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8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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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鰲島 |
영어음역 | Geumodo |
영어의미역 | Geumodo Island |
이칭/별칭 | 거무섬,거마도(巨磨島)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훈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에 있는 섬.
[개설]
금오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인데,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남면 유송리 여천(汝泉)마을 동쪽 바닷가에 있는 금오도 조개더미 유적이다. 현재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조개더미가 드러난 면적은 동서 30m, 남북 15m 정도의 작은 규모이다. 금오도 조개더미 유적은 흑갈색 자갈층 위에 형성되어 있으나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금오도 조개더미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류는 14점으로 굵은줄무늬와 가는줄무늬, 세모점줄무늬토기 등의 점줄무늬 그리고 겹아가리토기와 같이 남해안 해안 지방 신석기시대 여러 유적에서 출토된 내용과 비슷한 것이 특징이다.
금오도는 조선시대부터 기록에 나타나고 있는데, 주로 바닷길과 왜구의 침입, 소나무를 기르던 봉산(封山), 금오도에 닿은 난민, 금오도 개발 등에 관한 내용이다. 조선시대 금오도는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임금의 관(棺)을 짜거나 판옥선 등의 전선(戰船)을 만들 재료인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던 황장봉산(黃腸封山)이었다. 소나무의 중요성 때문에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기간도 길었는데, 봉산으로서 금오도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타난다.
한편, 금오도에는 역사적으로 항일운동과 관련된 사건이 많이 있다. 그 중 1936년 일본은 우리나라 모든 국민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는데, 1938년 9월 열린 제27회 장로회 총회에서부터 개인 또는 소집단적으로 신사 참배 반대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당시 우학리 교회 목사 이기풍도 신사 참배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기풍은 여수경찰서에 투옥되어 고문을 받다가 죽기 직전 금오도로 강제로 옮겨졌으며, 1942년 6월 20일 일요일 아침 우학리 교회 목사관에서 별세하였다.
1885년(고종 22)부터 본격적으로 금오도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어업의 발달과 더불어 1960년대까지 인구가 급증했다. 하지만,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이촌향도 현상을 가져와 1970년대부터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였으며, 최근에는 행정기관이 밀집된 우학리를 제외한 대부분 마을에서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구가 감소하였다.
금오열도에 전해지는 전승 설화와 이에 관련된 인물로는 내외진마을의 다시랑[新郞峰] 전설, 우실마을의 옥녀봉 전설, 허민령(許民令)을 주청한 이주희, 함구미마을의 비사리 구시와 용머리 바위 전설·절터 전설, 두포마을의 신선대 전설과 불무골 전설, 심포마을의 대감 산소등 전설, 안도마을의 두만안에 관한 전설, 연도마을의 바위에 새겨진 서씨과차(徐氏過此)의 전설과 장서린(張書隣)이란 도둑 괴수에 관한 전설·장군묘에 관한 전설·속평굴 보물에 관한 전설·용(龍)의 승천에 관한 전설, 횡간마을의 원님과 강씨(姜氏)의 벼슬 매수 전설, 신령스러운 괴목나무 전설 등이 전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전라남도 승주군 승주읍에 송광사와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금오도에 송광사를 짓고 왕래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영은등오기(靈隱燈蜈記)』와 『귀객기』에 전하여지고 있다.
[명칭유래]
명칭은 섬에 삼림이 울창하여 검게 보였기 때문에 거무섬이라 부르던 것을 비슷한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오도(金鰲島)가 되었다. 금오도가 금빛의 거북을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 이야기 역시 한자를 뜻풀이한 결과이다. 금오도는 한때 거마도(巨磨島)라고도 하였는데, 이 또한 거무섬의 이름을 비슷한 한자로 표기한 경우이다. 옛 지도 「청구도(靑邱圖)」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거마도로 표기되어 있다.
[자연환경]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 화산암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고봉은 서쪽에 솟아 있는 매봉산[382m]이며, 그 밖에도 동쪽의 옥녀봉[261m]을 비롯한 해발 200m 내외의 산이 대부분이다. 해안은 소규모의 만과 곶이 발달해 비교적 드나듦이 심하며, 특히 서쪽은 반도처럼 바다로 돌출해 있다.
기후는 대체로 따뜻하며, 비가 많은 해양성 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동백나무가 무성하여 남국적인 풍경을 이루며, 토양은 신생대 제4기의 과거 고온 다습한 기후 환경에서 만들어진 적색토가 널리 분포한다.
금오도는 배타적 경제 수역[EEZ]의 설정과 수산 자원의 남획, 어장의 축소, 공유 수면의 매립과 간척 사업 등에 따른 해양 환경오염의 심화 등으로 어업 생산성과 채산성이 점점 낮아져 왔다. 따라서 정부와 수산 관련 민간단체에서는 수산 생물의 인공적 산란과 서식장 제공, 우량 수산 종묘 방류 등을 통하여 연안 수산 자원의 감소 현상을 극복하고, 인위적인 통제와 관리를 통해 해양 환경을 보호하면서 수산물 생산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확보, 공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당위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정부에서는 2001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금오열도를 중심으로 한 전라남도 다도해형 바다목장 사업을 설정하였다. 2004년 8월부터 2005년 6월까지 금오도 연안 해역에 5개의 조사 지점을 정하여 부유성난 및 자치어, 어류상을 조사한 결과, 부유성난은 총 9개의 떼가 출현하였다. 이들은 멸치·전어·정어리·미역치·보리멸·주둥치·망둑어과 어류, 참서대와 기타로 분류하였다.
자어(仔魚)는 갓 부화했거나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물고기를 말하며, 치어(稚魚)는 모든 지느러미의 밑바탕이 마련된 시기부터 몸의 생김새가 어미와 같아지기 전까지의 어린 고기를 말한다. 금오도 인근 바다 목장 해역에서 발견된 자치어는 총 5목 18과 24종으로 2,602개체/1,000㎥가 출현하였다. 여름철[8월]에는 2,067개체/1,000㎥로 가장 많았고, 겨울철[2월]에는 28개체/1,000㎥가 출현하여 가장 적었다.
금오도 주변에서 채집된 어류는 총 10목 30과 47종으로 1,237마리 가운데 농어목이 12과 18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쏨뱅이목이 5과 8종, 청어목이 3과 7종으로 이들 3목이 포함된 어류가 33종으로 전체 마릿수의 86.7%를 차지해 가장 많은 목들로 나타났다.
[현황]
금오도는 면적 27㎢로서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큰 섬이며, 여수시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진 돌산도·화태도·월호도·대두라도·소두라도·나발도·횡간도 등과 함께 금오열도를 이루는 중심 섬이다. 2022년 현재 금오도 내의 법정리로 우학리·두모리(斗母里)·유송리(柳松里)·심장리(深張里) 4곳이 있다.
금오도 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고추·마늘·고구마 등이 생산되며, 자급자족 할 수 있다. 연안 일대에서는 멸치·삼치·장어 등이 잡히며, 미역·김 등의 양식업이 활발하다. 마을은 낮은 평지와 해안 일대에 산재해 있으며, 해안과 능선을 따라 도로가 나 있고, 동서 방향의 도로는 포장되어 있다. 1981년 돌산도·안도와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금오도 지구에 속하게 되었다.
금오도에 이르는 방법은 남해고속도로 순천나들목에서 여수 방면으로 국도 17호선을 타고 여수시까지 이동한 다음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정기여객선이 금오도까지 하루 2~3차례 운항되며 운항시간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또 다른 방법은 돌산도 신기리에서 한림페리9호를 이용해 금오도 여천리까지 갈 수 있다. 신기리에서 금오도 간 운항시간은 약 30분 소요되며 하루 7회 운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