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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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人-意識-影響-宗敎- |
영어의미역 | religions that affect the spirit of Cheongju citizens |
분야 | 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석린 |
[불교(佛敎)]
1. 정의
교조인 석가모니(釋迦牟尼)의 가르침과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교리, 법문, 종지(宗旨)의 총칭.
2. 특징
충청북도 청주지역의 불교는 이 지역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여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청주는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의 접경지였고, 통일신라시대에 서원경(西原京)이 설치된 이래로 지방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청주지역의 불교는 이와 같은 지방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그 성격을 형성하여 온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청주지역에는 불교가 융성하였다. 이미 통일신라시대의 사적비(事蹟碑)가 발견되면서 청주지역의 불교문화의 역사가 통일신라시대까지 소급되었고, 고려시대에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鐵幢竿)이나 용화사(龍華寺)의 석조불상들이 있다. 특히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인『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 인쇄된 청주 흥덕사지(興德寺址)가 확인되면서 충청북도 청주 지역은 고려시대의 불교문화의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3. 변천
통일신라시대의 청주지역의 불교는 주로 하대 이후에 활발해지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우암산(牛岩山)[338m] 지역에 불교유적이 많으며, 특히 용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불교수도원지의 석조대좌, 그리고 탑동의 5층석탑 등이 중요하다. 아울러 운천동사지(雲泉洞寺址) 출토의 운천동 사적비, 금동보살입상과 동종도 통일신라시대까지 올라가는 예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주요 사찰로는 용두사, 흥덕사, 사뇌사 등이 있으며, 주로 시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읍성을 중심으로 중요 사찰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에 오면 주변의 청원지역에도 대규모의 불교 유물을 볼 수 있는데, 오창의 석불입상, 계산리 오층석탑 등이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에는 청주를 중심으로 주변에 까지 대·소 사찰이 많이 건립되어 청주에 불교가 번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찰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보살사와 안심사 등을 들 수 있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목조건축, 석탑, 그리고 불상과 불화 등이 잘 남아있다. 한편 용화사의 석불들은 도상적으로나 양식적으로 정통성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 조성시기에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 고려시대 보다는 조선시대로 내려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4. 현황
현재 충청북도 청주지역의 불교는 크게 대한불교 조계종, 한국불교 태고종, 대한불교 천태종, 대한불교 진각종, 불교총지종, 재단법인 선학원, 대한불교수도원의 종파로 나누어져 있다.
청주시의 대한불교 조계종은 현재 여섯 개의 사찰이 종단에 등록되어 있다. 제5교구에 속하며 본사는 보은 속리산 법주사이다. 보살사에는 국내유일의 병립여래상이 있으며, 청주시의 관음기도의 영험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찰에는 극락보전, 오층석탑, 보살사괘불 등의 충북유형문화재가 있다. 특히 청주 무심천변 용화사의 칠존 석불은 보물 제985호로 지정되었다. 여래입상의 앞면은 거불입상이, 뒷면은 나한상이 조각되어 국내유일의 문화재적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청주시 미륵신앙의 요체가 되고 있다. 미륵용화정토의 구현은 법주사의 창건이념이면서 용화사의 미륵보전 중창불사정신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리고 관음사는 청주의 포교당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으며, 신라 말이나 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1950년대에 발견되기도 하였다.
태고종은 충북교구에 속하며, 충청북도 청주시 사직동에 충북불교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태고종의 일부사찰이 무속신앙과 습합하여, 그 활동이 다소 미약한 경우가 있다. 청주시에는 1970년대에 32개의 사찰이 등록되었는데, 현재는 20개의 등록사찰이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불교 진각종, 재단법인 선학원, 대한불교 천태종, 불교총지종은 각각 1950년, 1968년, 1973년, 1974년에 청주지역에 전래되었고, 각자 한 개의 사찰을 가지고 있다.
대한불교수도원은 신용화사가 조계종의 소속으로부터 벗어나 1976년에 불교단체로서 대한불교수도원으로 등록하여 생겨났다.
[기독교]
1. 정의
그리스도교의 한자 표현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을 믿는 모든 종파(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등)의 총칭, 또는 개신교의 이칭.
2. 특징
충청북도 청주지역의 기독교는 자생적으로 시작된 점이 특징이다. 당시 신대리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서울을 오가면서 장사를 하던 오천보가 동네 사람 문성심과 같이 어느 해 서울로 가는 길에 죽산에서 사경회에 참석하여 세례를 받고 돌아와 당숙과 상의하여 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이 교회에 대한 확인은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상권(1928년)의 “신대리에 살던 오천보, 문성심, 오삼근 등이 죽산군 둔병리에서 열린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고 돌아와 자기 동네에 전도하여 교회가 설립되었다”라는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다.
청주지역은 예로부터 양반들의 고장이었다. 이는 지배세력의 여유와 풍류의 문화와 함께 고난 받는 민중들의 한을 담은 저항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청주의 교회는 이러한 민중들의 피난처로서의 역할도 함께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3. 전개
청주지역 최초의 교회인 신대리 교회는 위에서 언급한 오천보의 집에서 모임을 가지면서 시작하였다. 어느 날 참석자 중 한 명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주막에서 모이자고 하여, 나루 근처의 주막을 빌려 집회를 하였다. 그러자 호기심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 소식이 서울에까지 전해졌다. 1901년 말 서울에서 밀러(한국명 민노아(閔老雅, F.S. Miller)) 선교사가 내려왔다. 이 후 주막에서 하던 집회가 다시 오천보의 집으로 옮겼고, 얼마 후 교인들의 헌금으로 오천보 집 옆의 초가에서 집회를 보았다.
이 후 1904년에 밀러 선교사가 청주로 완전히 내려와서, 김흥경 장로와 같이 전도한 결과로 젊은 청년들인 김원배, 방흥근, 이영균, 김재호, 이범준 등이 믿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남문 밖에 초가집을 마련하여, 김흥경의 처소 겸 예배당으로 사용하니 이 교회가 청주읍교회로 현재의 청주제일교회이다. 교회가 설립된 같은 해에 방흥근의 집에서 학교를 시작하니, 이 학교가 청남학교이다. 이듬해에 남녀 신도가 50여명 넘어서면서 교회를 옮길 필요가 생겼다. 교회의 터는 김원배가 임종 시 유언을 하여 100원을 헌금한 것이 동기가 되어 모든 신도가 합심으로 헌금하여 구한말 청주 병영장 관사 기지를 사서 광대한 예배당을 봉헌케 되었다. 이 터는 전날 천주교를 박해할 때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곳이었다.
4. 현황
현재 청주지역 기독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하나님의 성회(순복음), 성공회, 구세군과 기타교파로 여호와의 증인, 참예수회 등의 15교파가 있다.
청주시의 장로교로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대한예수교 장로회가 있는데, 대한예수교 장로회는 통합파외 여섯 개의 파가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1953년에 대한예수교 장로회에서 분파하여 신대교회와 청주제일교회 등이 속한 기성교회로 조직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주제일교회는 육영사업으로 세광중학교·세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파는 1960년에 기성교회로 조직하였으며, 충북노회와 충청노회의 양 노회에 속해 있다. 그리고 육영사업으로 일신여자중학교·일신여자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합동파는 1959년에 기성교회로 조직하였으며, 충북노회와 충청노회의 양 노회에 속해 있다. 합동정통파는 충북노회에 속해있다. 그 외에 개혁파, 고신파, 합동개혁파, 연합여목파는 각각 1976년, 1979년, 1983년, 1985년에 교회를 세우면서 시작하였다.
감리교는 1950년에 선교되었으며, 남부연회감독에 속해 있다. 성결교는 기독교 대한성결교회와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가 있는데, 전자는 1920년에 선교되어 충북의 북지방과 남지방에 속해있으며, 후자는 1989년에 선교되어 남부지방회에 속해 있다. 침례교는 기독교 한국침례회와 성서침례회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1950년에 선교되어 충북지방회에 속해있고, 후자는 1974년에 선교되었다.
하나님의성회(순복음)는 기독교 대한하나님의 성회와 예수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1957년에 선교되었으며, 청주지방신학연구원을 운영하고 있고, 충북지방회에 속해있다. 후자는 1957년에 선교되었고, 충북지방회에 속해있다.
성공회는 1923년에 선교되었고, 현재 성인정신박약아 생활관인 보나의 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충북교무구에 속해있다. 구세군은 1956년에 선교되었고, 충북지방본영에 속해있다. 충북지방본영은 영동읍에 있다가 1995년에 청주시로 이전하였다.
그 외에 여호와의 증인, 그리스도의 교회, 참예수교회 한국총회, 밀알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몰몬교), 루터회 등이 각각 1950년, 1952년, 1969년, 1970년, 1985년에 교회를 세우면서 시작하였다.
[천주교]
1. 정의
가톨릭의 한자 표현으로 그리스도교 가운데 로마 교황을 교회의 대표자로 인정하는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를 지칭.
2. 특징
충청북도 청주는 서울, 영남, 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군사·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청주성 밖에는 진영이 있었고, 여기에는 진영장의 관사와 죄인들을 가두는 옥사가 있었다. 충청도에서 나오는 많은 죄인들이 청주로 끌려와서 재판을 받았다. 따라서 천주교가 박해를 받을 때 ‘사학죄인’으로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이 청주에서 많이 처형당하였다. 정조 23년(1799)에 당진 출신 배관겸이 청주병영에서 맞아 죽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는 덕산 출신 김시집과 골롬바가 청주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최양복을 비롯한 제천 출신 교인들이 이곳에 끌려와 고문을 당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진천 출신 오반지가 청주 형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의 박해를 받은 청주병영 자리는 현재 개신교 청주제일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3. 변천
천주교는 조선시대에 계속해서 박해를 받다가 1882년 이후 신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자 곧 여러 곳에 공소가 생겨 교세가 날로 늘어났다. 1896년에 충북 감곡에 부이용 신부가 성당을 건립하여, 이 지방에 정식으로 첫 본당이 생기게 되었다. 뒤이어 1906년에는 옥천에 두 번째 본당이 설립되었고, 청주본당, 증평본당, 제천본당, 지현본당 등 여섯 개 본당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그 중 증평본당이 한국전쟁으로 폐쇄되어 결국 다섯 개 본당만이 1953년에 감목대리구로서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위임되었다. 감목대리에는 당시 마산 포로수용소에 군종신부로 근무하던 파-디 야고보 신부가 임명되었다. 충청북도 감목대리구는 1958년 6월 23일에 청주대목구로 독립하게 되고, 파-디 야고보 신부는 7월 4일 교황청으로부터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어, 11월 26일 파-디 야고보 주교가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그 뒤 1962년 한국 교회에 교계 제도가 설정됨에 따라 청주대목구가 정식 교구로 승격되었다.
1969년 6월 28일 파-디 야고보 주교가 이른 두살의 고령으로 교구장직을 사임, 1970년 6월25일 정진석 니꼴라오 신부가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청주교구도 한국인 주교가 다스리는 자치교구가 되었다. 그리고 1998년 5월 30일 청주교구장 정진석 니꼴라오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으로 서임되고, 1998년 6월 29일 교구 참사회에서 청주교구 교구장 직무 대행으로 김원택 프란치스코 신부를 선출하였다. 1999년 6월 26일 장봉훈 신부가 청주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같은 해 8월 24일 내덕2동 주교좌성당에서 서품을 받고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4. 현황
현재 청주지역 천주교는 청주교구를 중심으로 하여 상당지구에 여덟 개의 성당이 있고, 흥덕지구에 일곱 개의 성당이 있으며, 강서지구에 여섯 개의 성당이 있다. 교구 설정 당시 열다섯 개 본당, 18,000여 신자에 불과했던 청주교구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53개 본당, 11만 3천 신자와 사제 일백여 명에 이르고 있다. 또한 꽃동네 등 사회복지기관을 비롯하여 청주 성모병원, 양업고등학교, 꽃동네 현도 사회복지 대학 등의 기관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외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유교]
1. 정의
공자(孔子)를 시조(始祖)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
2. 특징
충청북도 청주시의 유교활동은 지방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청주향교와 유도회충북본부를 중심으로 신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밖에도 사(祠)로서는 수동에 1731년에 건립된 표충사와 모충동에 1895년에 건립된 모충사가 자리 잡고 있다. 서원(書院)으로는 상당구 용정동에 1570년에 건립된 신항서원, 흥덕구 분평동에 1613년 건립된 구계서원(龜溪書院), 상당구 내덕동에 1702년에 건립된 송계서원(松溪書院) 등이 있어 현재 유교적 신행의 공간적 중심을 이루고 있다.
3. 현황
현재 청주시의 유교는 청주향교, 표충사, 신항서원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청주향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446년에 세종(世宗)이 초정(椒井)에 행차했을 때 서적을 하사한 일이 있고, 또 1464년 청주에 행차했을 때 문묘(文廟)에 친히 제향한 일이 있는 삼남 제일의 향교였다. 1683년에 현령(縣令) 이언욱(李彦郁)이 현 위치로 이건한 후 1970~1971년에 걸쳐 개수하였다. 1894년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문묘의 제사만 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령에 의하여 문묘 직원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1977년 12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청주향교는 유림을 중심으로 도덕선양운동을 전개하며 기존 시설물의 관리, 유교신념체계에 관한 교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봄·가을철에는 석전대제 행사,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는 대성전에 문안배례를 하는 삭망봉심, 여름방학 때의 충효교실 개강, 그 밖의 도의 선양을 위한 강연회, 충효사상을 진작하기 위한 웅변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신항서원은 1570년에 유정서원으로 창건되었으나, 1660년 사액(賜額)되면서 신항서원으로 개칭하였다. 사우(祠宇)에는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를 주벽으로 하여 이색(李穡)[1328~1396]·박훈(朴薰)[1484~1540]·김정(金淨)[1486~1521]·송인수(宋麟壽)[1487~1547]·한충(韓忠)[1486~1521]·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이득윤(李得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으나, 1892년에 복구가 허가되어, 1904년에 재건하였다. 1957년에 복원하였으나 시설이 미약하고 퇴락하여 1985년에 유림의 협력으로 다시 중건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표충사는 충청북도 지방기념물 제17호로서 일명 삼충사라고도 한다. 조선 1728년에 이인좌(李麟佐) 등이 난을 일으켜 청주영을 침범하니 이에 대항하다 순절한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1676~1728], 영장 남연년(南延年), 비장 홍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731년에 청주읍성 북문 밖에 세운 사당으로, 1736년에 사액되었다. 1939년 도시계획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는데, 지금의 건물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사당과 삼문이 있고, 주위에는 돌담장을 둘렀다. 사당 동편에는 1731년에 세운 삼충사사적비와 기생해월열녀각이 있으며, 삼문 앞에는 1942년에 세운 표충사이건사실비가 있다.
[민속신앙]
1. 정의
특정한 교조(敎祖)·교리체계(敎理體系)·교단조직(敎團組織)을 가지지 않고 일반민중의 생활 속에 전승(傳承)되고 있는 전종교적(前宗敎的) 또는 주술적(呪術的)인 신앙형태.
2. 변천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각 고을마다 문묘 사직단(文廟 社稷壇), 성황단(城蝗壇), 여단(厲壇)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청주지방에서도 삼단제를 지내었다.
풍요를 빌었던 사직제(社稷祭)는 토지의 신인 사신(社神)과 곡식의 신인 직신(稷神)을 복합한 신인 사직에게 제사지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직신앙이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걸쳐서 계속 이어졌다. 청주의 사직단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청주의 서쪽 3리에 있다”고 나와 있다. 여기 사직단에 청주목사가 제주(祭主)가 되어 매년 2월과 8월 상무일에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이래로 일제의 의해 사직제가 폐지되면서 청주의 사직단도 허물어져 지금은 없어졌고, 현재 사직단이 있던 곳이라 하여 사직동이란 지명이 내려온다.
읍성의 보호를 빌었던 성황제는 성지의 신인 성황(城蝗)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도성과 산성의 성황신을 모신 성황사(城蝗祠)를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리나라의 성황제는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조선시대에는 태조(太祖)가 한양에 도성을 쌓고 성황사를 세우면서 각 고을마다 읍성을 쌓으면 반드시 성황사를 세우게 하였다. 청주의 성황사는『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청주의 1리인 당이산(唐羡山)에 있다”고 하였다. 지금의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동공원 아래에 성황신을 모신 성황사를 세우고 청주읍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청주목사가 제주가 되어 매년 봄·가을의 중삭(中朔)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성황제 또한 일제에 의하여 폐지되었고, 성황사도 허물어져 현재는 없어졌다.
여신은 돌림병에 걸려 죽은 귀신을 말하나 일반적으로 제사를 받지 못하는 무주고혼(無主孤魂)을 말하는데 이들을 달래기 위하여 여신제를 지냈다. 여신제는 청나라 세조(世祖)가 처음으로 지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정조가 한양에 여단을 세우고 지내면서 시작되었다. 청주의 여단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청주의 북쪽 5리에 있다”고 나와 있다. 지금의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밤고개 밑에 여단을 세우고 청주의 무주고혼을 달래기 위해 청주목사가 제주가 되어 매년 정월, 7월 보름, 10월 1일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여신제도 일제에 의하여 폐지되었고, 여단도 허물어져 현재는 없어졌다.
또 마을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거나, 재앙이 있을 때 행하는 동신제(洞神祭)가 있었다.
청주지역의 동신제로는 우선 진산신(鎭山神)을 위하는 산신제(山神祭)가 있었다. 청주의 진산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청주의 동쪽 1리에 있는 진산으로 토성터가 있고, 와우산(臥牛山)에서 내려와 청주의 터를 왼쪽으로 돕는다”고 한 당이산(唐羡山), 즉 지금의 동공원이다. 옛날 이 당이산(唐羡山)에서 매년 청주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산신제를 지냈다. 청주에서 산신은 자연신으로 이해되었으며, 산신제는 매연 당집에서 정월과 10월에 두 번 생기복덕을 맞는 제주가 밤에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냈으나, 일제에 의해 폐지되었다. 그러나 청주읍의 주변마을에서는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그 뒤로 사라졌다.
마을을 지키기 위한 동신제로 서낭제가 있다. 서낭은 한자로 성황(城隍)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관청에서 제사지낸 것이고, 서낭은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서 신앙한 속신이다. 청주에서는 역마를 관리하던 율봉역이 있던 율량동 당골에 말서낭이 있었고, 쑥골에서 탑골로 넘어가는 고개에도 서낭이 있어서, 매년 정월보름 아침에 생기복덕을 맞는 제주가 동민과 같이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었다. 그리고 제사를 마친 후에 농악대가 풍장을 치면서 지신밟기를 하였다. 그러나 이 서낭제는 일제말기에 모두 사라졌다. 탑신제 또한 마을을 지키는 동신제이다. 탑은 본래 탑파(塔婆)의 준말로, 민간에서는 잡석을 원추형으로 쌓은 것을 탑이라 한다. 청주지방에서는 옛날에 탑신제를 지내는 마을이 많았으나, 지금은 흥덕구 성화동에 솟대가 없는 탑이 있고, 3년마다 정월 15일 아침에 생기복덕을 맞는 제주가 동민과 같이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 외에도 가뭄에 지내는 기우제(祈雨祭)가 있었다. 청주지방에서는 가뭄이 들면 청주목사가 먼저 사직단에 제물(祭物)을 차리고 기우제를 지냈다. 그래도 가뭄이 계속되면 와우산(臥牛山)에서 산신에게 기우제를 지내고, 죄수를 석방하거나 가난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민간에서도 청주의 수구(水口)가 있는 부양산, 무심천변에 있는 붕숲(鳳林) 그리고 까치내의 장담(長潭)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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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2 | 종교 정의 수정 | <변경 전> 1.불교: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로 삼고, 그가 설(說)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교. / 2. 기독교: 기독교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메시아)로 믿는 종교. / 3. 천주교: 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배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 <변경 후> 1.불교: 교조(敎祖)인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교리, 법문, 종지(宗旨)의 총칭. / 2. 기독교: 그리스도교의 한자 표현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을 믿는 모든 종파(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등)의 총칭 또는 개신교의 이칭. / 3. 천주교: 가톨릭의 한자 표현으로, 그리스도교 가운데 로마 교황을 교회의 대표자로 인정하는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를 지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