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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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이형상이 쓴 제주의 인문지리지. 이형상(李衡祥)[1653~1733]은 조선 후기 숙종, 정조 때의 문신이자 국학자이며 실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효령대군의 10대손으로 호는 병와(甁窩)·순옹(順翁)이다. 『남환박물(南宦博物)』은 1702년 3월부터 1703년 6월까지 제주목사를 역임한 뒤에 1704년 경상북도 영천의 호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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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형상(李衡祥)[1653~1733]이 집필한 문집. 이형상이 살던 숙종조는 사회적인 혼란과 사상적 갈등이 심하였다. 나라 경제는 파탄 지경에 빠졌으나 당쟁은 어느 때보다 심하였고, 학문적으로는 실학과 서학이 대두하였다. 이런 와중에 이형상의 학문 세계는 그보다 앞 시대의 인물이었던 유형원이나 후대 인물인 정약용에 비해 뒤질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형상의 문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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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 귀양 온 조선 후기 서재(西齋) 임징하(任徵夏)가 저술한 문집. 조선 숙종 때의 문신 임징하는 제주도에서 귀양을 살았으며, 『서재집(西齋集)』은 임징하의 5대손인 임헌회가 수집, 간행하였다. 임징하는 1726년(영조 2) 탕평책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순안(順安)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인 1727년 7월 대정현 감산으로 이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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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를 시조로 하고 신명려를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거창신씨 시조 공헌공(恭憲公) 신수(愼修)는 송나라 개봉부(開封府) 사람으로 고려 문종 때 귀화했는데 학식이 깊고 의술에 능했다. 1075년 시어사(侍御史)가 되고 숙종조에 이르러 수사공(守司空) 우복야(右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신수 그의 아들 신안지(愼安之)도 문종 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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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제주의 역사.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470여 년 동안 제주도 사회는 변화와 시련을 겪으면서 그 역사를 전개하였다. 이를 살펴보기 위하여 편의상 몇 개의 시기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우선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와 대몽 활동을 펴다가 고려·몽고 연합군에게 평정되는 시기를 기준으로 크게 고려 전기와 후기로 나누기로 한다. 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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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조를 시조로 하고 이세번과 이세택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고부이씨의 시조 이경조(李敬祖)는 고려 때 한림학사를 거쳐 문하평장사와 검교좌정승을 지냈다. 후손 가운데 조선 성종 때 별시 문과에 올라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이희맹(李希孟)이 우뚝하다. 태종 때 대과에 올라 주서와 교수를 지낸 이백첨(李伯瞻), 그리고 숙종 때 식년 문과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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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혼상제는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치는 과정에서의 통과 의례이다. 이는 반 게넵(Arnold van Gennep)이 주장한 것으로 세 가지 절차로 나뉜다. ‘분리-과정-가입’ 의례가 그것인데, 현재의 집단에서 새로운 집단으로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행해진다. 분리를 위한 의식 절차는 상례에서 가장 잘 발전되고, 통합을 위한 의식 절차는 혼례에서 가장 잘 발전된다. 또 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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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숙귀를 시조로 하고 오석현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도시조 오첨(吳瞻)의 24세손인 동복군(同福君) 오현좌(吳賢佐)의 둘째 아들 오숙귀(吳淑貴)를 시조로 하고 있다. 오숙귀(吳淑貴)는 고려 숙종 때 19세의 어린 나이로 문과에 올라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고 군위군(軍威君)에 봉해졌다. 오숙귀(吳淑貴)의 후손들이 군위에 정착 세거하여 동복오씨(同福吳氏)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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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년과 1729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이건의 시문집. 이건(李健)[1614~1662]은 선조의 손자로서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아들이다. 1628년 인성군이 역모 혐의로 대역 처분을 받았을 때 두 형과 함께 15세의 나이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인조의 특별한 배려로 1635년 제주도에서 울진으로 이배되고, 1637년에는 귀양에서 풀려나 해원군(海原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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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745년(영조 21) 이산부사 재임 중 사간원정언 이응협(李應協)[1709~?]이 “이산부사(理山府使) 김몽규는 탐욕스러운데다가 불법을 자행하여, 원망이 무더기로 일어나고 있으며”라는 상소를 올려 파직되었다. 1752년(영조 28) 12월 윤구연(尹九淵)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으며, 1754년 (영조 30) 10월에 영조의 탄신일에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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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만희·김돈·김응주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김해김씨(金海金氏)는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제12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종파(直系宗派)는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김목경(金牧卿)의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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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탁과 문신공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남평문씨는 고려 1197년(명종 24)에 제주에 입도한 기록으로 보아 고·양·부 3개 성씨를 제외하고는 제일 먼저 입도한 성씨임을 알 수 있다. 남평문씨의 시조는 신라 자비왕(慈悲王) 때 사람인 문다성(文多省)이다. 문다성(文多省)의 출생에 대해서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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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는 이형상 제주목사가 재임할 당시 제주도를 동-남-서-북으로 한 달 간 걸쳐 순력(巡歷)하고 돌아와서 그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28폭의 그림에 담아낸 총 41면으로 된 도첩(圖帖)으로, 채색화이자 기록화이다. 기록화는 특정한 사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한 그림을 말한다. 중앙에서는 도화서 화원(畵員)들이 의궤도를 비롯한 기록화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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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의 효자. 본관은 밀양. 아버지는 박려한(朴麗漢)이다. 한림읍 옹포리에서 태어났다. 제주목의 서리를 지냈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0년(숙종 36) 12월 파직되어 떠나는 제주목사 최계옹(崔啓翁)[1654~?]을 따라 진상품을 싣고 출항하였다가 파선되어 겨우 사서도(斜鼠島) 근처에서 표착하였다. 부서진 배의 판자 조각에 부모와 이별하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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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분포되어 있는 불교에 관련된 유적지. 제주도의 불교 유적지는 근대 이전의 유적지만 약 85개소가 확인되었으나,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제주목에 사찰이 총 15개소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1653년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에도 총 22개의 사찰에 대한 기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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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한라산 산신제를 비롯하여 여러 제사를 봉행했던 산천단의 옛 터. 한라산 산신제의 내력을 살펴보면, 옛날에는 명산대천에 제 드리는 일을 아주 중요한 국사로 삼아 모든 산천을 하나하나 등재하고, 격식을 갖추어 『오례의』라는 책을 만들었는데 한라산은 제외되어 있었다. 이에 1703년(숙종 29) 당시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이 조정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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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1동에 있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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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513년(중종 8) 6월 제주목사에 임명되어 9월에 김석철(金錫哲)[1456~?]의 후임으로 제주에 부임하였다가 1515년(중종 10) 3월 18일 재임 중 사망하였다. 함께 재임했던 제주판관은 서연(徐憐)[1494~1515]이었다. 정사에 청렴 정직하고 간사한 일을 아니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명환(名宦)이라고 하였다. 일찍이 무과에 장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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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경기도 남양부사 재임 중인 1771년(영조 47) 2월에 안종규(安宗奎)의 후임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하였고, 1773년(영조 49) 3월에 죄인을 두둔하였다 하여 체포되었다. 제주목사 재임 중인 1772년 제주 삼성혈에 담을 쌓고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 또한 제전(祭田)을 제주목사의 자문 기관인 유향소(留鄕所)에서 사용하도록 배려하여 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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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1동 395번지 용화사 절에는 제주도 민속자료 제1호(1971년 8월 26일 지정)인 복신미륵상이 있다. 제작 연대는 확실치 않았으나 마을 사람들은 고려시대로 추정했으며, 이곳에서는 자복, 자복신, 자복미륵, 미륵불, 서미륵, 서자복, 미륵부처, 큰 어른, 석불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 원래는 해륜사지라는 절터에 있었는데, 숙종 때 불교 타파 정책으로 절이 없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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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하경(夏卿), 시호는 정희(貞僖). 아버지는 어영대장 이여발(李汝發)이다. 문음(門蔭)으로 관리가 되어 여러 무관직을 역임하였다. 1693년(숙종 19) 4월에 윤정화(尹鼎和)[1648~?]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694년(숙종 20) 7월까지 재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경민편(警民編)』을 저술하여 도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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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 야계(冶溪) 이익태(李益泰)의 문집. 이익태가 제주목사를 제수받고 부임하기까지의 과정, 임기를 마치고 떠나기까지의 행적, 그리고 재임 기간 중의 업무와 제주 관련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 2018년 10월 30일 보물 제2002호로 지정되었다. 이익태는 『지영록』을 쓰게 된 연유와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695년(숙종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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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익(汝翼). 아버지는 이상연(李尙淵)이다. 1700년(숙종 26) 춘당대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1704년(숙종 30) 사헌부장령을 지냈으며, 1709년(숙종 35) 임양군(臨陽君)이 진하사(進賀使)로 청나라에 갔을 때 서장관으로 수행하여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였다. 1710년(숙종 36) 사헌부헌납을 거쳐 다시 장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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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덕장(德章), 호는 죽실거사(竹室居士), 시호는 효정(孝貞). 아버지는 좌참찬에 추증된 임환(任喚)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로 감역 신방헌(申邦憲)의 딸이다. 1657년(효종 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66년(헌종 7)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이후 도원찰방·가례도감조관·성균관전적을 거쳐 현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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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제주도에 들어와서 정착한 최초의 동일 성씨 선조. 제주의 토착 성씨인 고씨·부씨·양씨를 제외하면 제주의 성씨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건너온 성씨들이다. 이들이 어떠한 이유로 제주에 들어와 정착했든 그 후손들은 제주에 최초로 정착한 선조를 입도조라 칭하였다. ○ 제주입도조 가운데는 유배된 사람들이 많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조선 개국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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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도에 유배된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사역원부공사 장경이며, 역관 장현(張炫)의 종질이다. 숙종의 비이고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의 오빠이다. 희빈 장씨가 숙종의 총애를 독차지하자 포도대장격인 금군별장이 되었다가 1692년(숙종 18) 총융사로 승진하였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인현왕후가 복위하자 희빈 장씨와 함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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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닥 또는 닥르이다. 저지는 한자 차용 표기로, 저는 닥나무, 지는 마르의 한자 훈 표기이다. 약 1500년대 물을 따라 정착이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이 번성하여 조선 숙종 때는 당지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었다 18세기 초부터 저지라는 마을 명칭이 사용되어 왔다. 본래 제주군 구우면 지역으로 닥나무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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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팽형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이한(李翰)으로, 태종무열왕의 10세손인 김은의(金殷義)의 딸을 아내로 맞아 일가를 이룬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대성(大姓)이다. ① 이행은 시조 이한(李翰)의 28세손이며 중시조 이성규(李成楏)의 7세손이다.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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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도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아버지는 정유명(鄭惟明)이며, 어머니는 장사랑 강근우(姜謹友)의 딸이다. 1601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다. 1610년(광해군 2) 별시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광해군 때 영창대군이 강화부사 정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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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삼국시대 탐라국 수부(首府)의 성곽으로 축성된 성터. 제주성은 삼국 시대 탐라국 수부의 성곽으로 축성되었으나 원래의 규모와 축성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읍석성(邑石城)의 둘레는 910보”라고 하였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읍성은 석축으로 둘레가 4,394척이고 높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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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 제주시청에 있는 17세기 후반인 조선 숙종(肅宗)[1661~1720] 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 지역 속오군의 소속과 신원을 적어 놓은 명부. 속오군은 조선 후기 속오법(束伍法)에 따라 편성된 예비군 조직인 지방 군대이며 속오군적부는 지금의 병적기록부와 같은 속오군의 명부 자료이다. 『제주속오군적부』는 화첩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보물 제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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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최고의 경승지가 어디냐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제주도 전체가 빼어난 경승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 선인들은 제주를 대표할 만한 경승지와 경치를 선정하여 이름을 짓고 철따라 두루두루 찾아다니며 칭송하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것들은 변함없이 제주를 대표하는 경승지이다. 특히 조선 말 제주도의 대표적인 지식인 이한우(李漢雨)는 제주에서 경관이 특히 뛰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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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상징물 중 하나이다. 제주도를 방문한 사람들은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돌하르방과 마주친다. 오랜 세월 제주를 지켜온 돌하르방은 제주 방문을 환영하고 보호해 주는 듯, 위엄 있는가 하면 둥글넓적한 온후한 인상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마치 모진 환경에서 한평생을 보낸 우리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처럼 무뚝뚝하고 엄한 표정엔 미소마저 담뿍 담겨 있어 보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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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제주의 역사. . 조선 시대 제주는 독립성을 상실한 채 중앙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제주는 말의 특산지로 부각되면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중앙 정부에 의해 과중한 경제적 수탈이 이루어졌다. 특히 제주도 중산간 지역을 목장으로 만들어 개간을 금지했기 때문에 제주인들은 해변 지역의 일부 땅만을 이용해 농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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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지방관이 왕에게 의례적으로 바친 특산물. 진상은 원래부터 납세의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 도(道) 단위로 지방관이 한 달에 한 번씩 상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주·현에 그 부담이 배정되었고, 이것이 다시 각 민호에 배정되었다. 조선 시대 제주의 진상물 품목으로는 말·귤·전복·버섯·한약재 등을 들 수 있다. 『탐라지』(제주목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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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숙종 때 제작된 제주도 지도와 그 서문. 1709년(숙종 35)에 제주목사 이규성(李奎成)이 제작한 지도 1과 병서 2로 이루어진 지도로, 세로 125㎝, 가로 98㎝의 크기이다. 현존하는 조선 시대의 제주 지도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어 1991년 6월 4일 제주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도의 서문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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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에서 진상한 귤을 나누어주고 치르게 했던 과거 제도. 조선 시대 제주에서 진상한 귤을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시험은 주로 감귤이 진상되는 10~2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실시되었다. 예로부터 제주목에서는 귤·유자·귤감을 진상해왔다. 그러면 종묘에 진상하고 각궁의 하인들과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에게 이를 바쳤는데, 이를 치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