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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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고명동·흑석동,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석교리,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 걸쳐 있는 산. 가창산의 명칭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갑자사화로 부모를 잃은 서울 명문가 출신의 두 친구가 양평 용문산에서 10년 넘게 수학하였다. 어느 삼짇날 스승의 권유로 속세로 돌아온 이들은 절대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자로서 후진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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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비를 시조로 하고 유안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전한(前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후손으로, 송나라 때 병부 상서를 지낸 유전(劉荃)이 고려 문종(文宗) 때인 1082년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에 정착하여 우리나라 유씨(劉氏)의 도시조(都始祖)가 되었다. 유전의 맏아들 유견규(劉堅規)의 후손들은 거창 유씨가 되었다. 한편 유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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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서남쪽 제방에 있는 정자. 정자는 조선 시대 사회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지식 집단의 지적 활동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이름 있는 인사나 집안에서는 풍경이 좋은 장소에 정자를 건립하여 시 짓고 노래하며 사귐을 가졌다. 또한 속세에 뜻을 두지 않는 자들의 은둔처가 되기도 하였다. 혼탁한 정치에 미련을 버리고 낙향한 선비나 속세의 영욕에 해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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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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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에서 문필 활동을 한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조원(調元), 호는 옥소(玉所)·백취옹(百趣翁)·무명옹(無名翁)·천남거사(泉南居士). 할아버지는 사헌부 집의 권격(權格)이며, 아버지는 이조 참판에 추증된 권상명(權尙明)이다. 어머니는 용인 이씨(龍仁李氏)로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딸이다. 큰아버지는 유학자 권상하(權尙夏)이며, 작은아버지는 이조 판서 권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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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사회 운동가이자 소설가. 권운상(權雲相)[1955~1996]은 제천시 금성면 동막리에서 권수(權洙)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중경고등학교를 다니던 1973년 유신 독재를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하였으며, 국민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면서 유신 헌법 철폐를 주장하는 학생 시위를 주동하였다가 1976년 제적되었다. 이후 광부·재단사·조선소 도장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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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종필(權鍾弼)[1885~1965]은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에 살았다.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의 만세 운동에 뒤이어 제천에서도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온 이범우의 주도로 4월 17일 제천 장날에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 계획에 이기하·전필현 등과 함께 참여하였는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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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권상하(權尙夏)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권도상(權道相)이다. 공화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어 전개된 3·1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나라 안팎에서 여러 개의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서울에서는 3·1 운동의 감동 속에서 한성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때 권희목(權熙穆)[1891~1930]은 이규갑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인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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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전형적인 산간 고을이었던 제천은 근대를 거치면서 항일 의병의 본산이 되어 탄압을 받았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저항 운동을 경험하였다. 경제면에서는 밭곡식을 주로 재배하였는데 점차 담배 재배 등 수익성 작물의 재배 비중이 높아졌다. 또한 철도·도로 등 산업 기반 시설의 확충이 이루어졌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침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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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김규철(金奎喆)[1881~1929]은 궁내부 주사(主事)를 역임한 관료이었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청풍 지역에서 조동교(趙東敎)·신기영(申基永) 등과 의병을 일으켰다. 이명상(李明相) 부대의 중군장을 맡은 적도 있다. 주로 단양과 금수산(錦繡山)을 근거지로 제천·청풍·단양·충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는데, 이강년(李康秊)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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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매(公梅), 호는 벽하(碧河). 원주 안창마을에 세거하던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자손이다. 김사정(金思鼎)[1869~1942]은 진사를 지냈으며, 1895년 단발령 이후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김백선(金伯善) 등이 안창에서 의병에 가담하였을 때 사위인 이춘영을 매개로 하여 문중 대표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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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해풍(海豊). 자는 춘백(春伯), 호는 집의당(集義堂). 김태원(金泰元)[1863~1932]은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출사하여 별군직과 선전관청 선전관을 지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있은 직후 김하락·구연영·조성학·신용희 등과 함께 이천에서 봉기할 때 선봉장을 맡았다. 백현(魄峴)·이현(梨峴) 등지에서 접전하여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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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도 사과 하면 대구 혹은 경상북도 지역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기후가 변화면서 평균 기온이 낮은 지역으로 재배지가 이동되면서 충청북도 지역, 특히 제천시에서 재배하는 사과가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제천사과는 낮과 밤의 온도 차가 큰 높이 350m 이상의 고산 지대에서 길러져 단단하고, 황토와 석회석 지대가 이상적으로 구성된 토질의 혜택으로 당도가 높고 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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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에 있는 중앙고속국도 진·출입로. 남제천 IC는 고속국도 55호선[중앙고속국도]의 나들목으로서, 충청북도 제천시 중부 지역 주민들의 중앙고속국도 진입을 용이하게 하고 청풍문화재단지로의 접근성을 향상시키며, 더불어 인근에 위치한 한방 특화 농공 단지인 양화농공단지에 교통의 편리성을 제공하기 위하여 건설하였다. 중앙고속국도의 제천~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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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의 운학천에 있는 계곡. 노루목계곡은 운학천이 흐르는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는 노루목계곡에 노루들이 많이 있었는데 백운산 줄기를 비롯하여 여러 산줄기를 타고 내려와 먹이를 먹고 맑은 물을 마시며 놀다가 해가 질 무렵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이곳이 길목이라 하여 노루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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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장선리와 충주시 산척면 명서리를 연결하는 고개. 달랑고개는 장선령(長善嶺)·장선치(長善峙)·장선현(長善峴)·월령(月嶺)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조선 시대 때에 수하면 지역이었던 제천시 청풍면 장선리의 ‘장선령로(長善嶺路)’는 청풍에서 충주, 목계를 지나 서울로 통행하던 지름길이었다. 특히 달랑고개는 청풍·충주·제천·원주로 통하는 교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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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부터 1259년까지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 몽골에 맞서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서 일어난 항쟁. 7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입 중 5, 6, 7차 침입 때 몽골군이 충청북도 충주와 제천 지역까지 공격해 왔다. 고려의 최씨 무신 정권이 안정되어 가던 13세기 초 몽골족이 금을 대신하여 대륙을 지배하게 되었다. 칭기즈칸은 북중국을 장악한 후 남송과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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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출신이거나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구한말 항일 의병의 본거지였던 제천 지역은 다양한 형태의 항일 독립운동이 전개됨으로써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국권 회복의 날을 앞당기는 데 기여했다. 국권 상실 직후에는 의병론자들이 개화론자들과 연대하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나 일제의 강력한 탄압에 눌려 복벽(復辟)운동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이후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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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속하는 법정동. 동문외리(東門外里)의 ‘동(東)’자와 입읍현(立泣峴)의 ‘현(峴)’자를 따서 동현동(東峴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 제천군 현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읍내면 읍부리가 되었고, 1946년 동문외리·입읍현·백야리(白夜里)를 통합하여 동현동이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분리되어 제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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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강제동 강저테크노빌에 있는 식품업체. 들빛식품은 위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장을 설립하여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고, 기업 활동과 함께 공익 활동을 펼쳐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2001년 7월에 설립된 들빛식품은 주로 김치를 생산하고 있다. 출시되는 김치의 종류는 맛김치를 비롯해 총각김치, 백김치, 열무김치, 동치미, 물김치,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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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는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우리나라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 지방(湖西地方)이라고도 불렀는데, 바로 이 의림지가 기준이 되었다. 충청북도 제천시의 시가지 북쪽 4㎞ 부근 청풍문화재단지를 빠져나와 시내를 관통한 뒤 용두산 끝자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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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전개되었거나 제천 지역 출신자가 전개한 민족 해방 운동. 독립운동의 과정에서 제천 지역에서도 여러 가지 민족 운동들이 일어났다. 비타협적 무장 투쟁 노선의 원류가 된 의병을 비롯하여 3·1 운동이 일어났으며 학생 운동, 청년 운동 등의 사회 운동과 교육 운동도 일어났다. 3·1 운동은 고종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던 이범우(李範雨)가 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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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교리 청풍호에 잠긴 금병산의 석회암 동굴. 금병산에 위치한 동굴로 밖으로 바람이 불어 나와 ‘바람굴[일명 풍혈(風穴)]’이라고 불렀다. 입구에는 조선 초 학자 정인지(鄭麟趾)가 새긴 것으로 전해지는 ‘풍암(風岩)’ 이라는 글자가 초서체로 각자되어 있어 바람과 관련된 지명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바람굴은 청풍강 청초호(靑草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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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와 백운면 모정리에 걸쳐 있는 산. 박달산(朴達山)의 박달은 밝음, 새벽, 빛을 뜻하는 밝달에서 유래된 낱말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박달재에서 따온 명칭으로 보아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전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사(高麗史)』에 이미 박달현(朴達峴)에서 최원세(崔元世)와 김취려(金就礪)[?~1234]가 거란병을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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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 시설. 박달재 수련원은 개원 이래 연 평균 160여 개 학교 및 단체, 8만여 명의 청소년에게 양질의 다양한 수련 프로그램을 제공, 운영해 온 청소년 수련 시설이다. 문화관광부, 국가청소년위원회, 보건복지가족부 등 국가 중앙 부처 프로그램과 지방 자치 단체 및 청소년 유관 부처 주최 프로그램 공모에 참여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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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와 백운면 평동리를 연결하는 터널. 가까운 곳에 박달재가 위치하여 박달재 터널이라 이름 붙였다. 박달령 터널이라고도 한다.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왕복 4차선이다. 상행선은 2차선으로 길이는 1,960m, 총 폭은 10.2m, 유효 폭은 8.5m, 높이는 5m이다. 하행선 또한 2차선으로 길이는 1,765m, 총 폭은 10.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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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고명동 백양마을에서 용마무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백양마을의 용마무덤」은 철원 윤씨 집에서 태어난 아기장수를 누이가 온갖 방법으로 방해할 뿐만 아니라 아기장수의 비늘을 건드려 죽였다. 그 후 용마가 태어나 7일 밤낮으로 울다가 죽어서 뱀골에 장사지내 주었는데, 그곳을 용마무덤이라고 부른다는 아기장수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제천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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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한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는 외적의 침입 등 변경 지역의 급박한 소식을 중앙 정부에 전하는 통신 수단으로 낮에는 횃불[烽], 밤에는 연기[燧]를 이용했다. 조선 시대 봉수는 위치에 따라 경봉수(京烽燧), 연변 봉수(沿邊 烽燧), 내지 봉수(內地 烽燧)로 나뉜다. 경봉수는 서울 목멱산 봉수를 말하고, 국경이나 해안 근처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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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에 있는 충북선의 기차역. 봉양역은 충청북도 제천시의 봉양읍과 봉양리에서 따온 역명이다. 제천시 봉양읍은 원주와 충주의 분기점으로 충북선과 중앙선이 교차하는 환승지 역할을 한다. 봉양역은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1941년 7월 1일 안동철도국 소속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44년 4월 30일 역사를 준공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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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북진나루 옆에 있는 마을이므로 북진나드리 또는 북진리라고 하였다. 북진나루는 달리 북창나루, 북창진(北倉津)이라고도 한다. 북진나루는 옛 청풍읍 북창 앞에 있던 나루로 제천과 청풍을 연결하는 중요한 뱃길이었다. 서울 마포나루에서 출발한 소금 배가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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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교에서 단양 방면으로 청풍호를 끼고 있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10여 분쯤 달리면 도화리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쳐 산중턱에 자리 잡은 고급스런 ES리조트에서 조금 더 가면 호젓한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에 도착한다. 능강리는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강변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는 넓고 잔잔한 청풍호수가 펼쳐져 있고, 뒤편으로 기암괴석과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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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개되는 일체의 행동. 사회 운동의 의미는 사회의 변혁이나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집단으로서 지속적으로 행하는 행동으로 매우 광범위한 여러 형태와 조직을 포함한다. 현대의 사회 운동은 각각의 한정된 목표뿐만 아니라, 공통적인 목표를 위해 보완하고 공조해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제천 지역의 사회 운동의 흐름을 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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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산 아래 자리한 공전리는 주포천[일명 공전천]이 마을 전체를 휘돌아 흐르는 아늑한 산골 마을이다. 공전리에서 지방도 38호선까지 이어진 길은 예전에는 우마차조차 다니기 어려운 소로(小路)였다. 공전삼거리에서 구불구불 좁은 오솔길을 따라 마을까지 들어오려면 도보로 1시간 남짓 소요된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한 고갯마루는 일제 강점기 순사들의 발길도, 6·25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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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을 기해 충청북도 제천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제천은 항일 의병의 전통이 있는 곳이었으므로 일제에 대한 저항감이 높았다. 무단 통치를 겪으면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고 전통적인 충군애국(忠君愛國) 사상으로 인하여 고종(高宗)의 죽음에 대한 추모의 정서가 높았다. 이러한 가운데 신식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만세 운동을 주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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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위치한 배론은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 중 하나이다. 이곳은 초기 천주교인들의 피난처일 뿐만 아니라 황사영(黃嗣永)[세례명 알렉산데르]이 백서를 쓴 곳이며, 한국 천주교 신학교의 요람인 성 요셉 신학당이 있던 곳이다. 또한 한국 천주교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崔良業)[세례명 토마스] 신부의 묘소가 있는 곳이자, 한국 천주교의 10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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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제천에서 활동한 호좌의진 의병 대장 유인석의 의병 활동 관련 자료를 모은 책.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본관은 고흥이며,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庵)이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출신이다. 유중곤(柳重坤)의 아들이며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14살 때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에게 수학하였으며, 그 뒤 김평묵(金平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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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의 황강서원에 배향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 아버지는 사옹원 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며,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1607~1689]은 충청도 옥천군 구룡촌(九龍村) 외가에서 태어나, 후에 회덕(懷德)에서 살았다. 연산(連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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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에서 절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송한리 절골 유래」는 전반부는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피난 온 부인을 머슴이 겁탈하자 부인이 자결하여 설통바위가 되었다는 암석유래담이고, 후반부는 불공을 드리러 온 여인을 승려가 겁탈하자 부처가 노하여 절이 폐사되었다는 사찰폐사담이다.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에는 절골[寺谷]이라는 마을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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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천남동과 영천동을 연결하는 다리. 제천시의 관문인 신당공원 입구에 위치한 하소1동 신당개마을의 지명을 따서 신당교라 이름 붙였다. 4차선 교량으로 총연장은 70m, 총 폭은 20m, 유효 폭은 16m이다. 높이는 2.1m, 경간 수는 5개, 최대 지간장은 14m이며, 설계 하중은 DB-24톤, 통과 하중은 50톤이다. 상부 구조는 철근 콘크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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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우리나라 신종교의 역사는 근대부터 시작되었다. 서구적 종교 개념과 정교 분리 원칙이 수용, 확산됨으로써 20세기 초부터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신종교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예컨대 1901년에 증산도, 1905년에 천도교, 1916년에 원불교가 시작되었고,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호와의 증인과 천부교[1955년] 등이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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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성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안동 권씨의 시조는 권행(權幸)으로, 신라 말 안동의 별장(別將)으로 있다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웠다. 권행은 본래 김씨였으나 고려 태조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은 이후 후손들이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안동 권씨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크게 번성하여 왕비 1명, 문과 급제자 33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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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실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백순(百順), 호는 순암(順菴)·한산병은(漢山病隱)·우이자(虞夷子)·상헌(橡軒), 시호는 문숙(文肅). 할아버지는 예조 참의 안서우(安瑞雨)이고, 아버지는 오위도총부 부총관 안극(安極)이다.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할아버지가 가속(家屬)을 거느리고 제천 유원(楡院)에 있던 친척 윤훈갑의 집에 머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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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한약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시장. 약령시는 한약재의 유통과 관련하여 보건·의료적 기능과 지역 경제를 이끌어 온 원동력으로서 경제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0세기 전반에 새로운 약령시가 다수 개설되었는데, 이미 조선 효종 때 개설되었다가 성쇠를 계속한 대구, 원주, 전주를 비롯하여 제천, 개성, 평양, 진주, 대전, 함흥 등에 약령시가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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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독자적 언어 체계와 특이한 언어 현상. 기원적으로 한 언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역적·사회적으로 분화되어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사투리[방언]라고 말하는데, 특정 언어 집단에서 쓰이면서 다른 언어 집단의 언어 체계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한 언어의 변종(變種)이자 변이체(變異體)를 일컫기도 한다. 이 중에서 특정 지역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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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 31일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 중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악산 국립공원은 2개 도[충청북도·경상북도], 4개 시·군[제천시·충주시·단양군·문경시], 9개 읍면, 34개 리에 걸쳐 있다. 북으로는 청풍호가 월악산을 휘감고, 동으로 단양팔경과 소백산 국립공원, 남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 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둘러싸고 있다. 월악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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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종합 예술. 제천 지역 연극의 시작은 박육경(朴六慶)·김학근(金學根)·한마당·강이원(姜履遠) 등에 의해 구성된 화성단(火星團)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1910년대 전국적으로 신극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제천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20년 8월 제천청년회 임시총회에서 조혼의 폐해를 계몽하는 신파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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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를 시조로 하고 이겸우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연안 이씨의 시조는 당나라 장군 이무(李茂)이다. 그는 당 고종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다가 660년 나·당 연합군 소정방(蘇定方)의 부장으로 신라에 왔다. 백제를 평정(平定)하는 데 공을 세워 연안후(延安侯)에 봉해졌고, 그 후 신라에 귀화하여 살게 되었다. 그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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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 수도권과 대도시로 집중되고 있는 문화 산업이 지방에서 활성화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천 역시 다른 지방 도시들과 다를 바 없이 영화 제작 관련 사업은 전무한 실정이다. 하지만 제천 지역은 영화 산업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이는 청풍 산하(山河)의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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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일정한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영사막에 재현하는 종합 예술. 수도권과 대도시로 집중되고 있는 문화 산업이 지방에서 활성화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제천 역시 다른 지방 도시들과 다를 바 없이 영화 제작 관련 사업은 전무한 실정이다. 하지만 제천 지역은 영화 산업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이는 청풍 산하(山河)의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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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매년 옥소 권섭을 기리기 위하여 개최되는 예술제. 조선 후기 문인 옥소(玉所) 권섭(權燮)[1671~1759]은 당시의 주된 학문인 성리학의 논리에서 벗어난 문인이었다. 제천 주변의 절경을 읊은 연시조 「황강구곡가(黃江九曲歌)」는 권섭의 국문 시조 중 절창으로 평가되고 있다. 「황강구곡가(黃江九曲歌)」의 제3곡은 다음과 같다. “삼곡(三曲)은 어디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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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는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제천에서 충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교통의 요지여서 대외 항쟁사 등 역사의 중요할 길목마다 주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주변의 역사성 때문에 교통로가 아닌 관광 자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박달재는 흔히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박달재는 정확히 말해서 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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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원대리에 있던 고려 시대~조선 시대 권일원(權一院) 터. 권일원이 있었던 곳은 단양과 청풍의 접경 지역으로, 계란치[230m]에서 서쪽 청풍강과 함께 육로의 분기점으로 교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죽령대로는 수산역과 황강역을 경유하여 충주로 통하는 길목으로 지금의 국도 36호선이 통행하는 큰길가에 목조와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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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에 있는 시인 오탁번이 설립·운영하는 문학관. 원서문학관은 제천 출신인 시인 오탁번이 30여 년간 지낸 서울을 떠나 고향인 백운면 애련리에 정착하여 자기 자신을 찾고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원서는 먼 서쪽을 의미하며 백운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오탁번은 2002년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에 있는 백운초등학교 애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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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원주(原州). 초명은 원용석(元容錫), 자는 복여(復汝), 호는 삼계(三戒). 원용팔(元容八)[1862~1906]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이호(梨湖)에서 무장의 후예로 태어났으며, 이근원과 유중교(柳重敎)에게 나아가 배웠고 장담에도 드나들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의병이 일어날 때 여주에서 봉기한 심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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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굴리 중심 마을인 송내[일명 송천] 북쪽에 있는 법개의 지형이 달 모양이고 마을 입구에 동굴이 있어 ‘달 월(月)’자와 ‘굴 굴(窟)’자를 써서 월굴리라 하였다. 법개 뒷산에는 법개사가 있었다고 전해 온다. 조선 말 청풍군 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높은다리·배나무들·석동골 등을 통합하여 제천군 금수면 월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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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리는 제천시 한수면의 면소재지다. 한수면사무소는 원래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공사로 인해 1984년 6월 송계리로 이전하였다. 제천에서 충주 수안보 방향으로 청풍호를 끼고 가다가 월악교가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산자락에 송계리가 위치한다. 또 충주 수안보에서 제천 방향으로 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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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리는 제천시 한수면의 면소재지다. 한수면사무소는 원래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공사로 인해 1984년 6월 송계리로 이전하였다. 제천에서 충주 수안보 방향으로 청풍호를 끼고 가다가 월악교가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산자락에 송계리가 위치한다. 또 충주 수안보에서 제천 방향으로 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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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정치인. 유홍렬(柳鴻烈)[1907~1966]은 본관이 문화(文化)로, 수원공립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제천군 재무 부서에서 근무한 뒤 청풍금융조합·주문진금융조합·문막금융조합에서 서기로 일하였고 해방 후에는 청풍면장을 역임하였다. 1945년 5월 10일 정부 수립 이후에 시행된 최초 민의원 선거에 대동청년단 소속으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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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하여 3년 1개월 동안 지속된 민족상잔의 전쟁인 6·25 전쟁에서 제천은 전황에 따라 몇 차례나 공산군과 국군 및 미군에 의해 점령되면서 많은 희생과 갈등을 겪었다. 6·25 전쟁 초기에 강원도와 충청북도 북부 지역 방어는 국군 제6사단과 제8사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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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11년 사이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을미년[1895년] 말의 단발령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호좌의진이 봉기한 이래 1905년(고종 42)의 을사의병, 1907년(순종 1)의 정미의병에 이르기까지 제천 지역에서는 의병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895년(고종 32)에 있었던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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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崗·雲岡).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이강년(李康秊)[1858~1908]은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도태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3월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으나, 개화 정책에 불만을 갖고 낙향한 이후 잠시 동학 조직과 관련한 의병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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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공기(李公沂)의 공신 교서와 초상화. 이공기는 선조 연간[1567~1608]에 어의를 지낸 인물로서, 특히 침구(針灸)에 능하여 임금을 비롯하여 대관(大官)의 치료에 공이 많았다. 본교서는 임진왜란 때 왕을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1604년(선조 37)에 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忠勤貞亮節策扈聖功臣) 3등에 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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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사회 운동가이자 교육가.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노촌(老村).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집안의 후손이다. 이구영(李九榮)[1920~2006]은 한학을 공부하다가 뒤늦게 신학문을 접하였다. YMCA 청년회 학교 중등부에서 수학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잠시 다녔다. 황한의학원에 입학하여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주의를 접한 뒤 항일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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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기하(李起夏)[1897~?]는 1919년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 이후 제천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온 이범우(李範雨)의 주도로 권종필(權鍾弼), 전필현(全弼鉉) 등과 4월 17일 제천 장날에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는데, 중간에 발각되어 관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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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맹삼(李孟三)[1867~1919]은 일명 이희민(李喜敏)이라고도 한다. 1919년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 이후 제천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온 이범우(李範雨)의 주도로 4월 17일 제천군 제천면 장날 장터에서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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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이주윤(李柱允), 자는 우문(又文), 호는 몽학(夢鶴). 이명하(李命夏)[1878~1921]는 경기도 광주에서 왕실의 후예로 태어났다. 위정척사론(衞正斥邪論)을 견지하던 유인석(柳麟錫)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하고, 서울로 올라가 근대 교육 기관으로 변신 중이던 성균관에서 한학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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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범우(李範雨)[1892~1969]는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부명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제천군 잠업계 조수로 근무하였다. 1919년 봄 제천군 대표로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려고 서울에 갔다가 평소에 사숙하던 최린(崔麟)을 만나 만세 운동을 권유받았다. 최린은 3·1 운동을 주도한 천도교 계열의 인사로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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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사정거사(思靖居士). 후에 이의신(李宜愼), 이직신(李直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소응(李昭應)[1852~1930]은 춘천에서 태어나서 성재 유중교(柳重敎)에게 배웠다. 유중교가 화서 이항로(李恒老)의 심설(心說)을 보완한 것을 계기로 화서학파가 양분될 정도의 논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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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에 있는 종합 휴양 시설. 남한강 상류에 충주댐이 건설되고, 1988년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에서 충주호권 관광 종합 개발 계획을 수립하면서 제천의 능강지구가 관광 개발 예정 지구로 선정되었다. 1991년부터 1992년까지 능강지구 개발을 위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관광 경향과 휴양지에 대한 설문 조사 및 분석 등을 실시하여 당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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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전투에 참가한 관동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진(共振), 호는 중남(重南). 일명 이준영(李竣榮) 이인영(李麟榮)[1867~1909]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내룡리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발표된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원주에서 봉기하여 주로 여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과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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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치심(致心), 호는 항재(恒齋)·옥산(玉山). 이정규(李正奎)[1865~1945]는 본래 소론 집안인 탓에 송시열의 학문을 대단하지 않게 보았는데, 우연히 『송자대전(宋子大全)』을 보고 감복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존화양이(尊華攘夷)’를 주장하는 화서학파에 입문하게 되었다. 안승우(安承禹)와 만나 의기투합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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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중(紀中), 호는 관의재(寬毅齋). 이조승(李肇承)[1873~1900]은 제천시 한수면 북노리에 살았다. 일찍이 이인구(李寅龜)·지운상(池運象) 등에게 배웠고, 나중에 유중교(柳重敎)가 장담으로 내려오자 그 문하에 들어가서 배움을 청하였고 유치원(兪致元)에게도 배웠다. 유중교가 세상을 뜬 후에는 유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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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대재(大哉), 호는 휘암(徽菴)·은구와(隱求窩). 명문가로 이름 있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후손이다. 동생으로 유인석(柳麟錫)의 종사로 활동한 이조승(李肇承)이 있다. 이주승(李胄承)[1870~1946]은 선공감 감역관을 지냈으며, 1895년(고종 32) 제천 을미의병 때 가문의 재력과 중앙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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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우삼(友三), 호는 괴은(槐隱). 이춘영(李春永)[1869~1896]은 지평[현 경기도 양평군] 출신이다. 유중교(柳重敎)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으나 그의 척사 사상에 심취하였다고 한다. 이춘영에 대해서는 이념 지향적이었던 제천 의병의 지도부 속에서 예외적으로 실무적인 지도자였고, 일본의 포위망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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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의 역사.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일제는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행정 구역을 개편하고 여러 사회 간접 자본을 확충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천 지역에서는 항일적인 색깔이 분명한 이범우(李範雨) 등이 주도한 3·1 운동, 제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맹휴 투쟁, 김학간·김정호 등이 주도한 제천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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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보(敬甫), 호는 신당(愼堂). 아들로 임병필이 있다. 임의상(林宜常)[1854~?]은 제천군 길고개[현 제천시 왕암동]에 살았다. 이소응(李昭應)이 주도하는 장담 강회에 출입하며 의병론자들과 뜻을 같이하였고, 1904년(고종 41) 말에는 유인석(柳麟錫)의 지시에 따라 일진회를 견제하기 위해 시행하였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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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필현(全弼鉉)[1894~?]은 1919년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서울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 이후 제천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돌아온 이범우(李範雨)의 주도로 이기하(李起夏)·권종필(權鍾弼) 등과 4월 17일 제천 장날에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준비 도중에 발각되어 관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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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10일, 손보기 교수가 이끄는 연세대학교 박물관 동굴탐사단은 마침내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동굴을 방문하게 된다. 단양, 제천 일대 선사 유적을 찾아다니던 중 제천에서 고대사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조석득의 길안내를 받아 한 동굴을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손보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단양에서 몇 개의 동굴을 조사하고 나서 이 굴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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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화백(和百), 호는 송운(松雲). 정운경(鄭雲慶)[1861~1939]은 강한 재지(在地) 세력을 갖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재종순 정일원(鄭一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제적으로는 빈한하여 영춘으로 이주하였으며, 관권이나 토호의 수탈로부터 농민들을 보호하려는 의협심을 내기도 하였다. 1894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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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의림동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 제천고속버스터미널은 철도 교통뿐만 아니라 도로 교통의 여건이 좋아지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서울로 이동하는 시민들에게 좀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76년 1월 23일 건립하였다. 대지 면적은 1658㎡, 연면적은 380㎡, 주차장 면적은 410㎡이다. 건물은 단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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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석축 산성. 제천 덕주산성이 있는 월악산은 남부 지방과 중부 지방을 가르는 천연의 분수령으로, 계립령(鷄立嶺), 조령(鳥嶺), 이화령(伊火嶺) 등 고대로부터 이용된 많은 교통로가 형성되어 있다. 이중에서 계립령은 제천 덕주산성에서 남쪽으로 경상도와 통하고, 북쪽으로 남한강을 따라 충주와 서울에 이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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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의림동에 있는 버스 터미널. 제천버스터미널은 제천 시민들이 전국 각지로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1973년 6월 5일 준공하였다. 2010 제천 국제 한방 바이오 엑스포를 앞두고 사업비 9억 2000만 원을 들여 2009년 8월~2010년 6월 제천버스터미널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완료하였다. 실내는 대합실 및 화장실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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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화산동에 있는 천부교회. 천부교회는 1955년 12월 원효로 전도관 건립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마포 서울중앙전도관과 소사신앙촌 오만제단 등을 비롯하여 수백개의 교회가 전국에 새워졌다. 1960년대 후반 덕소신앙촌 교회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제2중앙전도관이 발족되면서 이후부터는 중앙 전도관이 지관 교회를 총괄하는 형태로 개편되었다.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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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충청북도 제천에서 결성되어 치안 유지 활동을 수행했던 민간 자치 조직. 제천군 치안유지위원회는 해방 직후에 한필수(韓弼洙)를 중심으로 제천에서 결성되어 중앙의 건국준비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활동하는 한편, 지역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선총독부 권력이 붕괴되고 미군이 주둔할 때까지의 권력 공백기에 건국준비위원회가 실질적인 정부 역할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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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시(市). 제천시는 충청북도 동북부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단양군 어상천면과 강원도 영월군 남면, 남쪽은 제천시 금성면, 서쪽은 제천시 봉양읍, 북쪽은 제천시 송학면과 접하고 있다. 제천시의 동쪽에는 태백산맥이 남북 방향, 북서쪽에는 차령산맥이 북동~남서 방향, 동남쪽에는 소백산맥이 북서~남서 방향으로 각각 뻗어 있다. 한편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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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시(市). 제천시는 충청북도 동북부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단양군 어상천면과 강원도 영월군 남면, 남쪽은 제천시 금성면, 서쪽은 제천시 봉양읍, 북쪽은 제천시 송학면과 접하고 있다. 제천시의 동쪽에는 태백산맥이 남북 방향, 북서쪽에는 차령산맥이 북동~남서 방향, 동남쪽에는 소백산맥이 북서~남서 방향으로 각각 뻗어 있다. 한편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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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산지와 산지 사이에 발달한 넓고 평탄한 지형. 제천평야는 제천시에 있는 완만하고 평평하게 이어지는 침식 분지 지대이다. 충청북도 내륙 지방은 강원도와 인접하여 깊은 산골이 연상되나 제천은 이웃한 단양과 달리 평야 지대가 발달해 있다. 넓게는 제천 시내의 동쪽으로는 송학산, 무등산, 왕박산, 가창산 등의 서편, 서쪽으로는 시랑산 동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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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에서 대랑동을 거쳐 서울 청량리역과 경주시 경주역 간을 연결하는 철도. 중앙선은 제천에서 충북선, 태백선과 교차하고, 경상북도 영주에서 경북선, 영동선과 교차하며, 경부선과 직접 연결된다. 특히 험준한 산악 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차령산맥을 넘기 위한 치악산의 금대터널은 기차의 등판 능력을 감안하여 환상선(環狀線)으로 굴착하고,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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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신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강씨(姜氏)의 최초 성(姓)을 가진 사람은 중국의 염제신농(炎帝神農)이라 한다. 한국의 강씨는 고구려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시조(始祖)로 모시고 관향(貫鄕)을 진주(晋州)로 정하였다. 강이식 장군은 597년[고구려 영양왕 8] 수나라를 공격하였으며, 598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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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향토 가요로 대표적인 노래가 「울고 넘는 박달재」이다. 1984년에 발표된 이 곡은 반야월이 노랫말을 쓰고 김교성이 음을 붙여 박재홍이 노래하였다. 이후 제천 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타 지역 사람들도 제천하면 자연스레 이 노래를 떠올릴 정도로 「울고 넘는 박달재」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외에도 제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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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시내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중앙동. 사람들이 깨어 날 시간 중앙동의 여기저기에서 문이 열린다. 하루를 시작하는 중앙동 사람들의 분주함이 이곳 중앙동 시장에 숨을 불어 넣는다. 제천이 1980년 시(市)로 승격되기 이전부터 중앙동은 제천의 중심가였고, 지금도 여전하다. 더군다나 중앙동과 가까운 곳에 제천역과 제천고속버스터미널이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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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청풍 김씨의 시조는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김대유(金大猷)로,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정구의 17세손이다. 김대유가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으로 하였다. 김대유의 묘소는 옛 청풍부 도전리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실묘하여 후손들이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에 시조 제단(祭壇)과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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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청풍 김씨의 시조는 고려 말 문하시중을 지낸 김대유(金大猷)로,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정구의 17세손이다. 김대유가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으로 하였다. 김대유의 묘소는 옛 청풍부 도전리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실묘하여 후손들이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에 시조 제단(祭壇)과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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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제천 출신의 목사.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최경팔(崔慶八), 자는 선장(善章), 호는 탁사(濯斯). 할아버지는 최승장(崔承章)이고, 아버지는 의관 최영래(崔永來)[1829~1903]이며 어머니는 곽제한(郭濟漢)의 딸이다. 최병헌(崔炳憲)[1858~1927]은 제천시 신월동 새월이에서 태어났다. 감리교 목사로 어려서부터 『영환지략(瀛環志略)』을 읽으면서 기독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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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송산(松山), 호는 청계(淸溪), 이명은 권태준(權泰俊). 최욱영(崔旭永)[1854~1919]은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민긍호(閔肯鎬)[?~1908, 개항기 의병장]에 호응하여 신림(神林) 안강리(安康里)에서 의병을 모집한 뒤 여러 곳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후에는 이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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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에서 봉양읍 주포리를 거쳐 대전과 제천 간을 연결하는 철도.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에서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까지 지나는 전 구간이 충청북도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충북선이라고 이름 붙였다. 충북선의 총 길이는 115.0km이고 궤도의 폭은 1,435㎜이다, 이 중 제천시 행정 구역 내를 통과하는 구간의 총 길이는 1만 1653m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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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중앙로 2가에 있는 원예 농업 종사자들의 협동조합. 충북원예농업협동조합의 제천지점은 과수업, 원예업을 경영하는 조합원에게 필요한 기술·자금·자재 및 정보 등을 제공하고,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 확대 및 유통 원활화를 도모함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1990년 5월 개점하여 신용 사업과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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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 학현천에 있는 계곡. 학현계곡은 학현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학현에 숫학, 하학현에 암학 등으로 상징되는 2개의 학을 닮은 기암에서 학현리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단양군 적성면 하원곡리와의 경계 지점에 동산[896.2m]이 솟아 있고 동산의 동남쪽에 754고지, 서쪽에 성봉[824m], 754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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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태백선·충북선이 만나는 곳이자 우리나라 최대의 조차장이 위치한 제천시는 철도 교통의 요지로서 철도에 의해 도시가 발달한 곳이다. 그러나 근년에 자동차 도로가 정비됨에 따라 철도 교통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이 줄어들었다. 근대 이전의 제천은 산으로 둘러싸여 육로 통행이 용이하지 않은 고을이었다. 그러나 대신 남한강 물길이 지역을 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교통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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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에 있는 사설 도서 박물관.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 175번지에 있던 수산초등학교 추동분교장은 학생 수의 격감으로 1998년 3월 1일에 폐교되었다. 장서가(藏書家)인 양문헌은 노후에 소장하던 도서를 주로 대학교와 박물관에 기증하였으나 관리 부실로 자료의 역사적·문화적인 존재 가치가 평가 절하되어 폐기 처분되는 사례가 빈번함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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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에 있는 사설 도서 박물관. 제천시 수산면 도전리 175번지에 있던 수산초등학교 추동분교장은 학생 수의 격감으로 1998년 3월 1일에 폐교되었다. 장서가(藏書家)인 양문헌은 노후에 소장하던 도서를 주로 대학교와 박물관에 기증하였으나 관리 부실로 자료의 역사적·문화적인 존재 가치가 평가 절하되어 폐기 처분되는 사례가 빈번함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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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군(韓溪君) 이공기(李公沂)는 선조 대에 『의림촬요(醫林撮要)』를 저술한 양예수(楊禮壽),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주 저자인 허준(許俊)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선조를 진찰한 조선의 저명한 어의이자 의관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수의(首醫)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어의로서 명성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는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허준과 같이 호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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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옥(元玉·原玉), 호는 성운(醒雲). 홍선표(洪選杓)[1872~?]는 연풍[현 충청북도 괴산군]에 살았으며, 유중교(柳重敎)·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유인석의 호좌의진에 이조승(李肇承), 이기진(李起振), 정화용 등과 함께 종사로 참여하였다. 영남의 의병을 북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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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에서 백서를 작성하였다가 체포된 뒤 순교한 천주교 신자. 본관은 창원(昌原). 이명은 황시복(黃時福),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 황사영(黃嗣永)[1775~1801]은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진사가 되었다.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운 뒤 1790년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전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1795년(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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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천에서 백서를 작성하였다가 체포된 뒤 순교한 천주교 신자. 본관은 창원(昌原). 이명은 황시복(黃時福),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 황사영(黃嗣永)[1775~1801]은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입격(入格)하여 진사가 되었다.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운 뒤 1790년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전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1795년(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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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황사영이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던 밀서.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黃嗣永)이 신유박해(辛酉迫害)의 내용과 대응 방안에 대해 베이징에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던 밀서이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났을 때 정약종 등 교회 지도자들이 거의 체포되었는데, 황사영은 박해를 피하여 서울을 떠나 제천으로 피신하였다. 이곳에 김한빈과 황심을 통해 신유박해의 진행 과정을 전해 듣고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