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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950
한자 李九榮
영어음역 Yi Guyeong
이칭/별칭 노촌(老村)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4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50년 5월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58년 7월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93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99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성격 사회 운동가|저술가
성별
본관 연안(延安)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의 사회 운동가이자 교육가.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노촌(老村).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집안의 후손이다.

[활동 사항]

이구영(李九榮)[1920~2006]은 한학을 공부하다가 뒤늦게 신학문을 접하였다. YMCA 청년회 학교 중등부에서 수학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잠시 다녔다. 황한의학원에 입학하여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주의를 접한 뒤 항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먼저 고향의 벗들과 함께 ‘월악동지회’를 조직하고 독서 토론을 하면서 은밀하게 항일 운동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서울 영등포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한편, 경기도 포천군 백운동을 근거지로 조직한 빨치산 활동에도 가담하였다. 1944년 독서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8개월간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 다시 상경하여 독서회 관련자들과 함께 영등포에서 노동자를 계몽하고 선동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던 좌익 계열에서 미군정의 정책을 비판하고 공산당의 정책을 선전하는 활동을 하였다. 1949년 초 고향에서 있었던 빨치산 사건, 즉 한수면장 피살 사건에 연루되어 2개월간 고초를 치르고 무죄로 석방되었다. 또다시 1950년 5월 성시백 사건에 연루되어 잠시 옥고를 치렀다.

6·25 전쟁 때에는 서울에서 토지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패주하는 인민군과 함께 북으로 후퇴하였다. 이후 강계의 피난지에 세워진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회복된 환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휴전 후에는 희천의 도서관에서 근무하다가, 중앙당에 소환되어 대남 공작원 교육을 받고 1958년 7월 남파되었다가 곧바로 체포되었다.

이후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전향 요구를 받는 가운데 집안에 전하던 의병 자료를 번역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1980년 22년 만에 석방되어 정원태와 더불어 이문학회(以文學會)를 창설하고 한학을 가르치는 한편, ‘의병정신선양회’를 조직하여 의병의 의미를 밝히려고 노력하였으며 해방을 전후 시기의 우리 역사에 대한 귀중한 증언도 많이 남겼다. 별세하기 1년 전, 집안에 전하던 자료를 제천의병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저술 및 작품]

1993년 감옥에서 시작한 의병 자료 번역을 마무리하여 『호서의병사적(湖西義兵事蹟)』을 펴냈다. 『호서의병사적』의 출판은 제천 지역의 의병사 연구에 큰 전환점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제천시 문화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외에 『찬 겨울 매화 향기에 마음을 씻고』[2004], 『연행만초』[1992]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98년 제천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9.26 신규 사진 등록 및 대표시청각 지정 사진 등록 및 연결(GC033P4929)-대표시청각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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