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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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莘巷書院 |
영어음역 | Singhang Confucian Academy |
이칭/별칭 | 유정서원(有定書院)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120[이정골로 115-8]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해준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2월 31일 - 청주 신항서원 충청북도 기념물 제4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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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신항서원 충청북도 기념물 재지정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관련인물 | 경연(慶延)|박훈(朴薰)[1484~1540])|김정(金淨)[1486~1521]|송인수(宋麟壽)[1487~1547]|한충(韓忠)[1486~1521]|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이득윤(李得胤)|이색(李穡)[1328~1396] |
건립시기/연도 | 1570년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있는 서원.
[건립경위]
호서지방에서 보은의 상현서원(象賢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1570년(선조 3)에 청주목 서주내면 유정리 안말마을(현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120번지[이정골로 115-8])에 건립되었다.
[명칭유래]
청주 신항서원의 창건당시의 이름은 서원이 위치한 마을이름을 따라 유정서원(有定書院)이라 하였다가 1660년 사액을 받으면서 신항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제향인물]
남계(南溪) 경연(慶延), 강수(江叟) 박훈(朴薰)[1484~1540], 충암(冲菴) 김정(金淨)[1486~1521], 규암(圭庵) 송인수(宋麟壽)[1487~1547] 등 4인을 제향하기 위하여 창건되었고, 처음 건립 과정에는 16세기 후반의 청주를 대표하는 사림 조강(趙綱), 이득윤(李得胤), 변경수(卞景壽)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제향인물인 경연은 청주의 토성인 청주경씨로 효자로 추앙받았으며, 김정은 청주에 세거한 경주김씨의 현조이다. 박훈은 밀양박씨(密陽朴氏) 청주 입향조인 박증영(朴增榮)의 아들이며, 송인수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청주에 은거하면서 입향, 활동했던 인물이다.
[위치]
상당구 용정동 안말마을 뒷산자락의 평지에 서향으로 위치한다.
[변천]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32년(인조 10) 복원하면서 청주 출신의 기묘명현 송재(松齋) 한충(韓忠)[1486~1521]을 추향하고, 1650년(효종 1)에는 임란순절신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을 추향하였다. 그리고 1656년에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과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를 추향하였으며, 곧이어 1660년(현종 1) 사액되면서 신항서원(莘巷書院)으로 개칭하였다. ‘신항(莘巷)’이란 이름은 중국 송나라 주희의 백록동서원 규약에서 따온 것이었다.
1665년 서원건립을 주도했던 이득윤(李得胤)[1553~1630]을 추향하는 한편 제향인물의 위치를 조정하여 이이를 주향으로 정하고 나머지 7인이 병향되고, 이득윤을 서벽에 종향하게 된다.
1673년 강당, 1685년(숙종 11) 청주 신항서원 묘정비가 세워졌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으나, 1904년에 재건하였다. 1957년과 1987년에 다시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형태]
서원의 배치는 전면에 강학 공간인 강당이 있고 후면에 제사 공간인 사당이 있는 전학후묘의 구조로 되어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사우, 강당, 내삼문, 외삼문, 수호사(守護舍), 묘정비각(廟庭碑閣), 정문(旌門) 등이 있다. 4칸의 사우(祠宇)는 낮은 기단 위에 조성된 건물로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강당은 6칸 규모이며, 수호사는 5칸 규모이다.
[관련자료]
청주 신항서원 묘정비는 송시열이 찬하여 1685년에 세운 것이다. 소장 전적으로 『원지(院誌)』와 이이의 『서원향약(西原鄕約)』이 있다.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The Sinhang Confucian academy was established in 1570, the third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1567-1608) of the Joseon Kingdom(1392-1910), to educate local youths and memorialize Confucian scholars from this region. It received the acknowledgement of the court in 1660, the first year of King Hyeonjong(1659-74). It was, however, destroyed in 1871, the eighth year of King Gojong(1863-1907), when most private Confucian academies were slated for destruction as a matter of government policy. The facilities were reconstructed by local Confucians in 1957. The shrine is a gabled roof structure built with a veranda in a style typical of a shrine. In the garden, there is a stele erected in 1685, the 11th year of King Sukjong(1674-1720), recording the history of the academy. Memorial services for nine Confucian scholars, Yi I, Yi Saek, Gyeong Yeon, Park Hun, Kim Jeong, Song Insu, Han Chung, Song Sanghyeon, and Yi Deukyun, are held here every spring and autumn.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