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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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의 터. 강림사에 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탐라지(耽羅志)』의 제주목 불우조에는 ‘강림사주동함덕포구(江臨寺州東咸德浦口)’라 하여 “강림사는 제주 동쪽 함덕 포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601년(선조 34) 김상헌이 편찬한 『남사록(南槎錄)』에도 “곧 원(元) 때 세운 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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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제주인에게 수여되었던 위계제(位階制)의 하나. 고려의 무산계는 문무 양반에게 수여된 문산계(文散階)와 대비된다. 이것은 향리, 노병(老兵), 여진(女眞)의 추장, 그리고 공장(工匠)과 악인(樂人)과 함께, 탐라 지역의 성주(星主)와 왕자(王子) 및 추장(酋長) 등의 토착 지배층에게 수여된 위계였다. 고려의 중앙 정부가 탐라민들에게 무산계를 수여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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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제주의 역사.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470여 년 동안 제주도 사회는 변화와 시련을 겪으면서 그 역사를 전개하였다. 이를 살펴보기 위하여 편의상 몇 개의 시기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우선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와 대몽 활동을 펴다가 고려·몽고 연합군에게 평정되는 시기를 기준으로 크게 고려 전기와 후기로 나누기로 한다. 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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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고려 전기 고조기(高兆基)의 묘비. 고조기는 고려 전기 인종, 의종 때의 인물이다. 비신의 높이는 233㎝이고 너비는 80.5㎝이며 두께는 52㎝이다. 비의 전면에는 “高麗中書侍郞平章事上柱國 文敬公 高兆基 墓碑(고려중서시랑평장사상주국 문경공 고조기 묘비)”라고 적혀 있다. 비의 후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무릇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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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탐라국의 태자. 본관은 제주. 고을나(高乙那)의 46세손이며 아버지는 고자견(高自堅)이다. 제주고씨의 중시조이다. 후삼국시대에 제주 지역의 향방은 점차 고려로 향하고 있었고, 925년(태조 8)에 이르러서는 고려에 방물을 바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받고 있었다. 고말로는 고려가 통일을 달성한 지 2년이 지난 938년(태조 21)에 태조 왕건을 알현하였고, 태조는 탐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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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제주안무사를 지낸 무신. 본관은 제주. 아버지는 탐라성주 고신걸(高臣傑)이며, 동생은 고봉지(高鳳智)이다. 1386년(우왕 12) 탐라에서 일어난 반란을 회유하기 위하여 제주에 파견된 전의부정(典醫副正) 이행(李行)과 대호군(大護軍) 진여의(陳如儀)가 임무를 마치고 개경으로 갈 때 동행하였고, 1388년(우왕 14)에 고려 조정으로부터 제주축마 겸 안무별감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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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여운(汝雲), 호는 척재(惕齋) 혹은 월포(月浦). 일명 김경흥(金景興)이라고도 한다. 고려 충정왕 때 진사시에 합격하여 도첨의사사헌납을 지냈으며, 공민왕 때 밀직사대언이 되었고, 자제위(子弟衛)에서 일하였다. 신돈(辛旽)[?~1371]이 조정에 들어오자 이존오(李存吾)[1341~1371]가 1366년(공민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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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망건을 제작하는 장인. 망건은 성인 남자가 상투를 틀고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에 두르는 머리띠 모양의 머리 장식이다. 망건장은 이러한 망건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경공장(京工匠)으로서 상의원에 망건장 4명을 배치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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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시행되는 민사, 형사 및 행정 사건의 재판권 행사에 관한 모든 제도. 좁은 의미의 사법은 재판 작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민사·형사 및 행정 사건 등의 재판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소송 절차를 거쳐 어떻게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선언하는 국가의 행위이며, 대립하는 양 당사자의 주장을 들어보고 공평한 제3자의 지위에서 국가가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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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멸망했을 때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켰던 고려 유신(遺臣)인 한천(韓蕆)·김만희(金萬希)·이미(李美)를 가리키는 말.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등극하면서 고려의 유신들을 불렀을 때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절개를 지켰던 사람들이다. 태조는 이들을 제주로 유배시켰는데, 그중에서도 한천(韓蕆)·김만희(金萬希)·이미(李美)를 삼절신이라 불린다. 김만희(金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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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 가운데 최상위 토호가 역임했던 관직. 통일신라 때 제주의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왕은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는 관직을 주었는바, 성주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관직으로, 외관의 역할을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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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경을 시조로 하고 강영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시조 강호경(康虎景)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외(外) 6대조이고, 강호경(康虎景)의 4세손 강보육(康寶育)은 왕건의 외고조부로서 왕덕대왕(王德大王)으로 추존된 인물이다. 강씨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할 중시조(中始祖: 1세)는 충렬공(忠烈公) 강지연(康之淵)으로 강지연(康之淵)은 몽골 침입 때 고려 고종(高宗)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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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고, 허손(許愻)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할 때 군량을 조달해 준 공으로 허선문(許宣文)이 세거해온 공암의 공암촌주(孔巖村主)로 봉해져 그곳을 식읍으로 받았다. 양천허씨를 일명 공암허씨(孔巖許氏)라 함은 이에 연유된 것이다. 후손인 허성(許筬)은 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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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역사. 제주도는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한반도 남쪽을 거쳐 일본 큐슈[九州]로 이어지는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중도 기항지가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과거 유물·유적의 분포지가 대부분 제주도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의 선진문물의 유입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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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정절을 지켰던 여자. 유교에서 중요시한 덕목 가운데에는 효(孝)와 열(烈)이 있는데,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며 열은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다. 조선조에 태조가 즉위하면서 그 해 7월에 발표된 「즉위 교서」에는 충신, 효자, 의부, 절부의 일은 풍속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이를 널리 권장하고 문려(門閭: 동네 어귀에 세운 문)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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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까지 제주 지역의 토착 세력 가운데 차상위 토호가 역임했던 관직. 통일신라 때 제주의 고후(高厚)와 고청(高淸), 그리고 셋째가 바다를 건너와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왕은 고후에게 성주(星主), 고청에게 왕자(王子), 셋째에게는 도내(徒內)라 하는 관직을 주었는바, 왕자라는 명칭은 통일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관직으로, 성주와 더불어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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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의종 때 제주 지역에 설치된 군의 명칭. 제주 지역이 중앙정부에 정치적으로 종속되어 행정 지배를 받게 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였다. 그러나 그 시점에 대해서는 태조대(918~943)로 보는 견해, 1105년(숙종 10)으로 보는 견해, 의종대(1147~1170)로 보는 견해가 있다. 태조대에 편입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고려가 태조대부터 외관은 파견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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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지역에서 대물림으로 내려오던 아전(衙前). 향리라 부르는 이들은 수령을 보좌하며 지방 행정의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였다. 오늘날의 지방 공무원에 비견될 수 있다. 탐라국의 지배 세력은 고려 후기에 점차 와해되면서 일부는 토관 세력으로 진출하고 또 다른 일부는 향리 세력을 형성하였다. 조선 시대 제주도에 향교가 설치된 것은 태조와 태종 때이다. 그러나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