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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057
한자 姜金鍾
영어음역 Kang Geumjong
이칭/별칭 문소(文巢),소범(素凡)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 207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순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소설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 2072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17년연표보기
몰년 1991년연표보기
대표경력 백수문학회 회장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호는 문소(文巢)·소범(素凡)이다. 아버지는 강모수(姜毛遂)이며 어머니는 한정순(韓貞順)이며 부인은 임남철(林南喆)이다. 3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활동사항]

화북사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어머니를 따라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삼열리 815번지로 이사하여 어려운 소년기를 보냈다. 12세 때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저사구(猪飼區)에 있는 심상소학교 3학년에 다니다가 6개월 만에 귀국하여 삼양보통학교 4학년에 들어갔으나 가정 형편상 5학년 때 자퇴하였다.

1936년 4월 다시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점원·신문 배달·공원(工員) 등 여러 일을 하면서 기독교청년회 영어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또 니혼대학 부설 오사카전문학교 법과야간부 별과(別科) 등에서 공부하면서 니혼대학의 조선인유학생학우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1월 경판상업학교 야간부 3학년에 입학하여 이듬해 졸업하였는데, 이 무렵에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1940년 5월 초순 제주 출신 김봉각(金奉珏)을 비롯하여 김병목(金丙穆)·한만숙(韓滿淑)·고봉조(高奉朝) 등과 함께 조선 독립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 흥아연구회(興亞硏究會)를 조직하였다.

1940년 5월 중순 흥아연구회를 계림동지회(鷄林同志會)로 명칭을 바꾸고 각기 업무를 분담하였다. 김봉각은 조직과 자금책을, 강금종은 교육책을, 김병목은 연락책을 맡았다.

계림동지회는 조선 독립의 방안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쑨원[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채택하였다. 이에 입각하여 김봉각은 정치 이론을, 강금종은 사상 이론을, 김병목은 문예·종교를, 고봉조는 세계 동향을 담당하여 연구하기로 하였다. 또한 지식인층을 포섭하여 마르크스주의와 삼민주의를 연구할 것, 니혼대학 부설 오사카전문학교 관계자들의 포섭에 노력할 것 등을 결의하였다.

1941년 2월 25일 계림동지회 조직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42년 10월 12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1944년 4월 2일 출옥하였다.

출옥 후 누나가 살고 있는 사할린으로 가서 임남철과 결혼하였다. 1945년 해방되자 사할린에 소련군이 진주한다는 소문을 듣고 귀국하였다. 부인이 연기군 서면 출신임을 연고로 하여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겼다.

조치원에서 창작 활동에 몰두하여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고, 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국제 PEN 클럽 한국본부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백수문학회 초대 회장, 대한노인회 연기군지부 부설 노인학교장 등을 지냈다.

[저술과 작품]

1948년 『어린 천사』를 발표하였고, 1955년 대전방송국 작품공모에서 「아내의 입장」이 당선되었다. 1956년 「난류(暖流)」를 발표하였으며, 1959년 충북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아저씨의 선물」이 당선되었다. 1964년 『자유문학』에 「상흔(傷痕)」을 발표하였고, 1966년 「미움의 세월」, 1969년 『흘러간 이웃들』, 1972년 「먼 여로(旅路)」 등을 내놓았다.

[상훈과 추모]

1982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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