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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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판관이었던 강재의(姜在毅)의 거사비(去思碑). 강재의는 1848년(헌종 14) 8월 장인식이 제주목사였던 때에 제주판관으로 부임했다. 강재의는 이현공(李玄功)이 제주목사였던 1851년(철종 2) 2월에 제주도를 떠난 관리로, 송사(訟事)를 공정히 처리하였으며 부하나 백성을 아껴 괴롭히는 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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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었던 조선 중기 북수구(北水口)의 문루. 1652년(효종 3) 8월 심한 비바람으로 남수구와 북수구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자, 당시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그 해 겨울부터 공사에 들어가 이듬해 3월 11일 북수구를 다시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세워 공진루라고 이름하였다. 그 후 공진루는 관리들이 세운(世運)을 기원하는 장소로,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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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귤림서원의 내력을 기록한 비. 귤림서원 묘정비는 1850년(철종 1) 제주목사 장인식이 귤림서원의 내력을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 그 후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귤림서원과 함께 철거되었다가 1892년 대원군이 실각하자 유림 김희정 등이 중심이 되어 귤림서원 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서원비라고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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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돌이나 쇠붙이에 새겨 넣은 글씨나 그림. 금석에 새겨진 문자나 도형은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아 과거의 사실을 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은 크게 금문(金文)과 석문(石文)으로 구분된다. 금문은 금속제의 용기, 악기, 무기, 화폐, 인장(印章), 경감(鏡鑑), 범종(梵鐘), 도량형 등에 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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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산. 자는 진숙(晋叔), 호는 명도암(明道菴). 아버지는 김경봉(金景鳳)이며, 구좌읍 한동리 태어나 처가인 봉개리의 명도암으로 옮겨 살았다. 제주에 유배 온 실학자 이익(李瀷)[1579~1624]에게 수학하였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합격하여 1643년(인조 21) 숙녕전참봉에 천거되었으나 고향에서 후생을 가르치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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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설치한 외부 침략에 대비한 방어유적. 별방진은 1510년(중종 5) 장림(張琳) 목사가 우도에 왜구가 접근하기 쉬우므로 이를 방어하기 위해 김녕방호소를 이 곳, 하도리로 옮겨놓은 진(鎭)이다. 1973년 4월 13일 제주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된 9진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 중종 때 제주목사 장림(張琳)이 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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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삼성(三姓) 신인들을 모시는 사당. 삼성사는 고·양·부 삼성 신인들을 모시는 사당으로서, 제례는 향교의 석전과 제복을 갖추어 매년 4월 10일에 춘제, 10월 10일 추제를 지낸다. 삼헌관은 고·양·부 세 성씨가 윤번제로 하고, 12월 10일 건시제(乾始祭)는 제주 도민제로 모시었다. 초헌관은 지방 장관, 아헌관과 종헌관은 기관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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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시대 제주목 관아 내의 건물 터. 심약방은 조선시대 조정에 바치는 약재를 심사, 감독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되는 종9품의 관원인 심약(審藥)이 거처하는 방(房)이다. 1993년 3월에 사적 380호로 지정되었다. 1848년(헌종 14) 3월부터 1850년(철종 1) 6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제주목사 겸 제주방어사로 재임한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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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세워진 교육 기관. 역학당은 관덕정 동쪽 좌위랑에 위치해 있던 서당으로, 18세기 이후 등장했던 개량서당 교육 기관이었다. 이원진의 『탐라지(耽羅誌)』에 의하면, “재관덕정좌위랑 역학왜학동거 배제번삼 학생일백칠십육명(在觀德亭左衛廊 譯學倭學同居 排除番三 學生一百七十六名)”이라 하여 다수의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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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조선 시대의 사당. 영혜사는 조선 중기인 1669년(현종 10) 제주목사 이연이 제주목사 출신의 유학자들을 배향하기 위해 귤림서원 동쪽에 세운 사당이다. 창건 당시에는 이약동·이회를 배향하였는데, 1819년(순조 19) 제주목사 조의진의 유장(儒狀)에 따라 이형상과 김정을 배향하였으며, 1831년(순조 31)에는 제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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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선비. 아버지는 오전(吳巓)이다. 집안이 가난하지만 배우기를 즐겼고,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1728], 정희량(鄭希亮)[?~1728], 박필현(朴弼顯 )[1680~1728] 등이 이른바 이인좌의 난을 일으키자 정의현을 중심으로 창의 격문을 삼읍(三邑)에 돌려 의병을 일으켰다가 진압 소식이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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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정(聖庭), 호는 녹하(麓下). 아버지는 이지응(李地膺)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0년(순조 30) 3월 이행교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32년(순조 32) 2월 파직되었다. 제주목사 재임 중 1831년(순조 31)에 화촌(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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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840년(헌종 6) 성균관 유생에게 황감(黃柑)을 주면서 치른 과거 시험인 황감제에서 부(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문과의 초시와 복시를 치루지 않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얻게 되었다. 1841년(헌종 7) 정시(庭試)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을 거쳐 승정원부승지를 지냈다. 1850년(철종 1) 6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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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사수(士遂), 호는 금호(錦湖). 아버지는 북병사(北兵使) 임준(林畯), 어머니는 현감 권석(權錫)의 딸이며, 동생에 임길수(林吉秀)[1529~?]가 있다. 1531년(중종 25) 진사가 되고, 1535년(중종 3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 춘추관기사관, 세자시강원사서 등을 지냈다. 사가독서(賜暇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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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장인식을 기리는 비. 장인식은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1848년(헌종14) 3월에 부임하고 1850년(철종 1) 6월에 사직하였다. 양몽재(養蒙齋)를 세워서 서책을 마련해 두었고, 문과초시(文科初試)를 설행하였다. 금종각(金鍾閣)을 갖추고 군기를 보충하여 갖추었으며 새로 서원의 산앙문(山仰門)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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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장인식을 기리는 비. 장인식은 양몽재(養蒙齋)를 세워서 서책을 마련해 두었고 문과 초시(初試)를 설행하였다. 금종각(金鍾閣)을 갖추고 군기를 보충하여 갖추었으며, 새로 서원의 산앙문(山仰門)을 세웠다. 삼성사(三性祠)에 숭보당(崇報堂), 북재양(北財場)에 심고당(審固堂)을 세웠고, 귤림서원(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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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차지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장인식(張寅植)의 선정을 기리는 비. 장인식은 1848년 3월에 부임하였다가 1850년 6월에 사임(辞任)한 제주목사이다. 장인식은 2년 3개월간 재임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삼성사 내에 숭보당(崇報堂)을 세웠으며 배대정(拝待亭)을 해수사(海袖祠)로 개편(改編)하여 해신제(海神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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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시대 종루 터. 종루는 진해루(鎭海樓)·포정사(布政司)·종각(鐘閣)이라고도 불리던 곳으로, 제주목의 관아를 둘러서 쌓은 제주성 안에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제주성 문을 열고 닫을 때 종을 쳐서 시각을 알리던 곳이다. 조선조 세종 때 불에 타서 없어지자 새로 새워서 진해루라 이름하였고, 1699년(숙종 25) 제주목사 남지훈이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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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제당. 해신사는 조선 순조 20년(1820), 당시 제주목사로 있던 한상묵이 화북포 앞바다를 오고가는 배들의 안전을 바다의 신인 용왕에게 기원하기 위해 지은 제당이다. 해신사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5일 바다가 삶의 터전인 주민들이 모여 ‘해신제’를 지내는데, 무속신인 용왕에게 유교식 마을 제사를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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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비석 군락. 제주도에는 역사가 오랜 마을 중심지에 지위가 높은 관리나 마을과 관련된 선비들의 치적을 기념하는 비가 많이 있는데, 이러한 거리를 흔히 비석거리라고 부른다. 화북비석거리는 화북동에 많은 비석이 세워진 거리라는 데서 유래한다. 제주와 육지를 잇는 첫 관문으로 새로 부임해 오는 제주목사나 제주판관, 조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