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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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운양 김윤식(金允植)의 일기. 김윤식은 자신이 체험한 사건들을 한문 일기로 기록해 두었는데, 그것이 『음청사(陰晴史)』와 『속음청사(續陰晴史)』이다. 이 일기집은 김윤식의 다른 저술과 함께 그 원문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료총서에 실려 있다. 김윤식은 을미사변 때 황후 폐위 조칙에 서명한 일로 1897년 12월 제주도에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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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조선 시대에 행해지던 관리 선발 시험 제도 제주 지역에서는 문·무 외방별시가 시행되었다. 문과의 외방별시는 승보시라고도 하였으며, 무과에는 외방별시 외에도 마병도시와 포과가 있었다. 제주에서 시행된 것은 아니지만 제주와 관련된 과거의 일종으로 황감제가 있었다. 제주인의 과거 입격은 이미 고려 시대의 고유·고조기·고적 등에서 찾아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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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 절동산 인근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의 터. 현재 광령리 사지에서 절터로 추정되는 곳은 과수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뿐만 아니라 향림사 일대에 다수의 기와편과 청자 등의 자기편이 산재해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문둔체 2점을 비롯하여 다량의 기와편이 수습되었다. 1960년경에는 석불도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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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에서 토산물인 감귤을 공물로 바치던 제도. 감귤은 제주에서 주로 생산되는 과실로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제주의 중요한 진상품이었다. 제주도에서는 11세기부터 진상품으로서 감귤 재배가 이루어졌는데, 조선 시대로 들어서며 귤과 유를 별공으로 해서 공납하게 하였다. 1408년(태종 8) 진상제인 공부제가 실시되면서 감귤 재배가 적극 권장되어, 각 지방마다 과원을 설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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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광평마을에서 전승되고 있는 제사에 관한 민담. 1980년 2월 17일 제주시 노형동 광평마을에서 문영현(남, 53)이 구연한 것을 현용준이 채록하여, 『한국구비문학대계』와 『제주도 민담』에 수록하였다. 전라도 어느 고을에서 어떤 사람이 산골을 지나다가 밤도 깊고 하여, 살아 있을 때 둘도 없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무덤가에서 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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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공민왕대에 제주도의 몽골족 목호(牧胡) 세력이 주동해 일으킨 반란. 제주 지역은 공민왕의 반원 정책이 단행되는 1356년(공민왕 5)부터 몽골족 목호 세력과 고려가 수차례 맞부딪치는 현장이 되었다. 특히 양자의 충돌은 명나라가 개입함에 따라 1374년에 총력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로써 목호 세력은 최후를 맞이했고, 제주 지역은 제주 사람들이 큰 희생을 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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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자라는 쌍떡잎식물 무환자나무목 무환자나무과의 낙엽성 교목. 우리나라 전라도, 경상도 및 제주도 전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로서 사찰에서 심고 있는 낙엽성 교목이다. 한자로 무환자(無患子) 혹은 무환수(無患樹)라고 하는데, 이 나무는 본래 중국에서 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즐겨 심던 나무로 그 열매가 귀신을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게 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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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일본 선박의 선원으로 강제 징용되어 상하이·홍콩 등지에서 근무하다가 1940년 탈출하여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1940년 중국의 광시성 유림(柳林)과 계림(桂林) 전투에 참가하였다. 1942년 10월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비대원에 임명되었으며, 1943년 10월 2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전라도 대표의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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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에서 문과와 무과의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 제주인의 과거 입격은 이미 고려 시대 인물인 고유·고조기·고적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제주에서 실시한 과거에 합격한 것이 아니라, 고려 조정에 상경하여 과거에 합격한 경우이다. 조선이 개창된 이후에 전국이 8도로 개편되고 난 후 제주인들의 문·무 향시(鄕試) 지역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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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표착하여 귀화한 네덜란드인. 네덜란드 리프 지방에서 태어났다. 한국명은 박연, 중국식 이름은 호탄만(胡呑萬), 원명은 벨테브레(J.J.Weltevree)이다. 조선 여자와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1626년(인조 4) 홀란디아(Hollandia)호 선원으로 출항하여 이듬해 우베르케르크호(Ouwerkerk)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던 중 풍랑으로 제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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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에 일어난 제주민란의 주도자. 본관은 남양. 자는 성칠(聲七), 호는 능헌(菱軒). 본명은 방진두(房鎭斗)이며 일명 방갑(房甲)이라도도 한다. 아버지는 방상규(房祥圭)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부인은 김해김씨이다. 1898년(고종 35) 방성칠은 강벽곡(姜辟穀)·정세마(鄭洗馬) 등과 함께 남학당 교도 수백 명을 이끌고 전라도로부터 제주에 들어와서 능화동(현재 제주특별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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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년(신종 5) 10월 제주 지역에서 번석(煩石)·번수(煩守) 형제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란. 1170년(명종 즉위년) 무신들의 반란으로 무신 정권이 수립된 뒤 하극상, 고관 축출 등 신분 질서의 해이와 집권자들의 토지 점탈 등으로 사회가 동요하자 전국 각지에서 농민·천민들의 난이 잇달아 일어났다. 탐라는 이미 명종 초기에 탐욕스러운 지방관의 교체를 요구한 바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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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중여(重汝)이다. 아버지는 변희로(變希蘆), 어머니는 남평문씨이다. 아내는 강씨이며, 형은 변시익(變是翼)과 변시한(變是翰)이 있다. 1727년(영조 3) 제주에서 실시된 과거에서 시제(試題) ‘해불양파삼년부(海不揚波三年賦)’로 혼자 합격하여 문과의 초시와 복시를 치루지 않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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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적인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 제주도는 일생에 한 번은 꼭 찾아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로 꼽히는 ‘환상의 섬’이다. 21세기 해양 시대를 맞아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소위 베세토(beseto) 라인의 중심축에 제주가 위치하고 있어 동북아시아의 중심 지역으로 제주가 부상할 것이라 예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주의 이면에는 제주인들의 처절한 항쟁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항쟁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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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513년(중종 8) 6월 제주목사에 임명되어 9월에 김석철(金錫哲)[1456~?]의 후임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가 1515년(중종 10) 3월 18일 재임 중 사망하였다. 함께 재임했던 제주판관은 서연(徐憐)[1494~1515]이었다. 정사에 청렴 정직하고 간사한 일을 아니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명환(名宦)이라고 하였다. 일찍이 무과에 장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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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은진.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화양동주(華陽洞主). 아명은 송성뢰(宋聖賚)이다. 아버지는 송갑조(宋甲祚)이며, 어머니는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89년(숙종 15) 1월, 숙의 장씨가 낳은 아들(후일 경종)에 원자의 호칭을 부여하는 문제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재집권하는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났다. 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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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년이 일본으로 처음 간 것은 열 살 때였다. 그리고 13년을 살다 귀국했다. 부모와 작은오빠는 모두 용담1동에 살고 있었지만 큰오빠와 고모네, 작은아버지 딸과 아들네가 일본에 살고 있어서 모친이 ‘석달 증명’(30일용 비자로 이해됨)을 하여 어머니와 일본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제주와 일본을 왕래하던 배는 군대환, 복목환, 경성환, 신길환 등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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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아버지는 심익연(沈益衍)이고, 작은 아버지는 심정연(沈鼎衍)[?~1755]이다. 1728년(영조 4) 소론 일파가 일으킨 이인좌(李麟佐)[?~1728]의 난에 심래복의 삼촌인 심성연(沈成衍)·심익연(沈益衍) 형제가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1755년(영조 31) 2월 나주의 벽서 사건이 수습되고 5월에 실시한 과거 답안지에 심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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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1580년(선조 13) 2월 전라도 부안현감으로 부임하였고, 1584년(선조 17) 3월 보성군수에 임명되었다. 1587년(선조 20)과 1588년(선조 21) 두만강 하류에 있는 섬 녹둔도를 두고 벌어진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특히 1588년 2차 녹둔도 전투에서 온성부사 양대수는 회령부사 변언수(邊彦琇),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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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서 실시된 시취(試取) 때 합격한 문신. 본관은 제주. 자는 대비(大庇). 아버지는 양임로(梁壬老)이며 할아버지는 향공진사 양수영(梁秀瀛)이다. 한림읍 동명리에서 태어났다. 제주판관 오명계(吳命季)[1682~?]의 비리가 조정에 보고되면서 1738년(영조 14)에 제주순무시재어사 이도원(李度遠)[1684~?]이 부임하여 1738년 8월에 하급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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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여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한경면 용수리에 사는 고창하(남)가 구연한 것이 채록되어 1985년에 출판한 『제주도전설지』에 실렸다. 옛날에 전라도 고창군수로 부임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부임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급사를 하였다. 이렇게 되자 고창군수로 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되었는데, 어떤 노름쟁이가 그 소문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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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역사. 제주도는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한반도 남쪽을 거쳐 일본 큐슈[九州]로 이어지는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중도 기항지가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과거 유물·유적의 분포지가 대부분 제주도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의 선진문물의 유입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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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인 해적을 총칭한다. 흔히 고려 후기까지의 왜구를 전기 왜구, 그 이후의 왜구를 후기 왜구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기 왜구가 우리나라를 주요 약탈 대상으로 삼았다면, 후기 왜구는 약탈의 대상지가 중국과 동남아 지역으로 확대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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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 자생하는 난초과의 식물.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제주시 오라동 관음사, 봉개동 견월악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논고악, 한남리 동수악, 수망리, 광주광역시의 무등산 등에서 자라고 있다. 1940년대 말 ‘열매가 으름 모양과 비슷한 난초’라고 해서 으름난초로 이름 붙여졌다. 현재 20여 종류가 아열대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제주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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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명종 10) 왜구가 제주도 화북포 일대에 침입한 사건. 을묘왜변은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는데, 1555년(명종 10) 왜구 선박 70여 척이 1차로 전라도 영암·강진·진도 일대를, 2차로 제주도를 휩쓸며 약탈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조선과 일본 원활하지 못한 외교 관계와 일본 내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발생하였다. 즉,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이 일어난 이래 조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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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도 보성군수를 역임하고, 1586년(선조 19) 5월 전라도 부안현감으로 부임하여 1588년(선조 21) 3월 암행어사에 의해 파직되었다. 1610년(광해군 1) 2월 변양걸(邊良傑)의 후임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류큐국[琉球國] 왕자가 항해하던 중 제주에 표착하였다. 이기빈은 제주판관 문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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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관리. 1746년(영조 22) 3월 전라도 운봉현감에 부임하여 1748년(영조 25) 7월까지 재임하였다. 1763년(영조 39) 경기도 남양부사 재임 중 1763년 7월 이달(李鐽)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765년(영조 41) 6월까지 재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인 1763년에 심래복의 반역 사건이 일어났다. 심래복[?~1763]은 조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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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790년(정조 14) 7월 경상좌수사 재임 중 이철모(李喆模)[1732~?]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791년(정조 15) 7월에 사임하였다. 1793년(정조 17) 11월에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90년 7월 27일 유구국(琉球國)[일본 오키나와]의 배가 귀일포에 예고 없이 정박하였는데, 배에는 선원 12명이 있었으며 유구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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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방(子方).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이창정(李昌庭)[1573~1625]이다. 1631년(인조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예문관대교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소현세자[1612~1645]가 인질로 청나라에 갈 때 세자시강원의 사서로서 따라갔다. 여러 지방의 수령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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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대숙(大叔). 아버지는 이광하(李廣河)이다. 1702년 알성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으며, 1703년(숙종 29) 6월 이형상(李衡祥)[1653~1733]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애매헌(愛梅軒) 동쪽에 청심당(淸心堂)을 건립하였다. 청심당은 영조 때 세병헌(洗兵軒)이라고 불렸다. 또한 해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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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국가 권력을 획득·유지·조정·행사하는 기능·과정 및 제도. 한국 정치는 19세기 후반 대원군의 집권을 경계로 전통 시대와 근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통 시대의 정치는 주로 왕조 체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근대 정치는 문호 개방에 따른 외세 개입과 거기에 대한 대응 속에서 전개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역사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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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제주의 옛 이름은 탐라(耽羅)·탁라(乇羅)·탐모라(耽毛羅)·동영주(東瀛洲)이다. 1295년(충렬왕 21) 제주의 행정단위는 제주목으로 개편되었다. 목(牧)은 경(京)과 도호부의 격을 지닌 행정단위와 더불어 계수관(界首官) 지역으로 일컬어졌다. 계수관 지역은 최상의 독자적·개별적 행정단위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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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전반에 제작된 제주도의 지도. 조선 후기 제주도 고지도 중에서는 형태와 내용이 독특한 유형에 해당한다. 전체적인 지도의 윤곽은 제주목 관아가 있는 해안이 만의 형태로 움푹 들어가 있어서 왜곡된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지도에는 1734년(영조 10)에 정도원(鄭道元) 제주목사가 남문 밖으로 이전한 사직단이 표시되어 있고, 1754년 남문 밖 광양 땅으로 이전되는 향교가 성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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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서 도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승되어 온 노래. 창민요는 넓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에 의해 불린다 해서 통속민요라 칭하기도 하고, 놀이요의 성격을 갖는 민요와 한데 묶어 잡요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요즘에는 노래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춤추기나 윷놀이 등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아 노래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들을 가창유희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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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천주교 교회. 제주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알려진 것은 1801년 정난주(마리아, 아명 정명련)가 제주 대정현으로 유배되면서부터이다. 1845년에는 김대건(안드레아) 성인이 제주 앞바다에 표착하였다. 1858년에는 함덕 출신의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이 홍콩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면서 처음으로 전교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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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제주의 역사. . 조선 시대 제주는 독립성을 상실한 채 중앙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제주는 말의 특산지로 부각되면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중앙 정부에 의해 과중한 경제적 수탈이 이루어졌다. 특히 제주도 중산간 지역을 목장으로 만들어 개간을 금지했기 때문에 제주인들은 해변 지역의 일부 땅만을 이용해 농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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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판관을 지낸 문신. 본관은 평양. 자는 유보(裕甫), 호는 일락(一樂). 아버지는 조경운(趙慶雲)이며 어머니는 김응무(金應武)의 딸이다. 형은 공조참판 조인득(趙仁得)이다. 1567년(명종 2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75년(선조 8) 1월에 전라도 영암군수로 부임하였다가 1575년 8월에 체직되었다. 1577년(선조 10) 5월 제주판관으로 부임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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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초자연적인 세계, 또는 초월적인 존재를 믿고 따르는 일체의 활동. 교리가 경전으로 출판되고, 의례 체계가 표준화되며, 종교 지도자의 재생산 구조와 지도자와 일반 신도의 결합 구조가 공식 조직(formal organization)의 형태를 띠게 될 때, 보통 ‘종교’라고 이름 붙인다. 우리가 흔히 ‘종교’라고 부를 때는 바로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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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두었던 제도. 진휼곡은 춘궁기에 종곡(種穀)을 나누어주고 추수기에 거두어들이던 곡식 또는 제도를 일컫는다. 진휼곡은 1668년(헌종 9) 제주목사 이인(李寅)에 의해 설치되었는데, 진대구휼(賑貸救恤)의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거듭된 자연재해로 원곡(元穀)이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되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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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요. 추자도는 행정적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해 있지만, 문화와 풍속은 전라남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입도조(入島祖)의 상당수가 전라남도의 남해안 지역에서 건너왔고, 쌀 등을 교역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지역과 자주 교류를 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전라도 풍속과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추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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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속하는 면. 조선조 『태조실록(太祖實錄)』에 추자도(楸子島)라는 표기가 등장한다. 한자의 뜻을 살려 개오동나무나 가래나무와 관련시켜 지명 유래를 해석하기도 하나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1271년 삼별초의 난 때 고려군과 몽고 연합군이 폭풍우를 피하기 위해 잠시 머물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전라도 나주목 탐라현에 소속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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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도민들이 제주 섬을 떠나는 것을 금지한 정책. 15세기에 이르러 조선 정부의 중앙 집권화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제주에 대한 중앙 정치의 간섭도 강력해져 갔다. 중앙 정부의 지나친 행정적·경제적 간섭은 제주도민들을 유민(流民)으로 내몰았다. 제주 유민들은 전라도·경상도 해안과 심지어 중국의 해랑도(海浪島) 지역까지 떠돌았다. 당시 제주 유민들에게는 특별한 명칭이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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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몽골의 탐라 지배기 때 탐라에 주둔했던 고려군과 몽골군을 아울러 이르는 말. 몽골은 1273년(원종 14) 탐라 삼별초를 정벌한 뒤 상당수 고려군과 몽골군을 탐라에 주둔토록 했으며, 이들 탐라진수군은 100여 년 동안 유지되었다. 이들은 몽골의 탐라 지배를 가능케 함과 동시에, 탐라가 일본과 남송(南宋) 정벌의 전초 기지로서 경영되었던 데에 따른 것이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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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표착한 네덜란드 선원. 1652년 네덜란드를 출발,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와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폭풍을 만나 1653년(효종 4) 8월 일행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하였다. 하멜과 그 일행은 1654년(효종 5) 5월 서울로 압송되었고, 1665년(현종 6) 3월에 전라남도 작천병영(鵲川兵營)으로 이송, 감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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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영역을 행정상으로 나눈 행정 단위. 행정 구역은 나라의 행정 사정에 따라 다른 데, 우리나라는 현재 특별시·광역시·도·시·군·구·읍·면·동·이로 구획되어 있다. 그러나 선거구 등 특별한 목적으로 구획되는 행정 구역이 있으며, 이는 일반 행정 구역을 토대로 인구의 비례에 따라 결정된다. 행정 구역은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