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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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對蒙抗爭 |
영어음역 | Daemong Hangjaeng |
영어의미역 | Struggles against the Mongol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1231년부터 1259년까지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 몽골에 맞서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서 일어난 항쟁.
[개설]
7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입 중 5, 6, 7차 침입 때 몽골군이 충청북도 충주와 제천 지역까지 공격해 왔다.
[역사적 배경]
고려의 최씨 무신 정권이 안정되어 가던 13세기 초 몽골족이 금을 대신하여 대륙을 지배하게 되었다. 칭기즈칸은 북중국을 장악한 후 남송과 고려, 일본까지 정복하려 하였다. 고려가 1219년에 몽골군의 도움을 받아 거란족을 몰아낸 일을 빌미로 몽골이 과도한 공물을 요구하자 최씨 정권과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이후 몽골 사신이 귀국 도중 압록강에서 살해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충돌의 계기가 만들어졌다.
[제천 지역에서의 전투]
『고려사』에는 제천 부근에서 벌어진 고려군과 몽골군의 전투 과정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231년(고종 18) 12월 몽골군이 충청북도 충주까지 휩쓸 때에 노군(奴軍)의 지휘관인 지광수(池光守)와 승려 우본(牛本) 등이 노군 및 잡류(雜類)를 이끌고 관리들까지 달아나 버린 충주를 지켜냈다. 이 공으로 우본은 대원사(大院寺)의 주지로 임명되었다.
1253년에 몽골 장수 야굴(也窟)의 군대가 충주를 70여 일 동안이나 포위한 일이 있었는데, 이때도 충주산성 별감 낭장인 김윤후(金允侯)가 관노들을 격동시켜 지켜냈다. 이듬해에도 차라대(車羅大)의 몽골군을 충주산성에서 막아냈으며, 1255년 가을에는 남에서 돌아오는 몽골군을 대원령(大院嶺)[하늘재]에서 맞아 1,000여 명을 베는 전과를 올렸다.
1256년(고종 43) 4월에는 몽골군이 충주성을 치고, 이어 충주산성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관리와 노약자들이 월악산(月嶽山)의 신사(神祠)로 피신하였는데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고 비바람이 불고 우레가 치며 우박이 쏟아지자 몽골군이 신령의 조화라 여기고 물러났다고 한다.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볼 때, 몽골군에 대항한 고려의 저항은 주로 산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충주와 같은 평지성으로 적을 막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노군들이 충주를 지켜냈다는 것도 산성에서 수성전(守城戰)을 벌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몽골군이 물러선 다음 관리들이 돌아와 관가의 은그릇 등을 점검하여 없어진 것을 추궁하자 노군들이 몽골군이 약탈해 갔다고 한 것을 보아도 충주성이 몽골군에 짓밟혔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월악산의 충주산성이라고 한 것은 오늘날 제천의 덕주산성(德周山城) 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덕주산성과 대원령으로 이어지는 길목은 영남으로 통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몽골군의 이동로이기도 했다는 사실, 그리고 1231년의 충주 방어에서 공을 세운 승려인 우본을 대원령 근처에 있는 대원사의 주지로 임명한 사실, 월악산 신사와 관련한 일화 등은 전투가 덕주산성을 중심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 밖에 1258년에 있었던 몽골의 마지막 침입 때에도 충주별초가 제천의 박달재에 복병하였다가 기습하여 포로와 군수 물자를 노획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는 몽골과 강화가 이루어지기 직전에 있었던 싸움으로서 화해의 조건을 좀 더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게 한 중요한 전투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의의와 평가]
제천의 월악산 일대[덕주산성 부근]와 박달재에서 전개된 전투는 대체로 영남 지역이나 강원도 쪽으로 진출하려는 몽골 군대를 막아내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월악산은 남부 지방과 중부 지방을 가르는 천연의 분수령으로, 특히 덕주산성에서 남쪽에 위치한 계립령은 경상도와 통하고 북으로는 남한강을 따라 충주와 서울까지 통하던 중요한 교통로였다. 박달재 역시 제천에서 충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요충지이다. 이 지역 방어에 성공함으로써 파죽지세로 뻗쳐 나가던 몽골군의 기세를 꺾는 데 일조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