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용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674
한자 龍城
영어음역 Yongseongmaeul
영어의미역 Yongseong Village
이칭/별칭 남원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유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정의]

고려와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의 별호(別號).

[개설]

용성’이 남원의 별호라고 처음 지칭한 것은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서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남원을 가리키는 말로 용성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

『고려사』에 나오는 용성의 사용례를 찾아보면 대부분 수주(水州)[수원]의 속현이나 안변도호부에 속한 등주(登州)의 속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을 가리키는 말로 용성이 널리 사용된 것은 오히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이다.

사실 『고려사』가 조선 초의 사서(史書)라는 점을 고려하면, 용성을 남원의 별호라고 기록한 것은 고려시대의 실상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사관이 살았던 조선시대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명칭유래]

백제시대 남원 지역의 명칭이 고룡군(古龍郡)이었다는 점과, 통일신라시대 신문왕 때까지 그 축조 연대가 거슬러 올라가는 남원성(南原城)을 고려할 때, 이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용성(龍城)이라는 명칭이 나온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위치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남원부의 경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동쪽은 운봉현(雲峯縣) 경계까지 30리, 남쪽은 순천부 경계까지 67리, 곡성현 경계까지 33리, 서쪽은 순창군 경계까지 37리, 옥과현 경계까지 62리, 북쪽은 임실현 경계까지 43리, 장수현(長水縣) 경계까지 70리며 서울까지는 655리이다.”

[관련기록]

용성남원부의 별호라는 기록은 『고려사』지리지 전라도 남원부조에 처음 등장한다. 이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의 일로, 『계곡집(谿谷集)』·『난중잡록(亂中雜錄)』·『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국조보감(國朝寶鑑)』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