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0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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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聞 |
영어음역 | sinmun |
영어의미역 | newspaper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정규 |
[정의]
소식이나 정보를 정기적으로 인쇄·발행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언론매체.
[개설]
신문사라는 조직이 뉴스나 정보를 취재·편집하여 신문지면에 인쇄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대중매체의 하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민간인들이 신문사를 설립하여 뉴스를 판매하여 이윤을 얻는 한편 여론을 진작시켜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는 등 공익적인 역할을 한다. 근대신문은 정기성, 인쇄성, 공개성, 시의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연원]
신문은 근대사회의 산물로 중국 베이징으로 가는 사신들이 19세기 중엽부터 서양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발행되고 있는 신문매체를 접촉할 수 있어 신문지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신문은 뉴스(news)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었으며 신문은 빠오즈(報紙)이며 일본에서는 심붕(新聞)이라 하고 한국에서는 신문(新聞)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변천]
청주는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아래에서는 거의 신문을 발행한 경험을 갖지 못하고 있다. 1883년 10월 최초의 근대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는 서울에서 발행되었고 이후 대부분의 신문은 서울을 발행 근거지로 삼았다.
최초의 지방신문은 1909년에 진주에서 발행한 『경남일보』가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1910년 8월을 거치면서 몇 년간 지속되기도 하였으나 우리말로 발행된 신문은 서울에서 발붙이지 못하고 다만 각도에 일본어신문이 한 두개씩 발행되어 경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하에서는 강원도와 충청북도만을 제외하고는 일본인들에 의한 일본어 신문이 각도의 도청 소재지에서 발행되고 있었다. 대전, 전주, 광주, 군산, 인천, 대구, 부산 등지에서 발행되는 지방신문중 한국인이 발행하는 신문은 거의 없었다.
청주에서 발행된 최초의 일간신문은 1946년 3월 1일 창간호를 낸 『국민일보』이다. 이 신문은 『충북신보』, 『충청일보』 등으로 제호를 바꾸어 가면서 발행되어 충청북도의 대표적인 신문으로 꼽혀 왔으나 2004년 10월 14일 경영악화로 인한 노사분규로 문을 닫게 되었다.
『충청일보』 이후 청주지역에서 두 번째로 창간된 신문은 『중부매일』이다. 『중부매일』은 1990년 1월 20일 32면의 창간호를 발행하면서 창간되었고 6월 9일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주 96면으로 증면하고 창간 1년만인 1991년 2월 21일 대전 충남판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동양일보』는 1991년 8월 12일 ㈜동양일보를 설립하고 조철호 대표이사가 취임하였으며 1999년 8월 19일에는 주식회사 한빛일보가 법인을 설립하여 11월 1일 ‘충청의 미래, 젊은 신문’을 기치로 청주시 복대동에서 창간하였다.
이후 2003년 2월 21일에 『충북일보』가 창간되었고 『충청투데이』는 2005년 1월 제호를 『대전매일신문』에서 『충청투데이』로 변경하여 대전충청권을 근간으로하는 신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충청북도본부를 설립했다.
이와 함께 『충청리뷰』는 1994년 1월 1일 월간으로 창간되었다가 3년만인 1997년 9월 시사주간신문으로 전환하였으며 『충북뉴스』는 ‘밝고 맑은 세상 만들기’를 표방하며 2002년 11월 11일 주간신문으로 창간되었다.
인터넷 신문으로는 2002년말 창간된 『청주기별』과 2004년 5월 시사주간지 『충청리뷰』에서 법인이 독립되어 만들어진 『충북인뉴스』가 있다.
2000년 5월에 경제전문 주간지인 『충북경제신문』이 창간되었다.
[현황]
1946년 청주시 남문로 2가에서 주식회사 국민일보가 창간되었고 1954년 3월 1일 제호를 『충북신보』로 변경하였다. 이후 1960년 8월 15일 주식회사 충청일보로 제호와 회사명을 변경하였고 1973년 7월 9일 회사의 사시(社是)를 ‘지역사회의 증인’으로 변경하였다.
1980년대에는 신문의 활자 조정과 증면발행 1988년 언론민주화 바람을 타고 충청일보노조 탄생과 1989년 전국 최초로 기자의 선출에 의한 편집국장 직선제를 실현하였다. 1990년에는 고속윤전기 도입, CTS 도입, 지령 15,000호 발행, 주 120면 증면, 창간 50주년의 질적, 양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계속되는 경영난을 겪다 2004년 10월 노사분규 소용돌이 속에서 법인 파산으로 정간된 상태다.
『중부매일』은 1990년 1월 20일 32면의 창간호 8만5천부를 발행하여 충북, 서울, 대전 등에 배포하여 ‘중부권 시대의 창조’라는 사시로 창간되었다. 1991년부터 주요사업으로는 「눈물젖은 두만강」, 「울고 넘는 박달재」 초청공연과 도지사기차지 시군대항마라톤대회 개최, 충북서예대전 전국여류서예대전 등의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동양일보』는 1991년 8월 12일에 창간되어 충북여성백일장, 동양음악콩쿠르, 소년동양만물박사 선발대회, 『충북백과사전』 출간, 동양일보청주마라톤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01년 7월 16일 조간신문에서 석간신문으로 전환했으며, 『동양일보 10년사』 발행, 『동양연감』발행, 『한국·충청인명록』을 발행하고 있다.
1999년 11월 1일 ‘충청의 미래·젊은신문’을 사시로 창간된 『한빛일보』는 2000년과 2001년에 윤전기를 도입하여 증설하였고 2003년 3월 27일 지령 1000호를 발행하였으며 청주시민걷기대회, 전국주니어골프대회, 대청호반 마라톤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충북일보』는 2003년 2월 21 창간되어 7월 14일 지령 100호를 발행하였고 ‘지역선도와 지역개발, 정론직필’을 사훈으로 하고 있다.
『충청투데이』는 1990년 6월 11일 대전,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대전매일신문』으로 창간되었다. 초기에는 석간으로 발행되다 1991년 3월 조간으로 전환했고 1996년 12월 대전시 서구 갈마동에 신축사옥을 준공 이전하면서 초고속 오프셋 윤전기 가동으로 1면 컬러화를 이뤘다.
2001년 10월 24일 경영난으로 휴간에 들어갔다가 1개월여만에 ㈜충청투데이로 법인을 전환하여 12월 10일 속간호를 발행하기 시작하였으며 2002년 5월 최첨단 CTS 전산장비를 도입했고 2003년 10월에는 중부권 최초 32면 발행시대를 열었다. 2005년 1월 『충청투데이』로 제호를 변경하면서 충청북도본부를 설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4년 1월 1일 월간으로 창간된 『충청리뷰』는 10월 ㈜충청리뷰로 법인을 등록했고 1997년 9월 시사주간신문으로 전환하였다. 2003년 5월 『충청리뷰』 인터넷 판을 확대 보강한 인터넷신문 『오마이충북』을 서비스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오마이충북』을 분리 독립시키기로 함에 따라 2004년 5월 『씨비아이뉴스』로 법인을 독립시켰다.
『충북뉴스』는 2002년 9월 17일 ㈜충북뉴스 법인을 설립했고, 정기간행물 및 법인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11월 11일 창간호를 발행했다. 대표이사는 안치영이었고 2004년 12월 1일 제2대 안영록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