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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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光好 |
영어공식명칭 | Jeong Kwangh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보라 |
[정의]
일제강점기 2.8독립선언을 계획하고 광주 3.10만세운동을 주도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광호(鄭光好)[1895~?]는 전라도 광주목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0~13일에 일어난 광주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였으며,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 참사(參事),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상해유화학생회(上海留華學生會)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1월 정광호는 일본 도쿄[東京]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재학 중 2.8독립선언을 계획하였고, 귀국 후 전라남도 광주 지역 청년들에게 「2.8독립선언문」을 전달하였다. 1919년 3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최한영(崔漢泳), 김강(金剛) 등과 같이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3월 10일부터 3월 13일 사이에 광주 시민을 동원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선도하였다. 1919년 6월 1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궐석재판에 의하여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정광호는 광주 3.10만세운동 거사 후에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하여 교통부 참사로 근무하다가, 1921년 3월 18일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전라도 대의원으로 선임되어 입법 활동에 참여하였다. 1921년 9월 상해유화학생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1923년 1월 국민대표대회가 결렬된 뒤 6월 2일 김규식(金奎植), 원세훈(元世勳) 등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창조파(創造派)와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을 결성하였으며, 1926년 7월 29일 상하이 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9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