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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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문신 이원진이 쓴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읍지. 『탐라지(耽羅誌)』는 이원진(李元鎭)[1594~1665]이 제주목사로 있던 1653년에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을 참고하여 제주도 내의 상황을 수집, 편찬하고, 제주의 석학 고흥진의 감수로 완성된 읍지이다. 『탐라지』와 같은 읍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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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 통신 시설.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수제(烽燧制)의 ‘봉’은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뜻하고, ‘수’는 설나무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들어 통보하는 제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봉수제는 우역제(郵驛制)와 함께 신식 우편 제도와 전기 통신이 창시되기 이전의 근대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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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 제주시에 있는 산 정상부에서 횃불과 연기로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조선 전기의 통신 수단.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烽)은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뜻하고, 수(燧)는 설나무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 하며,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들어 통보하는 제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봉수는 높은 산이나 해안 구릉에 올라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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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의 터. 강림사에 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탐라지(耽羅志)』의 제주목 불우조에는 ‘강림사주동함덕포구(江臨寺州東咸德浦口)’라 하여 “강림사는 제주 동쪽 함덕 포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601년(선조 34) 김상헌이 편찬한 『남사록(南槎錄)』에도 “곧 원(元) 때 세운 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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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입동은 제주시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 제주항 주변과 동문로터리 동북쪽, 사라봉 서쪽 일대를 가리킨다. 2000년 복원된 산지천을 서쪽 경계로, 사라봉을 동쪽 경계로 하고 북쪽에는 제주항이 자리 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일도동이 있다. 건입동은 영주 십경 중 사봉 낙조(紗峯落照)와 산포조어(山浦釣魚)의 아름다움을 지닌 마을이다. 사봉 낙조는 곧 사라봉에 올라 저녁놀이 물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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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관음사의 말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 등에는 ‘관음사재조천포상(觀音寺在朝天浦上)’이라 하여 고려시대 창건되어 조선시대까지 존속했던 조천의 관음사(觀音寺)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고관사(古觀寺)는 ‘옛 관음사(觀音寺)’라는 사명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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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탐라 후기의 생활 유적. 고내리는 제주도 서북부 해안을 끼고 동서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고내리의 유물 산포지가 확인되는 지점은 마을 동편에 위치한다. 유적의 범위는 약 10,000여 평에 이른다. 고내리 유적의 가장 남쪽 부분에는 고인돌 1기가 있다. 고내리 유적은 1994년과 1995년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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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었던 포구. 「제주삼현도」에는 제주시 화북1동으로 흘러드는 화북천과 그 하류 주변에 고로포가 그려져 있다. 고로(古老)나 고로(高老)는 글자만 다를 뿐 음은 같다. 화북천을 끼고 있는 제주시 화북1동의 서쪽 동네를 곤흘동네라고 한다. 『탐라지』에는 “주 동쪽 13리에 있다. 가물면 마르고 비가 오면 물이 넘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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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 출신으로 문과에 급제한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퇴이(退而). 일명 고봉래(高逢萊)라고 한다. 제주시 이호동 가물개마을에서 고정순(高定舜)의 3남으로 태어났다. 1618년(광해군 10)에 폐모론을 반대하여 제주에 귀양 온 간옹(艮翁)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명도암(明道菴) 김진용(金晋鎔)과 같이 글을 배웠으며, 효종 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진(李元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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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사찰 터. 이원진의 『탐라지』에는 곽지사에 대하여 ‘재주서사십오리금폐(在州西四十五里今廢)’라고 하여 “주의 서쪽 45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사되었다”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곽지사는 이원진이 『탐라지』를 기록할 당시인 1650년(효종 1)에 이미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국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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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의 터. 관음사지는 조천읍 조천리 포구의 동쪽에 있는 옛 사찰 터이다. 현재 관음사지의 추정지는 경작지로 조성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다량의 기와편과 도자기편이 발견되었다. 1960년대 말경에 경작지를 갈아엎은 적이 있는데 그때 주초석으로 보이는 석제 유물들이 나왔다고 전한다. 『한국의 지명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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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1,950m]은 남한 최고봉으로 백두산과 더불어 국토를 잇는 상징적인 산이다. 한라산은 예부터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으로 백록을 탄 신선이 사는 영산이라 알려져 왔고, 불로초를 찾아 영주산을 찾았다는 서불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또한 한라산의 여신 설문대할망이 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제주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영감의 보고이다. 또한 한라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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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미끼를 꿰어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작은 쇠갈고리가 달린 도구, 넓은 뜻으로는 물고기를 잡는 낚시질의 통칭. 제주도의 어로기술은 낚시와 그물로 대별된다. 어로 기술은 어로 문화 집단인 어촌마을마다 그들이 처한 환경에 순응해가며 이어지는 것이다. 어구는 크게 낚시구, 그물구, 해초 채취구, 어패류 채취구 그리고 소살로 대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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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년경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문신 김상헌의 제주 기행문. 『남사록(南槎錄)』은 일종의 일기체 형태로 서술된 책으로,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1601년(선조 34)에 안무어사로 제주에 파견되어 기록한 일종의 기행문이다. 『남사록』은 규장각 도서번호 147270번 2권 1책과 147271번 2권 1책이 같이 합철되어 있다. 즉 앞의 2권 1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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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동(老衡洞)은 1,950m의 한라산을 정면으로 하여 산북 지방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어 제주시 서부 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어승생과 한라산을 마주하고 있으며 배의 노를 젓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제주도의 산북 지방의 지형이 그러하듯 남고북저의 자연적인 지형 특성을 나타낸다. 주로 한라산과 어승생 주변에서 분출한 용암류와 화산 쇄설물(碎屑物)로 형성된 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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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는 이형상 제주목사가 재임할 당시 제주도를 동-남-서-북으로 한 달 간 걸쳐 순력(巡歷)하고 돌아와서 그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28폭의 그림에 담아낸 총 41면으로 된 도첩(圖帖)으로, 채색화이자 기록화이다. 기록화는 특정한 사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한 그림을 말한다. 중앙에서는 도화서 화원(畵員)들이 의궤도를 비롯한 기록화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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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1동과 내도동 사이에 있는 포구. 도근천포는 지금의 제주시 외도1동과 내도동 사이로 흐르는 내[川]인 도그내의 하류에 있는 개맛과 그 주변을 두고 이른 말이다. 도근천포 즉 조공천(朝貢川)은 그 당시 조공천이라는 내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남사록』에서는 도근천(都近川)이라 하였으며, 병선도 감출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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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 1동에 있는 봉우리. 제주시 도두 마을을 대표하는 오름으로 구제주시 서쪽에 위치한 제주 국제공항 너머의 도두리 해안을 끼고 있다. 정상부에 화구가 없는 원추형 화산체로, 도두마을 포구의 방파제로 들어가는 지점에 존재하는 노두[outcrop]로 볼 때, 도두봉의 구성물질은 해안부분에 화산재로 이루어진 응회암과 현무암 그리고 정상 부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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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원나라가 제주에 만든 목장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 아막은 부대, 조합, 부락, 단체, 주군(州郡)을 의미하는 몽골어로, 한문식으로 표기하여 애마(愛馬)라고도 한다. 제주 지역의 동과 서에 설치된 것이었기 때문에 동서아막이라고 불렀다. 제주 지역에는 목축에 유리한 완경사의 지형과 초지가 동쪽과 서쪽 지역에 넓게 분포해 있어서 두 곳에 각각 아막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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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 만수사지는 일명 동자복사라고도 한다. 만수사지로 추정되는 곳에 제주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된 동자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18세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일명동자복재건입포동안(一名東資福在巾入浦東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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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바닷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사용하는 기술. 1653년(효종 4)에 이원진은 『탐라지』에서 “제주도의 산과 바다는 험악하여 그물을 쓸 수 없다. 고기는 낚고, 들짐승은 쏘아 잡는다”라고 말했다. 이형상도 1702년(숙종 28)에 쓴『남환박물(南宦博物)』에서 제주도는 그물이 없는 섬이라고 했으나 육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리 그물·상어 그물·머르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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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 ‘순천송광사장고려판천순판불전(順天松廣寺藏高麗板天順板佛典)’이라는 기록에 따라 최근 제주 묘련사에서 불경 판각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밝혀지면서 고려시대 제주 불교를 새롭게 해석할 근거를 마련한 중요 사찰로 관심을 모르고 있다. 위 기록은 1296년에 작성되었으며, 오랜 제작 기간을 고려한다면 해인사 『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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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 일대에 있는 옛 사찰 터. 현재 이곳은 잡초가 우거져 접근할 수 없고, 절터 인근은 경작지로 조성되어 있어 조사가 어려운 것은 물론, 관련 유물도 매우 적은 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제주목(濟州牧) 「불우조(佛宇條)」에는 “재서남이십칠리(在西南二十七里)”라 하여 서남쪽 70리 거리에 있다고 되어 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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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오락·연희·곡예 등의 놀이. 민속놀이는 그 지방의 풍속과 생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민속놀이는 세시풍속이나 통과의례 등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 민속놀이는 놀이를 하는 시기에 따라 세시(歲時) 관련 놀이와 통과의례 관련 놀이, 일상적 놀이로 구분된다. 또 놀이가 전승되고 있는 집단의 성격에 따라 전문인 놀이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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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방어 요충지에 설치된 진(鎭). 방호소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침입이 예상되는 요충지에 설치하여 방호 임무를 수행하던 군대의 경계 감시소이다. 각종 읍지나 『제주계록』에는 ‘진(鎭)’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방호소에 관해서는 『세종실록』에 “도내 군인이 주둔하는 곳은 본주 동쪽은 김녕·조천관, 서쪽은 도근천·애월·명월이며, 대정현 서쪽은 차귀, 동쪽은 동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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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재배되어 온 쌍떡잎식물 쥐손이풀목 운향과에 속하는 귤나무. 병귤이란 이름은 열매가 병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붙은 것으로 보는 이에 따라서는 수류탄처럼 생겼다고 하기도 하는데 열매 크기도 그만하여 다른 재래 귤과 쉽게 구별된다. 제주 말로는 ‘벤줄’이라고 한다. 각피성 감귤로 순수한 제주 재래종으로 추정된다. 병귤나무는 추위와 병해충에 강하며,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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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제주목에 있던 사찰 총 15개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보문사가 들어 있다. 1653년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에도 총 22개의 사찰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시대 때 혜일 선사가 보문사에서 참배하고 쓴 시가 전하고 있다. 寺僻依荒徼(사벽의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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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분포되어 있는 불교에 관련된 유적지. 제주도의 불교 유적지는 근대 이전의 유적지만 약 85개소가 확인되었으나,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제주목에 사찰이 총 15개소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1653년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에도 총 22개의 사찰에 대한 기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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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시행되는 민사, 형사 및 행정 사건의 재판권 행사에 관한 모든 제도. 좁은 의미의 사법은 재판 작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민사·형사 및 행정 사건 등의 재판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소송 절차를 거쳐 어떻게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선언하는 국가의 행위이며, 대립하는 양 당사자의 주장을 들어보고 공평한 제3자의 지위에서 국가가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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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와 전라남도 완도군 사이에서 사수도 일대의 해산물 채취권 문제로 발생한 소유권 분쟁. 북제주군의 토지 대장에 따르면 사수도는 추자면 예초리 산121번지이고, 임야 면적은 6만 9,232㎡라고 기재되어 있다. 1919년 일제의 정밀 측량을 거쳐 추자군도에 부속된 이래 광복 후에는 중앙 정부에 귀속됐다가 1972년 추자초등학교 육성회가 소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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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의 북사면에서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거쳐 건입동의 제주항으로 흐르는 하천. 산지천은 한라산 북사면 해발 약 720m 지점에서 발원하여 제주시의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차례로 흘러 하구(河口)인 건입동의 제주항을 통해 바다로 나간다. 이 산지천은 과거에 큰 비만 내리면 하류 구간이 곧잘 범람하여 부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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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제단. 한라산에서 사람이 동상이 걸리거나 사고로 죽는 사람이 발생하므로 제단을 만들고 산천(山川)에 제를 지내던 곳이다. 18세기 중 후반의『증보 탐라지』에 “소림사(小林祠)는 한라산신(漢拏山神)을 제사하는 곳이다. 이 사(祠)는 한라산 아래인, 제주목 남쪽 16리에 있었다. ……. 처음에는 백록담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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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전승되는 고씨·양씨·부씨의 시조 신화이자 탐라국의 건국 신화. 「삼성신화와 삼공주」 신화에서 고씨·양씨·부씨의 시조는 모흥혈(제주 삼성혈)에서 솟아 나온다. 이는 「단군 신화」나 고구려 건국 신화인 「주몽 신화」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단군이나 주몽은 하늘(천제)의 후손임을 내세우며 신성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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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일대에 위치한 봉우리.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표고 574.3m, 비고 139m, 둘레 2,473m, 면적 412,000㎡, 저경 725m의 오름이다. 오름 정상 분화구에 샘이 솟아나와 세미오름이라 부르던 것이 지금은 한자의 음을 빌어 표기한 삼의양악(三義讓岳), 삼의악(三義岳)으로 불려지고 있다. 세미양오름, 새미양오름의(三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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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옥돔만을 생선이라 부르고 다른 바닷고기는 고유 이름을 붙여 부를 만큼 생선 중의 생선으로 친다. 제주 연안에서 주로 잡히는 심해성 백신어(白身魚)인 옥돔과의 황색 옥돔은 살이 단단하면서도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여 맛이 담백하고 깊어 제주인이 가장 선호하고 귀하게 여긴다. 제주인들은 정성이 중요한 제사 음식을 장만할 때는 집집마다 미리 옥돔을 장만해 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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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 서천암은 고려시대 고승인 혜일 스님이 수도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하여 『탐라지(耽羅志)』, 『남사록(南槎錄)』 등에 서천암의 존재와 더불어 혜일 스님의 시가 기록되어 있다. 이원진의 『탐라지(耽羅誌)』에는 ‘재조공천상(在朝貢川上)’이라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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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제주도를 창조하였다고 전해 내려오는 여신. 설문대할망은 제주도의 지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신화 속 여신이다. 지역에 따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다르고 불리는 이름도 제각각이지만 제주도를 대표하는 신화 속 인물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창조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원조(李源祚)의 『탐라지(耽羅誌)』와 장한철(張漢喆)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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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 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정의현(旌義縣) 「불우조(佛宇條)」에서는 성불암과 관련해 ‘성불암재성불악(成佛庵在成佛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원진의 『탐라지』 제주목 정의현 「불우조」에도 동일한 내용이 전해 내려온다. 이 성불오름 중턱에는 성불새미라 불리는 샘물이 있다. 옛날에는 이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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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 가운데 최상위 토호가 역임했던 관직. 통일신라 때 제주의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왕은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는 관직을 주었는바, 성주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관직으로, 외관의 역할을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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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 일대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 터. 소림사지는 조선 시대에 한라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소림사를 ‘재주동남십리(在州東南十里)’라 기록하고 있고, 이원진의 『탐라지』제주목(濟州牧) 「불우조(佛宇條)」에도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담수계(淡水契)의 『증보탐라지』에는 ‘제주읍동남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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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 수정사는 고려시대 한라산 북쪽 지역을 대표하는 비보사찰이었다. 한라산 남쪽 지역을 대표하는 법화사와 더불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사찰로서 조선시대에도 성쇠를 거듭했다. 조선 전기 태종 때까지만 해도 법화사와 마찬가지로 노비 130명을 거느리고 있었던 대가람이었다. 태종 때의 배불 정책으로 노비를 30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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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세워진 교육 기관. 역학당은 관덕정 동쪽 좌위랑에 위치해 있던 서당으로, 18세기 이후 등장했던 개량서당 교육 기관이었다. 이원진의 『탐라지(耽羅誌)』에 의하면, “재관덕정좌위랑 역학왜학동거 배제번삼 학생일백칠십육명(在觀德亭左衛廊 譯學倭學同居 排除番三 學生一百七十六名)”이라 하여 다수의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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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중기의 정자. 연무정은 1636년(인조 14) 제주목사 신경호가 병사들을 훈련하고 군관청과 판관 사후처(伺候處)로서 사용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탐라지(耽羅誌)』에, 연무정을 건립할 당시 제주목사 신경호가 “제주에는 온 섬에 악석(惡石)이 널려 있으나 오직 이 곳은 풀 하나 없고 평평하기가 손바닥과 같아서 하늘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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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청(政廳: 업무를 보는 관청). 건축 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연희각은 안무사(按撫使), 절제사(節制使), 목사(牧使), 관찰사(觀察使), 군수(郡守) 등의 집정당(執政堂)으로서, 이곳에서 제주 사람의 안위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속칭 상아동헌(上衙東軒)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제주도청이 건축될 당시에 일제에 의해 철훼되었다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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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 가운데 차상위 토호가 역임했던 관직. 통일신라 때 제주의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왕은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는 관직을 주었는바, 왕자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관직으로, 성주와 더불어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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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오라동 일대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대에 해당하는 생활 유적. 제주시를 아우르고 있는 하천인 한천·병문천·산지천 중에서 탐라 시대에 중심이 된 하천은 한천이다. 한천 주변에는 10만여 평에 가까운 고대 마을터·옹관묘·석곽묘·9기의 고인돌·제사 유적 등이 남아 있다. 이 유적들과 유물의 분석을 통해 한천 주변에는 탐라 시대에 거점 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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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에 있는 포구. 우지포는 지금의 한림읍 수원리의 외딴 자연마을인 용운동 해변에 있는 안개를 두고 이른 말이며, 당시 우지(牛池)라는 지형지물의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제주삼현도」에서는 잠수촌과 귀덕촌 사이에 우지포가 있다고 가록하고 있다.『탐라지』에서는 제주목 안에 있던 일곱 개의 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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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포구. 우포는 지금의 한경면 용수리 해변에 있는 부게원을 두고 이른 말이며, 어로 시설인 원이 들어서기 전에 이 포구를 어떻게 불렀는지를 알 수 없다. 우포는 당시 벗걸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이증은 우포를 대정현에서 대강을 붙일 수 있는 여섯 곳의 포구 중 하나라고 하였다. 이증은 이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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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제주교구 사찰. 월계사(月溪寺)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탐라지(耽羅志)』, 『신보탐라지(新補耽羅志)』 등에 나타나는 고려시대의 사찰 월계사의 명맥을 잇고자 창건되었다. 1934년 9월 한림면 한림리 1152번지[한림남1길 9-6]에 이학암 스님과 신도들이 초막을 짓고 한림포교소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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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터. 월계사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재독포동남(在獨浦東南)’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원진의 『탐라지』에도 재옹포동남금폐(在瓮浦東南今廢)라 되어 있고, 담수계(淡水契)의 『증보탐라지』에는 ‘한림읍옹포리동안(翰林邑瓮浦里東岸)에 재(在)하니 금폐(今廢)’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영남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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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공중 또는 특정 다수인의 질병이나 부상을 예방·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관련 기관. 공공 보건 의료 기관은 국가·지방 자치 단체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공공 단체가 설립·운영하는 보건 의료 기관을 말한다. 응급 의료 기관은 「의료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한 의료 기관 중에서 이 법에 의해 지정된 중앙 응급 의료 센터, 권역 응급 의료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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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초명은 이영조(李永祚). 생부는 이형진(李亨鎭)이며, 양부는 이규진(李圭鎭)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재임 중 극에 달한 사족의 사치와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에 대한 쇄신책 강구를 간하였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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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주. 자는 승경(昇卿), 호는 태호(太湖).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지완(李志完)[1575~1617]이다. 1615년(광해군 7) 생원으로서 대북의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영의정 이원익과 함께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후에 풀려났다. 1630년(인조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지평·교리·부수찬·장령·집의 등을 거쳐 1647년(인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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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련 1동에 있는 당유자, 병귤, 산귤, 진귤 등 4종류 6그루의 재래종 감귤 나무. 제주 도련동 귤나무류는 수령 100~200년, 높이 6~7m의 당유자, 병귤, 산귤, 진귤 등 4종류 6그루로 제주 재래종 감귤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1973년 4월 3일 당유자나무 2그루, 산귤나무 2그루, 병귤나무 2그루 등 총 6그루가 제주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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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오름. 물장오리는 ‘장오리’라는 이름이 붙은 네 개[테역장오리, 불칸장오리, 쌀손장오리 등]의 오름 가운데 하나로, 산정 호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제주도 형성과 관련이 있는 거인인 ‘설문대할망’이 물이 깊어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부정한 사람이 이 오름에 오르면 갑자기 운무가 낀다고 할 정도로 성스러운 오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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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제주 감귤의 우수성과 확산을 위하여 개최하는 축제. 감귤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탐라지(耽羅誌)』에 실려 있는데, 476년(백제 문주왕 2) 탐라국에서 공물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제주 지역에서 감귤이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에는 1052년(문종 6년) 지금의 세금인 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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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간행된 전라남도 제주군 읍지. 1899년 조선왕조에서는 마지막으로 전국 군·현의 읍지 편찬 사업이 행해졌는데, 이 때 공포된 전국의 읍지 상송령(上送令)에 따라 전라남도 제주군에서 작성한 관찬 읍지이다. 1책 26장의 필사본이다. 대형의 흑백 지도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뒷면에는 제주군수 김희주(金熙冑)의 관인이 찍혀 있다. 앞 시기의 읍지를 참고로 저술되었지만 시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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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작성된 제주목의 읍지. 18세기 후반 관찬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제주목의 읍지로 사회·경제·군사·재정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앞 부분의 연혁은 이원진의 『탐라지(耽羅誌)』를 토대로 기술되었고, 필사본이다. 사찬(私撰)인 『탐라지(耽羅誌)』보다 훨씬 규식에 입각하여 제주의 특색을 드러내는 부분은 줄었으며, 항목만 설정된 경우도 있는 데서 저본들은 관찬(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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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는 우도·비양도·추자도 등의 유인도와 차귀도·관탈섬·토끼섬 등의 무인도가 있다. 우도·비양도·난도·차귀도는 신생대 제4기에 형성된 화산섬이지만, 한반도 남해안과 제주도 사이의 제주해협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추자군도는 백악기 응회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제주도와는 전혀 다른 지질 구조이다. 2006년 현재 제주시 지역에는 51개의 섬이 있으며, 이 중 유인도는 6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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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이다. 제주도를 방문한 사람들은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돌하르방과 마주친다. 오랜 세월 제주를 지켜온 돌하르방은 제주 방문을 환영하고 보호해 주는 듯, 위엄 있는가 하면 둥글넓적한 온후한 인상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마치 모진 환경에서 한평생을 보낸 우리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처럼 무뚝뚝하고 엄한 표정엔 미소마저 담뿍 담겨 있어 보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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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지역에서 주장(主將)을 도와 적의 침입을 방어한 종9품 관직. 조방장(助防將)은 제주진관 소속 9개 방호소 가운데 명월방호소를 제외한 방호소의 책임자로 모두 8명이었다. 조선 전기 방호소의 책임자는 여수(旅帥)였으며, 변란이 생길 경우 영군관이 파견되어 방어에 임하였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는 각 방호소에 성을 쌓았으며, 조방장을 파견하여 방어에 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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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제주의 역사. . 조선 시대 제주는 독립성을 상실한 채 중앙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제주는 말의 특산지로 부각되면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중앙 정부에 의해 과중한 경제적 수탈이 이루어졌다. 특히 제주도 중산간 지역을 목장으로 만들어 개간을 금지했기 때문에 제주인들은 해변 지역의 일부 땅만을 이용해 농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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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조선 중기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 시설. 조천진은 9개 진(鎭)의 외곽을 빙 둘러서 축조한 성곽 중 하나이다. 조천(朝天)은 조선 초기부터 조천방호소와 조천포수전소가 있던 방어의 요충지였는데, 처음 축조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선조 때 개축하였다. 고서의 기록을 통해 조천은 천자의 나라에 조회하러 나간다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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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시대 누각. 좌연각은 『탐라지(耽羅誌)』에 “재연무정지북(在演武亭之北)”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연무정 북쪽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인 1848년(헌종 14)에 판관 탁종술이 세웠고, 액자는 김정희가 썼다. 좌연각이 있던 자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제주동초등학교 북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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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지방관이 왕에게 의례적으로 바친 특산물. 진상은 원래부터 납세의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 도(道) 단위로 지방관이 한 달에 한 번씩 상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주·현에 그 부담이 배정되었고, 이것이 다시 각 민호에 배정되었다. 조선 시대 제주의 진상물 품목으로는 말·귤·전복·버섯·한약재 등을 들 수 있다. 『탐라지』(제주목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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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자라고 있는 운향과의 과실. 운향과의 상록아 교목으로 제주시 삼양동·도련동, 제주시 일도1동,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등산 등에서 자라고 있다. 속명은 아프리카산의 향나무 옛 그리스어 이름인 kitron에서 유래되었다. 옛 문헌인『세종실록지리지』, 『탐라지』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인 다나카[田中]가 1950년 일본의 원예학회에 한국의 청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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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조선 시대 누각. 청풍대는 제주성 남문 안 서쪽에 있던 누각이다. 언제 창건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주목사 심연원이 1536년(중종 31) 명륜당을 개축한 뒤 남긴「명륜당중수서(明倫堂重修序)」에 청풍대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 초에 제주목사 김영수가 노장대(老將臺)라고 명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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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판매·배포의 목적으로 간행된 문서나 사진·회화 등의 저작물. 저작자나 출판사가 지식이나 정보·사상·감정·문화 등의 정신적 내용을 문자나 도형 등으로 기호화하고 처리해서 그 메시지를 도서 또는 서적이라는 인쇄 매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 전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독자들의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그 대가로 이윤을 추구하는 문화적, 경제적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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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짚이나 풀을 재료로 생활 용구를 만드는 공예의 하나.[개설] 육지에서의 풀공예는 거의 대부분 볏짚을 이용하여 만들어 내는 민속공예품을 가리킨다. 그러나 제주도는 전체 경지 면적에서 논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도 안 될 만큼 빈약하기 때문에 육지와 달리 풀공예의 재료로 볏짚 대신 산디(밭벼)짚이나 산이나 들에서 지천으로 자생하는 야생풀을 이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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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지방 교육 기관. 조선 중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학교조(學校條)」 말미에 “우유향학당(又有鄕學堂)”, 즉 “또 향학당이 있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향학당은 고려 후기나 조선 전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지방 교육 기관으로 파악된다. 『탐라지(耽羅誌)』의 「항교조(鄕校條)」 심연원 서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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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귀화한 송나라 사람. 일명 호종조(胡宗朝)라고도 하며 제주에서는 고종달이라고 한다. 풍수사로 알려진 송나라 복주인(福州人)이고, 고려에 귀화하여 15여 년 동안 관리 생활을 하였다. 태학(太學)에 입학하여 상사생(上舍生)이 되고, 뒤에 저장성(浙江省)에 있다가 상선을 타고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였다. 예종의 후한 대접으로 1111년(예종 6) 좌우위녹사 권지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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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한 9개 진(鎭)의 외곽을 빙 둘러서 축조한 성곽 중 조천진에 축조한 성곽. 화북포는 조선 시대 제주 지역의 대표적인 수전소로 방어의 요새였다. 이원진의 『탐라지』에 의하면 화북포에는 판옥전선이 중부, 좌부, 우부에 각각 1척씩 있다. 또한 비상 양곡이 6석, 격군이 180명, 사포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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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에서 부모를 극진히 잘 섬긴 자녀들. 조선 시대 제주도의 효자는 『조선왕조실록』·『탐라지』·『효열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해당 마을에 효자비를 남겨 후세에 귀감이 되었다. 효자비의 위치를 근거로 파악한 조선 시대 제주 효자들의 출신 지역과 대표적인 효자·효부들은 다음과 같다. 읍·면·리 지역에 효자들이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