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09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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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象賢神道碑 |
영어음역 | Song Sanghyeon Sindobi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Song Sang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 1-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상주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신도비.
[건립경위]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국한 송상현의 신도비이다.
[위치]
흥덕구 수의동의 강촌마을 묘소 아래 진입로 왼편에 있으며, 1984년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높이 280㎝, 폭 90㎝, 두께 26㎝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를 얹었으며, 1980년에 보호각을 세웠다. 보호각은 정면 1칸, 옆면 1칸의 겹처마 팔작(八作)지붕의 목조(木造)기와집으로 홍살로 사면을 막았다.
[금석문]
비문은 일부분이 훼손되었는데,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썼으며, 비의 제목은 이정영(李正英)이 전서(篆書)로 썼다. 금석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송상현은 1591년 동래부사로 부임했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민이 더불어 혈전을 벌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마지막으로 고향에 있는 부친에게, ‘고성월휘(孤城月暉), 열진고침(列陣高枕), 군신의중 부자은경(君臣義重 父子恩輕)’ 즉 ‘외로운 성에 달무리 지니, 여러 군진은 높이 베개를 베고 잠자네. 임금과 신하의 의리는 중요한 것이며, 아버지와 아들간의 은혜는 가벼운 것입니다.’라는 절명사(絶命詞)를 남기고 장렬히 순국했다.
이에 왜적의 장수도 그의 절의에 탄복하여 그를 살해한 왜병을 참살한 뒤 송상현의 시신과 그의 첩(妾)인 한금섬(韓金蟾)의 시신을 동문 밖에 안장하고 나무로 표찰을 세웠다. 그리고 시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 송상현의 처는 승지(承旨) 이문건(李文楗)[1494~1567]의 손녀이자 이온(李熅)의 딸이다.
그 외 송상현의 가계 및 자손관계의 내용을 기록했다. 비문에 나오는 이문건은 1500년대에 쓰여진 현존 최고(最古)의 육아일기(育兒日記)『양아록(養兒錄)』의 저자이다.
[의의와 평가]
송상현은 임진왜란 당시 침입한 왜적을 맞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전무퇴의 기상을 발휘하여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다가 장렬히 순국하였다. 부자간의 정과 효행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임금과의 의리와 국가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자식으로서 본의 아니게 먼저 죽는데 대해 이해와 용서를 바라며, 장렬히 최후를 마친 그의 대의정신은 호국정신의 사표이다.
This is the tomb of Song Sanghyeon(1551-92), a dedicated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1392-1910), who died in acti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98. Song joined the government after passing a state civil service examination in 1576, the nin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1567-1608). He was the magistrate of Dongnae at the time of the Japanese Invasions and heroically fought the much superior Japanese forces at the Dongnae fortress before he was killed when the fortress fell. Song was honored with the posthumous title of government minister and his tablet enshrined at the Chungnyeolsa shrine. Besides a tombstone, the stonework at the grave includes a memorial table, sheep, officials, posts and a lantern. Just down the hill from the grave is a 280cm-high granite stele, erected in 1659, the 10th year of the reign of King Hyojong(1649-59), and protected by a shelter built in 1980. The epitaph was written by Song Siyeol and the calligraphy written by Song Jungil. Yi Jeongyeong wrote the calligraphy of the title. The capstone is exquisitely engraved.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