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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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생. 본관은 제주. 자는 경지(景志), 호는 초광(樵㹰), 초명은 고구훈(高龜訓)이다. 일명 고승천(高承天)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유학(幼學) 고영길(高永吉)이다. 고사훈은 나이 30살에 이르러서야 한학에 열중하고 북학을 배워 이용후생을 실천하려 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체결되자 육지에서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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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에서 토산물인 감귤을 공물로 바치던 제도. 감귤은 제주에서 주로 생산되는 과실로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제주의 중요한 진상품이었다. 제주도에서는 11세기부터 진상품으로서 감귤 재배가 이루어졌는데, 조선 시대로 들어서며 귤과 유를 별공으로 해서 공납하게 하였다. 1408년(태종 8) 진상제인 공부제가 실시되면서 감귤 재배가 적극 권장되어, 각 지방마다 과원을 설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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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한 제주 지역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인명록. 1720년경에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서문, 절목, 명단의 순으로 되어 있다. 1558년에 무과에 급제한 양연(梁淵)으로부터 1815년에 급제한 이윤방(李潤邦)까지는 급제연대가 기록되어 있고, 그 후 좌인호(佐仁豪)까지는 연대 기록 없이 성명만 기록되어 있으며 수록된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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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년경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문신 김상헌의 제주 기행문. 『남사록(南槎錄)』은 일종의 일기체 형태로 서술된 책으로,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1601년(선조 34)에 안무어사로 제주에 파견되어 기록한 일종의 기행문이다. 『남사록』은 규장각 도서번호 147270번 2권 1책과 147271번 2권 1책이 같이 합철되어 있다. 즉 앞의 2권 1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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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관둔답(官屯畓)을 경작하는 사람. 답한이란 제주 지역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직역명이다. 이 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관둔답의 존재로 볼 때 조선 전기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답한은 관둔답이 소속된 관청에 따라 영답한(營畓漢)·목답한(牧畓漢)·삼성사답한(三姓祠畓漢)·답한(畓漢) 등으로 나뉘었다. 즉 영답한은 제주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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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인간이나 차가 다니는 비교적 넓고 큰 길. 해방 후 제주의 교통은 1961년 5·16군사쿠테타 정부가 수립된 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주의 미개발된 천연 자원과 민속 등을 자원으로 하여 관광 개발을 정부시책으로 추진하면서부터 사회 간접 자본의 건설로서 시작되었다. 그 뒤 정부는 1973년 여러 차례의 수정과 보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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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거짓말 사기에 대한 민담. 「모관 청부와 정의 청부」는 거짓말 닷 되짜리 모관 언청이가 거짓말 한 말짜리 정의 언청이를 속여 재물을 취한다는 내용으로, 공간적 배경은 큰 의미가 없다. 소화(笑話) 중 사기담의 특징대로 상대방을 속이고 의도했던 바를 성취하는 이야기로, 누가 과연 거짓말의 대가인가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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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제도종교에 비하여 성립 시기가 오래 되지 않은 종교 단체들. 탐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주민들의 정신세계는 대체로 무교신앙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제주도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 대상은 한라산신과 바다의 용왕(龍王)이었다. 무교신앙이 지배적이던 제주도에 새롭게 들어온 종교는 불교였다. 탐라국시대부터 절이 있었다는 설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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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역사. 제주도는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한반도 남쪽을 거쳐 일본 큐슈[九州]로 이어지는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중도 기항지가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과거 유물·유적의 분포지가 대부분 제주도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의 선진문물의 유입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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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409년(태종 9) 남원부사를 지냈으며, 1414년(태종 14) 윤임(尹臨)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417년(태종 17) 3월 예조참의에 임명되어 떠났다. 이후 인령부윤·좌군총제(左軍摠制)를 거쳐 경주부윤 재임 중 사망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제주에는 한라산 북쪽 한 곳에만 관아가 있어 산남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관아를 왕래하는데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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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인 해적을 총칭한다. 흔히 고려 후기까지의 왜구를 전기 왜구, 그 이후의 왜구를 후기 왜구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기 왜구가 우리나라를 주요 약탈 대상으로 삼았다면, 후기 왜구는 약탈의 대상지가 중국과 동남아 지역으로 확대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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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에 보급된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조선왕조 5백여 년 동안 유교는 지배 이데올로기이자 생활 윤리로 자리 잡았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무속 신앙 때문에 좀처럼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이형상(李衡祥)[1653~1733] 같은 적극적인 제주목사들의 활동에 힘입어 지방 유림들은 점차 자신들의 위상을 확보해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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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군수를 역임한 문신. 1905년 조선시대 마지막 제주목사 조종환(趙鍾桓)이 이임한 뒤 제주목사는 폐지되고 제주군수로 바뀌었다. 1906년(광무 10) 동래군수이던 윤원구가 초대 제주군수로 부임하였다. 윤원구가 제주군수로 부임하던 때는 일본에 의해 조선의 행정제도가 개편되고 있던 시기였다. 목(牧)·현(縣)제도의 면 행정, 즉 풍헌(風憲), 경민장(警民長) 등의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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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제주의 의병 항쟁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세운 탑. 1909년 일제가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자 제주 지역에서는 고사훈(高仕訓) 등의 유림들이 1909년 2월 25일 봉기를 결의하고 격문과 사발통문을 띄웠으나 일제에 곧 진압되고 말았는데, 의병 항쟁 기념탑은 1909년 당시 제주 의병들의 의로운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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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대정현감·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622년(광해군 14)에 함경북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부임할 때 친분이 있던 신경유(申景𥙿)[1581~1633]의 권유로 광해군[1575~1642]을 축출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계획에 가담하여, 1623년(광해군 15) 3월에 일어난 인조반정 때 큰 공을 세웠다. 인조반정 후 정사공신 2등에 녹훈되어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가 평안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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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이최응(李最應)이 제주 지역에 쌓은 공덕을 기리는 비. 이최응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서 쇄국 정책에 반대했으며, 대원군(大院君) 실각 후 영의정이 되었다. 이최응은 1877년(고종 14)과 1878년(고종 15)에 잇달아 흉년이 들자 임금에게 품신하여 호남사창미(湖南社倉米)를 제주도에 보내어 굶주린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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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순조 13) 제주도에서 양제해가 일으킨 민란. 1813년(순조 13) 제주도 백성들에게 부과된 부역이 너무 과중해지자 양제해가 김익강·고덕호·강필방 등과 함께 거병을 모의하였다. 이때 사람을 모으고 병기를 만들어 제주성과 정의·대정에서 거병하기로 뜻을 모았다. 양제해는 제주 영읍의 네 관원을 죽이고, 섬 전체를 장악한 후 배가 육지로 못 나가도록 한 뒤, 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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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지방관이 왕에게 의례적으로 바친 특산물. 진상은 원래부터 납세의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 도(道) 단위로 지방관이 한 달에 한 번씩 상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주·현에 그 부담이 배정되었고, 이것이 다시 각 민호에 배정되었다. 조선 시대 제주의 진상물 품목으로는 말·귤·전복·버섯·한약재 등을 들 수 있다. 『탐라지』(제주목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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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원조(李源祚)가 남긴 제주 관련 문헌. 『탐라계록(耽羅啓錄)』은 제주목사로 있던 이원조가 내치(內治)의 중요함에 대하여 전라도관찰사 등에게 계품(啓禀), 계문(啓聞)한 것으로서 관청 공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탐라계록』은 퇴계학파제현집(退溪學派諸賢集) 편찬 사업으로 간행된 『응와전집(凝窩全集)』 전 4권 중 네 번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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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숙종 때 제작된 제주도 지도와 그 서문. 1709년(숙종 35)에 제주목사 이규성(李奎成)이 제작한 지도 1과 병서 2로 이루어진 지도로, 세로 125㎝, 가로 98㎝의 크기이다. 현존하는 조선 시대의 제주 지도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어 1991년 6월 4일 제주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도의 서문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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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사용하던 말이나 소의 털로 만든 차양이 있는 모자. 제주도는 예로부터 목축이 발달하여 가축이 유난히 많았다. 말이나 소를 돌보는 과정에서 생긴 털을 모아두었다가 털을 빨아서 말린 뒤 콩풀과 섞어 모자 틀에 눌러서 만든 모자이다. 언제,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털벙것이 갓의 모양을 하고 있고, 조선시대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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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예의판서 한리(韓理)이다. 아들은 한서룡(韓瑞龍)·한서봉(韓瑞鳳)·한서구(韓瑞龜) 등 3명이다. 1437년(세종 19) 2월 최해산(崔海山)의 후임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로 부임하기 전, 의정부에서 제주 방어는 중요하므로 봉화·척후(斥候)를 엄하게 하고 군대를 정비하여 왜선이 정박할 요해처를 잘 방어하라고 지시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