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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0881
한자 郭支寺址
영어음역 Gwakjisaji
영어의미역 Gwakjisaji Archaeological Sit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1905-3[천덕로 33]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오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교 유적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 시대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1905-3[천덕로 33]지도보기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사찰 터.

[개설]

이원진『탐라지』에는 곽지사에 대하여 ‘재주서사십오리금폐(在州西四十五里今廢)’라고 하여 “주의 서쪽 45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사되었다”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곽지사이원진『탐라지』를 기록할 당시인 1650년(효종 1)에 이미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곽지사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폐사된 연대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변천]

곽지사의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은 없으나 출토 유물로 보아 고려 시대 전기 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질그릇들도 다수 발견되고 있어 유물들과 사찰의 관련 여부에 따라 상한 연대는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곽지사지에서는 문둔테로 보이는 것과 기단석으로 추정되는 유물도 나왔으며 명문 기와도 발견된 상태이다. 이곳의 문둔테는 사찰 경내의 울타리와 함께 쌓여 있다. 크기는 길이 57.0㎝, 높이 29㎝, 폭 46.0㎝이며, 홈 지름 18.0㎝, 높이 25㎝이다.

곽지사의 기단석으로 추정되는 돌광돌은 마을 사람들이 물광돌이라 이름 붙여 예로부터 물허벅으로 물을 길어 나를 때 쉼돌로 사용했는데, 곽지리 폐사지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 이 돌의 규모는 길이 208㎝, 폭 55㎝, 높이 25㎝이다. 이 돌은 이형상의 제주불교 훼철시 무너진 것으로 알려졌다.

[위치]

곽지리 곽금 초등학교 앞 삼거리에 ‘절왓’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곽지사지로 알려져 있다. 곽지사지애월읍 곽지리 1905-3번지와 1904번지, 1906번지 일대에 존재하던 고려 시대 사찰터를 말한다. 곽지사지 동쪽으로는 해발 155m의 과오름이 있고, 서쪽으로는 금성천이 흐르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곽지사지에서 발견된 유구로는 문지도리와 기단석 등이 있다. 유물로는 제주 지역 최초의 혼귀면 암막새가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명문 기와편과 여러 종류의 암·수 기와가 다수 발굴되었다.

수키와는 무문이며, 암키와의 기와등 문양은 어골문, 무문이 수습되었다. 무문 암키와는 사립이 많이 혼입된 기와와 소성이 잘 된 기와이다. 문양을 지운 기와도 고루 발견되었다.

어골문 암키와는 전형적인 고려 시대 양식으로 타날이 수평으로 일정하다. 도기는 삼국 시대 도기편과 고려 시대 도기편, 그리고 상감청자편 등이 다수 발견되었고,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해당하는 분청사기편들도 다수 출토되었다. 도기편은 조선 전기 및 중기의 것들까지 발견되었다.

청자는 접시, 완 등이며 표면에는 내저에 원각이 있을 뿐 특별한 문양이나 장식은 없다. 굽이나 내저에 적갈색 내화토 또는 모래를 받쳐 번조하였다. 고려 후기인 14세기에 제작된 청자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현황]

현재 이곳은 경작지로 조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유물들이 인근 경작지에 흩어져 있으며, 현재도 계속 유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의와 평가]

수차례의 경작지 조성 작업에도 불구하고 이곳 ‘절왓’과 인근 경작지에서는 수많은 기와 파편과 자기 파편 등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곽지사지의 지표면에서는 다양한 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 조사에 신중을 기하여야 할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주불교의 역사뿐만 아니라 제주 지역 역사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현재 남아 있는 유물들의 보존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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