1962년 1년 간 제주 여자 중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64년 제주시 일도동에 아뜨리에 1964을 열고 창작에 전념하면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1966년 제주시 길 다방에서 유화 40여 점으로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폐결핵으로 서울로 상경하였다.

1968년 폐결핵이 악화되어 경상남도 밀양에 있는 절로 요양을 떠났고, 1970년 경기도 산촌을 돌며 창작 활동을 하였다. 1973년 서울의 예술 화랑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여 「야화(野話)」와 「상(像)」시리즈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1975년 제주시 정 다실에서 개인전을 열어 「새와 소년」·「약수터에서」·「문명과 시」 등 37점을 선보였고, 속초시 지혜 다방에서 소품 20점을 전시하였다. 1976년 1월 31일 폐결핵이 악화되어 2월 1일 자정 속초 도 립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작품 세계에는 두 개의 상징적 요소가 들어 있다. 하나는 많은 서양 거장들의 길을 따라 걷는 것으로 이는 잘 닦인 길을 답습함으로써 얻어지는 이득으로써 그들의 형상의 본질을 습득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그 길에서 습득한 형상의 장점과 단점을 새로운 길을 닦는 데 쓸 요량의 도구가 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강태석이 표현·추상·환상이라는 현대 미술의 큰 흐름에 비켜 있지 않은 까닭도 바로 이 두 가지 요소가 절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태석의 작품은 경향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오늘날 쉽게 분류하는 추상화가나 구상화가라는 구분법은 그에게 적절하지 않으며, 현대 미술의 전 영역을 실험적으로 넘나들며 지금도 영향력이 센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강박 관념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강박 관념은 서구 거장과의 한판 승부처럼 보일 만큼 서양적 형상을 응용적으로 독해하고 있으며, 그들의 작법을 활용해 자신의 삶과 정서, 감정, 민족적 정서, 풍토적 서사들을 엮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강태석의 자세는 적의 무기로 적을 공격하는 것과도 같은 셈이다. 따라서 강태석의 작품들은 비록 서양의 작법에 의해 구현된 한국적인 형상에 이르고자 하는 실험적 노력이기 때문에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이론적 맥락과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술 및 작품]

대표작으로는 「묵시」·「어부」·「충일(充日)」·「흙붉은 오름」과 「야화(野話)」 및 「상(像)」 시리즈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61년 제10회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서 입선하였으며, 1976년 제주시 대호 다실에서 박유승, 고영석 등의 제자들이 주선하여 45점으로 유작 전시회, 1983년 제주시 동인 미술관에서 유작 초대전을 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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