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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에서 기계 장치 없이 나잠업으로 미역·천초 등의 해초와 소라·전복·해삼·문어 등을 캐면서 생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해녀라고 한다. 아직도 제주도 전역에 5,000명이나 되는 해녀가 특이한 나잠수 작업으로 생업을 영위하고 있다. 해녀들은 자신들의 바다에서의 물질 작업을 ‘칠성판을 등에다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 한다고 표현할 만큼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을 해내는 여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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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제주인에게 수여되었던 위계제(位階制)의 하나. 고려의 무산계는 문무 양반에게 수여된 문산계(文散階)와 대비된다. 이것은 향리, 노병(老兵), 여진(女眞)의 추장, 그리고 공장(工匠)과 악인(樂人)과 함께, 탐라 지역의 성주(星主)와 왕자(王子) 및 추장(酋長) 등의 토착 지배층에게 수여된 위계였다. 고려의 중앙 정부가 탐라민들에게 무산계를 수여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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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제주의 역사.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470여 년 동안 제주도 사회는 변화와 시련을 겪으면서 그 역사를 전개하였다. 이를 살펴보기 위하여 편의상 몇 개의 시기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우선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와 대몽 활동을 펴다가 고려·몽고 연합군에게 평정되는 시기를 기준으로 크게 고려 전기와 후기로 나누기로 한다. 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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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건으로 중산간 마을의 토벌이 시작되었을 때 고봉만의 형들은 그전에 일본으로 돈 벌러 갔고 하나 남은 아들인 고봉만이 위험해질까봐 아버지는 해안가 마을로 내려가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소 판돈을 쥐어주자 그걸 가지고 혼자 열다섯에 내려와서 건입동 서부두 쪽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어린 때는 이것저것 심부름을 하다가 가마니 장사를 시작했다. 제주의 가마니를 ‘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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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의 말을 명나라에 바친 무신. 14세기 후반은 원나라와 명나라의 교체기로서 명나라는 원나라의 잔존 세력을 정벌하는 데 필요한 전마(戰馬)를 확보하기 위해 고려 조정에 제주 말을 보낼 것을 자주 요구하였다. 반면, 제주의 목호(牧胡), 즉 몽고가 제주에 설치한 국립 목장의 우두머리 세력은 제주 말을 거두려는 고려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였다. 따라서 고려가 명나라에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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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판관을 지낸 문신. 본관은 부령.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 초명은 김백일(金百鎰)이다. 아버지는 김의(金宜)이다. 1232년(고종 19)에 실시된 과거시험에서 2등으로 합격하였다. 애초 김구는 정원부(定遠府: 현재 평안북도 정주군 사록(司祿)에 보임되었으나, 평소 김구와 감정이 좋지 않던 고향 사람 황각보(黃閣寶)가 가문의 결점을 들어 해당 관청에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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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고려 후기 제주판관(濟州判官) 김구(金坵)의 공덕을 기리는 비. 김구의 본관은 부안이며 어려서부터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고려시대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원부사록(定遠府司錄)과 제주판관이 되었다. 원종 때는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되어 원나라와 관련한 문서 관계 일을 하였다. 제주민속박물관 관장이었던 진성기(秦聖麒)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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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의 삼별초를 평정한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본연(本然). 아버지는 병부상서를 지낸 김효인(金孝印)[?~1253]이다. 1270년(원종 11) 고려 정부가 몽고와 강화를 맺자 배중손(裵仲孫) 등이 삼별초 난을 일으켜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를 근거지로 삼아 항전을 계속하였다. 김방경은 1271년(원종 12) 몽고 장수 흔도(炘都)·홍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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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안무사로 파견된 관리.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에서 목호(牧胡: 원나라의 牧子)들의 횡포가 심하여 백성의 생활이 심한 위협에 처하였다. 이에 고려 정부는 1369년(공민왕 18) 9월에 제주도민을 위로하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김세봉을 제주안무사(濟州按撫使)로 파견하였다. 김세봉은 제주목사 박윤청(朴允淸)과 함께 어명을 수행하고자 하였으나 목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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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의 삼별초 항쟁을 이끈 장수. 1270년(원종 11) 고려 조정은 몽고와 강화를 맺고 몽고가 요구해 왔던 개경 환도를 하기로 하였다. 삼별초는 개경 환도에 반대하고 배중손(裵仲孫) 등을 중심으로 대몽 항전을 결의하였다. 그 후 삼별초는 황해 일대를 경략하면서 진도로 내려가 진도를 거점으로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몽고와 고려에 완강히 저항하였다. 또한 삼별초 소속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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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재배하는 산형화목 미나리과의 두해살이 풀. 학명은 Daucus carota var. sativa이고,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이며, 분포 지역은 유럽·북아프리카·아시아이다. 높이가 1m 정도이며 열매는 긴 타원형이고 가시 같은 털이 있다. 채소로 널리 심고 있는데, 옛날에는 말의 사료로 여겨 별로 즐기지 않았다. 비타민 A와 비타민 C가 많으며,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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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원나라가 제주에 만든 목장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 아막은 부대, 조합, 부락, 단체, 주군(州郡)을 의미하는 몽골어로, 한문식으로 표기하여 애마(愛馬)라고도 한다. 제주 지역의 동과 서에 설치된 것이었기 때문에 동서아막이라고 불렀다. 제주 지역에는 목축에 유리한 완경사의 지형과 초지가 동쪽과 서쪽 지역에 넓게 분포해 있어서 두 곳에 각각 아막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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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1270년(원종 11) 삼별초와 고려 관군이 결전을 벌였던 격전지. 대몽 항쟁을 전개하던 전라남도 진도 삼별초의 이문경 부대가 1270년(원종 11) 제주 지역에 들어와 왕정 복고를 꾀하는 개경 정부측이 보낸 관군과 맞서기 위해 진을 쳤던 곳이다. 이문경은 전라남도 진도의 삼별초 정부가 제주 지역을 확보하고자 보낸 장군이다. 고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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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말의 수호신인 방성(房星)에 제사 지냈던 마조단의 옛 터. 방성은 천사성이라고도 하며 곧 말의 조상을 의미하는데 마조단에서 지내던 제를 마조제라고 하며, 제주 지역에서는 인류에게 유용하게 쓰인 말에 대한 감사와 기원을 담아 제를 지냈다. 제주 지역에서 언제부터 말의 조상신인 방성에 대해 제를 지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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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성곽. 명월진성은 왜구의 침공에 대비하여 목성(木城)으로 만들었다가 훗날 석성(石城)으로 쌓은 조선 시대 성곽이다. 명월진성이 있는 명월포는 고려 후기인 1374년(공민왕 23) 제주에 살던 목호(牧胡: 원나라가 운영하던 국영 목장 관리자)가 반란을 일으키자 최영 장군이 상륙하여 난을 진압하고 돌아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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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공민왕대에 제주도의 몽골족 목호(牧胡) 세력이 주동해 일으킨 반란. 제주 지역은 공민왕의 반원 정책이 단행되는 1356년(공민왕 5)부터 몽골족 목호 세력과 고려가 수차례 맞부딪치는 현장이 되었다. 특히 양자의 충돌은 명나라가 개입함에 따라 1374년에 총력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로써 목호 세력은 최후를 맞이했고, 제주 지역은 제주 사람들이 큰 희생을 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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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 ‘순천송광사장고려판천순판불전(順天松廣寺藏高麗板天順板佛典)’이라는 기록에 따라 최근 제주 묘련사에서 불경 판각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밝혀지면서 고려시대 제주 불교를 새롭게 해석할 근거를 마련한 중요 사찰로 관심을 모르고 있다. 위 기록은 1296년에 작성되었으며, 오랜 제작 기간을 고려한다면 해인사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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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발생한 12세기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의 제주 민중의 항거. 제주도에서 민란이 일어난 시기는 탐라가 고려에 병합되던 12세기부터이다. 이때의 민란은 탐라령의 횡포나 고려의 압정에 저항하면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삼별초 정벌 직후 원은 제주도를 그들의 직할지로 삼았는데, 외세의 지배 하에서 탐관 오리의 가혹한 수탈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고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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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생활에 필요한 조형물을 제작하는 기술이나 물건.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화산섬 제주도의 중심에는 1,950m의 한라산이 서 있다. 이렇듯 독특한 자연 환경은 민속공예품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제주도의 여러 민속공예품은 재료와 형태에서 육지의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한라산 북쪽에 위치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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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외부의 침략에 대비해 제주 지역에 축조한 유적. 제주 해안 방어의 중요한 목적은 왜구의 빈번한 침입을 막는 데 있었다. 제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중국으로 가는 길에 위치해 왜구들이 땔감과 물·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왜구는 고려 말부터 제주에 자주 침입하여 방화·약탈 및 인명 살상을 일삼았다. 더구나 추자도 근해에 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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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도로 망명한 원나라 왕족. 14세기 후반 원명교체기에 탐라에는 원나라의 왕족 세력이 자발적으로 망명해 왔다. 또한 명나라가 잔존 세력으로 버티던 원나라의 왕족을 평정하여 탐라에 유배를 보냈다. 귀순한 원나라 왕실의 수많은 자손들도 탐라로 보냈다. 1388년(창왕 1) 명나라는 귀순한 원나라 왕족 달달친왕(達達親王) 등 80여 호를 탐라에 보낸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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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주군은 제주특별자치도 북부와 부속 도서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1946년 8월 1일에 시작되어 2006년 6월까지 존속했던 행정구역으로 2006년 7월 1일 제주도가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제주시에 통합되었다. 탁라(乇羅)라 불리면서 5세기 후반부터 한반도 내 고대국가와 관계를 가졌던 제주 지역은 백제·신라에 이어 고려와 속국의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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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신앙하는 전통 종교. 제주불교는 삼국 시대를 전후하여 제주 지역에 전파된 이후 고려 중기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 중기 이후에는 민간신앙과 혼재되어 이어져 내려왔다. 근현대에 들어와 다시 중흥기를 맞았고 현재까지 제주도의 대표 종교로서 뿌리 내리고 있다. 고려 시대의 불교는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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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시행되는 민사, 형사 및 행정 사건의 재판권 행사에 관한 모든 제도. 좁은 의미의 사법은 재판 작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민사·형사 및 행정 사건 등의 재판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소송 절차를 거쳐 어떻게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선언하는 국가의 행위이며, 대립하는 양 당사자의 주장을 들어보고 공평한 제3자의 지위에서 국가가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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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8년(충숙왕 5) 제주 지역에서 사용(使用)과 금성(金成)이 일으킨 민란. 1318년 사용(使用)과 금성(金成)은 대호군(大護軍)장공윤(張公允)과 제주부사 장윤화(張允和)의 탐욕과 행패에 대한 저항으로 민란을 일으키고, 탐라의 최고위 토착 세력인 성주(星主)와 왕자(王子)도 축출하기에 이르렀다. 달아난 성주와 왕자는 고려 조정에 민란 사실을 알렸고, 이에 놀란 조정에서는 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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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역을 항몽의 최후 거점으로 삼았던 고려 무신정권 때의 특수 부대. 1. 송담천 전투 삼별초는 무신 정권의 무력적 보위 기구이자, 40여 년 지속된 대몽 항쟁의 핵심 부대였다. 이들은 원에 굴복하여 강화를 맺은 정부에 반기를 들어 1270년(원종 11) 진도를 거점으로 새 정부를 세웠다. 삼별초는 진도에 거점을 정한지 3개월 후인 1270년 11월 이문경(李文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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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적인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 제주도는 일생에 한 번은 꼭 찾아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로 꼽히는 ‘환상의 섬’이다. 21세기 해양 시대를 맞아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소위 베세토(beseto) 라인의 중심축에 제주가 위치하고 있어 동북아시아의 중심 지역으로 제주가 부상할 것이라 예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주의 이면에는 제주인들의 처절한 항쟁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항쟁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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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 1동·삼양 2동·삼양 3동, 도련 1동·도련 2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제주시 동부권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형성된 대규모 마을 유적에서 다양한 생활 도구와 곡물들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인간 생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도시와 농촌, 그리고 어촌의 생활과 경관이 어우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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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보릿가루나 밀가루에 탁주를 부어 발효시킨 반죽에 팥소를 넣고 성형하여 쪄낸 빵. 제주에는 상례나 제사에 참석할 때 부조하는 풍속이 있어 부조용으로 많이 쓰였다. 저장성이 길어 여름철 제사나 추석 명절 제찬으로도 널리 쓰였다.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는 상애떡을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떡이라 하여 ‘상외떡’으로 부르기도 하며, 단지 손님접대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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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에 유배된 승려. 석기는 충혜왕의 서자로서, 1352년 충혜왕과 사기 그릇 장수인 임신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충정왕은 석기를 승려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깎아 만덕사에 맡겼다. 하지만 원나라에서 석기를 소환할 것이라고 생각한 공민왕은 만덕사에서 석기를 데려왔다. 1356년(공민왕 5) 6월, 전호군 임중보가 석기를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반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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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을 통해 체득한 삶의 내력과 실상을 비유의 방법으로 서술한 관용구. 제주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에는 제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두루 반영되어 있다. 의식주와 관련한 생계관(生計觀)과 삶의 도리와 사리를 일깨우는 계세관(戒世觀), 길흉화복을 타고난 천명으로 여기는 운명관(運命觀)에 관한 내용이 주축을 이룬다. 제주 지역의 속담은 제주도의 열악한 풍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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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 수정사는 고려시대 한라산 북쪽 지역을 대표하는 비보사찰이었다. 한라산 남쪽 지역을 대표하는 법화사와 더불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사찰로서 조선시대에도 성쇠를 거듭했다. 조선 전기 태종 때까지만 해도 법화사와 마찬가지로 노비 130명을 거느리고 있었던 대가람이었다. 태종 때의 배불 정책으로 노비를 30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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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왔던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넓은 의미의 식생활은 식품의 산출, 식품의 조리, 가공 및 유통, 상차림의 규범, 의례와 음식의 관행, 용구와 식기, 식품의 금기 및 풍습, 기호 등 음식물 섭취 행위와 관련된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제주인의 식생활은 자연 재해와 척박한 자연 환경을 극복하면서 이루어낸 섬 문화의 결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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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역사. 제주도는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한반도 남쪽을 거쳐 일본 큐슈[九州]로 이어지는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중도 기항지가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과거 유물·유적의 분포지가 대부분 제주도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의 선진문물의 유입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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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가 80여 년간 원의 지배를 받던 시기. 제주는 남송과 일본을 잇는 바닷길의 요충지였다. 이에 원은 제주를 남송과 일본 정벌의 전초기지와 병참기지로 이용하기 위해 일찍부터 눈독을 들여왔다. 그러던 중 원은 제주에 들어와 웅거하던 항몽 삼별초를 1273년(원종 14) 고려와 연합하여 평정한 것을 계기로 이곳을 직할령으로 삼게 된다. 이후 원은 제주를 남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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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오름. 원나라 때 이 오름 중턱에 원나라의 당인 원당(元堂)이 있어서 원당봉[오름], 조선시대 때 원당 봉수가 세워진 데서 망오름, 삼양동에 있어서 삼양봉, 3개의 능선에 7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원당 칠봉[일명 삼첩 칠봉]이라고도 한다. 원당봉은 망오름·도산 오름·앞오름·펜안 오름·나부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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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사찰 터. 원당사 창건에 대한 전설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 기황후(奇皇后)는 원나라로 끌려간 뒤 원나라 순제의 제2황후가 되었다. 태자가 없어 고민하던 중, 한 스님이 북두의 명맥이 비추는 삼첩칠봉(三疊七峰)에 사찰을 짓고 탑을 세워 불공을 드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고려의 풍수가들까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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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13세기 후반 원나라가 제주도를 지배할 때 설치했던 관아 터. 몽골족의 나라 원(元)은 1273년(원종 14) 제주도에 들어와 있었던 고려의 마지막 항몽 세력인 삼별초(三別抄)를 고려와 연합해 평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제주 지역을 직할령으로 삼고, 관부(官府)를 설치했는데, 그 터가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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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의 삼별초 항쟁을 주도한 무신. 1258년(고종 45) 최씨정권이 붕괴되는 무오정변에 낭장(郎將)으로 참여하였는데, 이후 승진이 빠른 것으로 보아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가 개경 환도에 반대하고 대몽 항전을 내세워 새로운 정부를 세울 때 대장군으로서 좌승선(左承宣)에 임명되었다. 좌승선에 임명된 것으로 보아 문학적 소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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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선무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길안. 자는 원질(元質). 길안임씨의 시조이다. 1360년(공민왕 9) 과거에 급제하여 개성참군이 되었고,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병법에 밝아 원수 김득배(金得培)의 막하에서 활약하였다.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으로 이공수(李公遂)를 따라 원나라에 갔다. 당시 충선왕의 서자인 덕흥군이 왕위를 탐내어 원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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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제주 지역의 중산간 목초지에 만들어진 목장 경계용 돌담. 제주도민들이 잣 또는 잣담이라 부르는 잣성은 1970년대 제주도 지형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용어이다. 『제주계록(濟州啓錄)』에는 장원(牆垣)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주는 고려시대 원 간섭기에 대규모 목마가 시작되었고, 조선 시대엔 최대의 말 공급지로서 부각되며 사람보다 말 중심의 ‘마정(馬政)’ 체계를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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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목사를 지낸 문신. 1356년(공민왕 5) 고려의 반원정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던 해에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고려의 반원정책은 제주의 목호(牧胡) 세력에게 직접적인 압박이 되었다. 제주의 목호는 그간 원나라가 설치한 탐라목장을 관할하면서 위세가 등등하였다. 고려는 임명권이 원나라에 속하였던 만호 대신에 고려 국왕이 임명하는 제주도 순문사 윤시우(尹時遇)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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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국가 권력을 획득·유지·조정·행사하는 기능·과정 및 제도. 한국 정치는 19세기 후반 대원군의 집권을 경계로 전통 시대와 근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통 시대의 정치는 주로 왕조 체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근대 정치는 문호 개방에 따른 외세 개입과 거기에 대한 대응 속에서 전개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역사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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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제주도를 ‘당 오백 절 오백’의 섬이라 하였다. 사실 섬 전역이 성역화될 정도로 무속 신앙이 성행하던 곳이 바로 제주도다. 춘하추동 가릴 것 없이 당(堂)에서 제를 지내고 굿판을 벌였다. 이때 당신(堂神)에게 반드시 술과 고기를 갖추어 제사를 드렸는데, 신에게 올리는 강신잔(降神盞)에 따르던 술이 다름 아닌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이다.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은 현존하는 한국의 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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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 불탑사에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 제주도에 현존하는 유일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1993년 11월에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되었다. 탑은 고려시대 충렬왕 때 창건되었던 원당사(元堂寺) 터에 세워졌는데, 절은 조선시대 중기에 폐사되었다. 현재 1914년 무렵 원당사지에 새로 지은 불탑사에 자리 잡고 있다. 원당사지가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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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 제주 지역에 설치된 특수 관직. 토관은 제주도를 비롯한 평안도·함경도 등의 일부 지역의 토착 세력에게 특별하게 주었던 관직이다. 제주도에 토관제가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은 없다. 조선 시대 제주도의 토관제에 관한 첫 기록은 1394년(태조 3)에 나타나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그 전에 이미 제주도에 토관제가 설치·운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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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제주의 옛 이름은 탐라(耽羅)·탁라(乇羅)·탐모라(耽毛羅)·동영주(東瀛洲)이다. 1295년(충렬왕 21) 제주의 행정단위는 제주목으로 개편되었다. 목(牧)은 경(京)과 도호부의 격을 지닌 행정단위와 더불어 계수관(界首官) 지역으로 일컬어졌다. 계수관 지역은 최상의 독자적·개별적 행정단위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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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예부터 고유하게 사용하고 있는 토박이 언어. 제주방언은 추자도를 제외한 제주시 전 지역에서 독특하게 사용하는 언어이다. 지역에 따라 ‘방언’, ‘제주어’, ‘제주사투리’, ‘제주도방언’, ‘제주지역어’ 등으로 불리는 제주방언은 9개의 단모음과 20개의 자음 체계를 갖고 있다. 특히 접사가 다양하고 특이한 처격과 여격의 발달, 주체 높임법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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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 서식하는 재래종 말. 제주마는 동양 종마에 속하며, 체구가 가장 작은 왜소 마에 속한다. 그러나 제주 지역에 오랜 기간 적응되어 강건한 체질을 갖고 있으며, 연중 방목하는 거친 사육 조건과 사료에도 잘 견디는 재래종 말로 알려졌다. 특히, 발굽의 질은 치밀하고 견고하여 암석이 많은 제주도 중산간 지대에도 잘 견딜 수 있는 특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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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조선 중기 왜구를 방비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 시설. 차귀진은 고려 충렬왕 때부터 공민왕 23년까지 원나라 목마(牧馬) 관리자인 목호가 말을 기르기 위해 서아막(목축 관리소)을 설치했던 곳이다. 1652년(효종 3) 이원진 목사가 차귀도를 의지삼아 침략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진을 설치했다. 제주의 9진성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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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년 제주에서 토착민 차현유(車玄有)가 주도하여 일으킨 민란. 차현유는 13세기 전반부터 이미 탐라에 정착해 있던 토착민으로 마적(馬賊)의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차현유의 난은 1374년(공민왕 23) 10월 6일에 일어났는데, 이는 9월 23일 최영이 목호 세력을 평정하고 탐라를 떠난 지 13일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차현유의 난에는 원나라의 추종 세력인 목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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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 있는 학술적 및 관상적 가치가 높아 그 보호와 보존을 법률로 지정한 동물(그 서식지)·식물(그 자생지) 및 지질·광물. 고유한 한국의 자연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기념물 적 성격의 자연물을 보전하고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위원회에서는 1963년 728점의 지정 문화재를 재분류 지정하면서 98점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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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형소를 시조와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좌씨의 연원은 중국 노(魯)나라 학자 좌구명(左丘明)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좌구명은 당시 대유(大儒)로서 좌구명(左丘明)이 주석한 『춘추좌씨전』은 『논어』와 『맹자』처럼 이름 있는 고전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필독서이다. 좌씨가 우리나라에 들러오게 된 것은 1273년(원종 14)으로 여원연합군(麗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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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원간섭기에 제주에 파견된 탐라국초토사의 장관직. 1273년(원종 14) 고려군과 연합하여 제주의 삼별초를 평정한 원이 제주를 직할령으로 삼은 뒤 처음 설치한 관부가 탐라국초토사(耽羅國招討司)이다. 여기에 장관으로 파견되었던 관인이 초토사(招討使)이다. 원의 소용대장군(昭勇大將軍) 실리백(失里伯)이 장관인 초토사로, 한족(漢族) 윤방보(尹邦寶)가 차관인 부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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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 목호의 난을 진압한 무신. 고려 후기 공민왕대에 홍건적,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우왕 말기에는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을 결정하고 정벌군 최고 사령관이 되었지만, 이성계가 단행한 위화도 회군으로 실각하고 숙청되었다. 본관은 동주(철원). 아버지는 사헌규정 최원직(崔元直)이며 어머니는 삼한국대부인 지씨이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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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몽골에서 탐라 지역에 설치한 탐라총관부의 장관. 다루가치는 원(元)에서 총독·지사(知事) 등을 지칭한 직명으로 한자로는 달노화적[達魯花赤]으로 표기한다. 어원은 몽골어의 ‘진압하다’ 또는 ‘속박하다’라는 뜻을 지닌 ‘daru'에 명사 어미 ‘gha’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chi’를 붙여 ‘진압에 종사하는 사람’, ‘속박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그것이 다시 총독·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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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탐라군민만호부의 장관, 혹은 군사 지휘관의 직함. 만호는 고려와 조선시대 무관직의 하나인데, 애초 만호란 만호부의 장관이며 만호부는 원나라의 제도에서 유래했다. 만호에는 고려 관인이 나아갔지만 이미 원으로부터 만호의 직위를 받았던 자들만이 나아갈 수 있었던 만큼, 그 임명에 원이 직접·간접으로 관여했으며, 이 점은 탐라만호부도 마찬가지였다. 만호부의 설치는 고려가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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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몽골의 탐라 지배기 때 탐라에 주둔했던 고려군과 몽골군을 아울러 이르는 말. 몽골은 1273년(원종 14) 탐라 삼별초를 정벌한 뒤 상당수 고려군과 몽골군을 탐라에 주둔토록 했으며, 이들 탐라진수군은 100여 년 동안 유지되었다. 이들은 몽골의 탐라 지배를 가능케 함과 동시에, 탐라가 일본과 남송(南宋) 정벌의 전초 기지로서 경영되었던 데에 따른 것이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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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원간섭기에 원이 제주도를 직접 관할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 원은 원래 삼별초를 평정한 직후 제주에 탐라국초토사(耽羅國招討司)를 설치하였다가 곧이어 이를 탐라국군민도달로화적총관부(耽羅國軍民都達魯花赤摠管府)로 개편하였다. 이것이 탐라총관부로, 개편 시기는 1275년(충렬왕 원년)경이다. 총관부의 장관인 다루가치[達魯花赤]에는 몽고족 인물이 파견되었지만 휘하 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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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토착하여 거주하던 씨족 집단의 성씨. 신라 말부터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본관제는 고려를 지나면서 중앙의 지방 지배 및 일정한 지역에 주민을 정착시킴으로써 효율적인 신분 질서의 유지, 나아가 세금이나 역(役)을 효과적으로 거두기 위한 방편으로 더욱 활발하였다. 즉, 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강력한 씨족 집단에게 그 지역 명을 본관으로 부여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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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공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작용. 행정에 대한 정의는 광의의 개념으로서 공행정과 사행정으로 나누어보거나, 행정부의 활동 자체를 행정으로 보는 등 다양하게 내릴 수 있다. 제주시의 행정은 중앙과 지방을 구분하여 행해지는 지방 행정으로, 여타 지방과는 다른 제주시만의 독특성·차별성을 지닌다. 특히 제주시의 행정은 상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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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 지역의 삼별초군을 진압한 원나라의 장수. 홀돈(忽敦)이라고도 한다. 삼별초의 난 당시 고려에 주둔하고 있던 몽골군의 지휘관이었다. 강화도에서 제주로 옮긴 삼별초군은 원나라에 맞서 일전을 도모하기 위해 진지를 구축하였다. 이에 1271년(원종 12) 고려와 원은 각각 김방경(金方慶)과 흔도를 지휘관으로 하는 연합군을 구성하여 삼별초군을 진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