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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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마을. 강촌(綱村), 강상촌(綱常村), 강상리(綱常里) 등으로 불리고 있다. 삼강오상(三綱五常)의 정문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강상촌(綱常村)’이라 줄여 부르다가 ‘강촌(綱村)’이라 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전국에는 ‘강촌’이라는 지명이 널리 분포하고 있는데, 대부분 냇가나 강가에 접한 마을을 가르킨다. 그렇다면 이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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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붙이와 돌에 새긴 살아있는 역사기록이며 선조들의 삶과 사건의 생생한 증거 금석문은 크게 금문과 석문으로 나누어진다. 금문은 금속류의 용기·악기·무기·화폐·인장·경감·조상·범종·도량형 등에 주출되었거나 새겨진 문자이며, 석문은 석재의 비·묘지·조상 등에 새겨진 문자이다. 금문의 대표적인 경우는 「칠지도명」·「환두대도명」·「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광배문」·「상원사종명」·「성덕대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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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나 유골을 처리하는 장소 즉, 무덤. 분묘란 흔히 묘 또는 무덤이라도 하고 사체나 유골을 처리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장소나 시설로 역사적으로 오래된 무덤을 고분이라 한다. 분묘는 각 사회의 장제(葬制)나 또는 내세관과 깊이 관련되어있다. 또 자연환경이나 생업형태, 피매장자의 연령과 성별, 사회적 지위나 신분에 이르기까지 분묘의 형태와 습속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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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事蹟)을 기념하기위해 세우는 돌. 비(碑)는 보통 비석 혹은 석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석비가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석비는 묘비와 탑비·능묘비 외에도 비문의 내용이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금석문의 가치나 서체가 보여주는 서예사적 가치, 그리고 석비의 양식의 변천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함께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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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청주 출신으로 충렬공(忠烈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손자(孫子)이며, 청주지역 여산송씨(礪山宋氏) 입향조인 송인급(宋仁及)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나아가 찰방(察訪)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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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자는 성구(聖求)이며, 호는 서곽(西郭)이다. 송상인(宋象仁)은 현감 송복흥(宋復興)의 아들이며,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아우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예문관검열을 거쳐 함경도북평사(咸鏡道北評事)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형조좌랑이 되었다. 1612년 (광해군 4) 김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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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덕구(德求)이며, 호는 천곡(泉谷)이다. 아버지는 평강, 용안 등의 현감을 지낸 송복흥(宋復興)이고, 할아버지는 송전(宋琠)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송승은(宋承殷)이다.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로 기묘명현인 묵재 이문건(李文健)의 손녀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재주가 뛰어나 10여세에 경사(經史)에 통달하였다. 15세에 승보시(陞補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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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있는 송상현 관련 조선시대 고문서들. 1592년(선조 25년) 동래부사로 재임중 왜군에 맞서 목숨을 바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의 업적을 알려주는 여산송씨 충렬공파 종중 소유의 문서들로 현재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를 포함하여 5건 10점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유물들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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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신도비.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국한 송상현의 신도비이다. 흥덕구 수의동의 강촌마을 묘소 아래 진입로 왼편에 있으며, 1984년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280㎝, 폭 90㎝, 두께 26㎝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를 얹었으며,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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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 한금섬(韓金蟾), 이소사(李召史)의 정려문.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과 그의 두 소실이었던 한금섬과 이소사의 정절을 함께 기려 세운 정려문이다. 본래는 1595년(선조 28) 송상현만 정려되었으나, 1704년(숙종 30)에 두 소실이 정려됨에 따라 함께 모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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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대학자. 송시열(宋時烈)의 자(字)는 영보(英甫)이고 호(號)는 우암(尤庵), 우재(尤齋), 화양동주(華陽洞主)이며, 시호(諡號)는 문정(文正)이다. 본관(本貫)은 은진(恩津)으로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 어머니는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송시열은 1607년(선조 40) 그의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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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字)는 택지(擇之)이다. 시조 송유익(宋惟翊)의 17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이다. 할아버지는 송복흥(宋復興), 증조할아버지는 송전(宋㙉), 외할아버지는 이온(李熅)이다. 동생으로 송효급(宋孝及)이 있으며, 아들로는 연원도 찰방(察訪)을 지낸 송근(宋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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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명으로는 흥덕구 강서 1동 14통이고, 법정명으로는 수의동 강촌이다. 수의동은 청주군(淸州郡) 서강내일하면(西江內一下面)의 지역으로 절의를 지킨 사람이 많은 마을이라 하여 수의동(守儀洞)[수절, 숫절]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강상리(綱常里), 부동(釜洞), 정상리(井上里)를 병합하여 수의리(守儀里)로 강서면(江西面)에 편입된 후, 198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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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마을은 관광객보다는 유적 탐방, 답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강상마을을 찾아오는 이들 중 학생들은 주로 비석을 탁본하거나, 2004년에 개관한 천곡유물전시관을 찾아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외 유적을 돌면서 역사탐방을 목적으로 한다. 이외 일반인들은 문화답사를 목적으로 하여 이 마을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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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東萊 府使 宋象賢 忠烈祠)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 1-5에 위치한다.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선조 28년(1595) 동래에 있던 묘소를 지금 위치로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창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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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천곡(泉谷)할아버지의 출생지는 서울 황하방인데, 지금 그 위치는 정확하게 어딘지는 모르겠어.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할아버지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천곡 선생의 부친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기록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사신 곳은 현재로는 전라도 정읍시 망재동 마을인데 거기가 천곡이야. 그래서 호가 천곡이구, 거기를 샘골이라 부르기도 해. 임진왜란 때 일본이 명나라를 치러갈 때 목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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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 자리를 걷고 짚을 정갈하게 깔고 출산한다. 탯줄은 산파가 잘라 흰 무명실로 마무리한다. 잘린 탯줄 등은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왕겨 속에 집어넣고 태운다. 탄 재는 인근 개울가에 가서 띄워 보낸다. ◦ 금줄 딸을 낳으면 솔가지와 숯을 꽂아 대문 앞에 치고, 아들을 낳으면 숯과, 고추를 꽂아 금줄을 친다. 기간은 개인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대개 일주일 정도 쳤다. ◦ 삼밥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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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항서원(莘巷書院) 이정골마을 뒷산 산자락에 서향(西向)으로 위치한 신항서원(莘巷書院)은 조선 선조 3년(1570) 창건되었다. 아산현감 경연(慶延)·문도공 동부승지 강수 박훈(朴薰)[1484~1540]·문간공 형조판서 충암(冲菴) 김정(金淨)[1486~1521]·문충공 대사헌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1487~1547] 등 이 지방 출신 선현 4인을 모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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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지역에 산재한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 성리학이 수용된 고려 말 이후 현재까지의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을 통해 호서 사림의 역사적 배경과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과 인적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지배층인 양반의 제례(祭禮)와 강학(講學)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은 단순한 문화유산에 그치는 것이 아닌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지역에 분포하는 유교 유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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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첩이다. 동래부사였던 송상현을 따라가 부산에 있으면서 1592년 왜적 침입의 소문이 일자 송상현이 한양으로 피신을 시켰다. 그 후 동래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통곡하면서 송상현을 따라 죽겠다며 동래로 돌아왔다 종 만개(萬介)·금춘(今春)과 더불어 왜적에게 포로가 되었으며 이후 일본으로 보내져 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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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朝鮮)에 침입한 왜군(倭軍)과의 전쟁. 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朝鮮)에 침입한 왜군(倭軍)과의 전쟁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은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일컫는데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이라면 정유재란까지 포함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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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서원. 호서지방에서 보은의 상현서원(象賢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1570년(선조 3)에 청주목 서주내면 유정리 안말마을(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120번지[이정골로 115-8])에 건립되었다. 신항서원의 창건당시의 이름은 서원이 위치한 마을이름을 따라 유정서원(有定書院)이라 하였다가 1660년 사액을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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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위치한, 신항서원의 건립경위와 제향인물에 대해 기술한 비. 청주지역의 사림들이 주로 호서(湖西)지방의 훌륭한 유학자들의 신위를 신항서원에 모셔놓고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상당구 용정동의 안말마을 뒷산자락의 평지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방형 받침돌[대좌] 위에 높이 190㎝, 폭74㎝, 두께 40㎝의 오석(烏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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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위패 모신 사당. 충렬공(忠烈公)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래부사로서 동래성을 사수하다 순절하였다. 동래에 있던 묘소를 이장한 후 1610년(광해군 2)에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이 사당을 건립하였다. 흥덕구 수의동 강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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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이 담겨져 있는 명소 기행. 오늘의 충청도를 호서지방이라 한다. 청주는 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소백산맥과 차령산맥, 노령산맥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청주의 진산인 우암산(牛岩山)[338m]은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서쪽으로는 부모산이 마주보고 서 있다. 그 두 산자락 가운데 든 시가지를 동·서로 가르는 물줄기가 바로 무심천(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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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 성씨.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라는 것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이는 씨족의 근거지가 되는 지명에서 취하여 진 것으로 그 씨족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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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교조인 석가모니(釋迦牟尼)의 가르침과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교리, 법문, 종지(宗旨)의 총칭. 2. 특징 충청북도 청주지역의 불교는 이 지역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여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청주는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의 접경지였고, 통일신라시대에 서원경(西原京)이 설치된 이래로 지방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청주지역의 불교는 이와 같은 지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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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충청지역은 조선시대 한성에 도읍한 이후에 많은 사람이 주거하게 되었다. 특히, 수도에서 낙향하거나, 선조의 묘지를 쓰고 집성촌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충효를 강조하여, 충청지역에서도 충신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조선 이후에 많이 나타났다. 그런데 청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죽은 사람은 드물고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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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함흥(咸興)이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첩으로, 함흥한씨(咸興韓氏) 통천군수 한언성(韓彦聖)의 서녀(庶女)이다. 한금섬(韓金蟾)은 송상현의 첩으로 재주와 미모가 뛰어났는데, 13세가 되던 1591년(선조 24)에 송상현이 동래부사(東萊府使)로 부임되자 그를 따라 동래에 갔다. 1592년에 임진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