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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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獨立運動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노성태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
[개설]
전라남도 광주 지역 주민들은 한말 의병, 광주 3.1운동,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 국내외 독립운동에 앞장서 참여하였고, 참여자 중 115명[2020년 12월 기준]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독립운동은 크게 한말[대한제국기] 의병, 광주 3.1운동, 광주학생운동, 해외 독립운동, 국내 항일운동 등 다섯 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이 의병항쟁에 이어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음은 2019년 국가보훈처의 '일제강점기 수형인 명부에 대한 전국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일제하 독립운동과 관련되어 형무소에 수감된 5323명의 수형자 및 수형인 명부를 전수 조사하였는데, 광주·전라남도인이 1985명으로 37.3%를 차지하고 있다.
광주·전라남도가 본적인 독립운동가 중 독립유공자로 국가의 서훈을 받은 자는 1295명[2020년 12월 기준]으로 전국 대비 7.76%다. 이는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이 한말 최대 의병 항쟁지였고, 2019년 국가보훈처에서 전수 조사한 수형자 인원 수를 고려해보면 다소 아쉽다. 전라남도 출신 서훈자 중 광산군을 제외한 광주가 본적인 분은 26개 시·군 중 가장 많은 115명으로 8.9%를 차지한다. 이는 광주가 전라남도에서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었음을 말해준다.
[한말 의병]
광주를 포함한 전라남도는 한말 최대 의병 항쟁지였다. 1909년의 경우 전국 의병 참여자 중 45.6%가 광주·전라남도인이었다. 한말 의병에 참여하여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 중에 광주가 본적인 독립유공자는 20명이다. 의병장인 김동수, 김원국, 김원범, 박봉석, 임창모, 조경환이 비교적 높은 등급인 독립장을 받았다. 김재민, 박원형, 송학묵, 윤영기, 이기섭, 임윤팔, 신덕균은 애국장을 받았다. 김자술, 박돌개, 양동골, 이경오, 이운집은 애족장을 받았다. 그리고 조성학은 건국포장, 이문거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광주 3.1운동]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전라남도 최초이자 최대 만세 시위가 일어난 곳이 광주였다. 1919년 3월 10일 광주천에서 시작된 광주 3.1운동은 1000여 명이 참가하였고, 이후 장성·함평·화순 인근으로 확대되었다. 광주에서만 수백 명이 체포되고 104명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김복현[김철] 등 모의하고 주동한 인물들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수피아여학교 학생이던 윤형숙[윤혈녀]은 일본 헌병이 내리친 칼에 왼팔이 잘리기도 하였다.
광주 3.1운동으로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 중에 광주가 본적인 독립유공자는 32명이다. 광주 3.1운동을 모의하고 주도한 김강, 김선명, 김용규, 김태열, 범윤두, 이주상, 정병소, 최병준, 최수향, 최영균, 최정두, 최한영, 최흥종, 홍덕주 등은 애족장을 받았다. 광주 3.1운동 당시 앞장서 참여하였던 김덕순, 김상원, 김장수, 민성숙, 배광석, 양순희, 유상규, 윤형숙, 이남채, 이병환, 이창호, 임영구, 정삼모, 조공찬, 차학봉, 최순우, 홍금돌, 홍승애 등은 건국포장 및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광주학생운동]
1929년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광주학생운동은 전라남도는 물론 국내외까지 확산되었고, 320여 개 학교 5만 4000여 명 이상의 학생이 참여하였다. 광주에서는 260여 명이 구속되고 성진회, 독서회, 소녀회, 「보안법」 관련 등으로 173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광주학생운동으로 재판을 받은 사람은 장재성 등 173명이다. 비밀결사 단체인 성진회 및 독서회 회원으로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학생들이 비교적 높은 형량을 선고받았는데, 성진회를 창립하고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한 장재성은 광주지방법원에서 가장 높은 7년을 선고받았다.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하여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중에 광주가 본적인 독립운동가는 28명이다. 성진회 회원이었고 퇴학 후 '김기권 문방구점'을 열었던 김기권은 애국장을 받았다. 강석원, 김복근, 김안진, 김용준, 박세영, 박옥련, 박현숙, 임병욱, 장경례, 장매성, 최성원, 최정기는 애족장을 받았다. 강사채, 고순례, 김두채, 김종호, 남협협, 박계남, 박채희, 윤해병, 이강오, 이강후, 이수동, 이순, 조기석, 주만우, 주말순은 건국포장 및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해외 독립운동]
미국·일본·중국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분들도 많았다.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중에 광주가 본적인 독립운동가는 11명이다. 미국에서 공립협회 활동을 한 정원도는 애족장을 받았다.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한 박노백, 장영규, 조성인은 애족장을 받았고, 김기중·최창모는 건국포장을 받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박상기는 애국장, 박남현은 애족장을 받았다.
광주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던 청년·학생들 중 일부는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독서회 회원이었던 이경채는 「조선독립선언문」 등 격문을 살포하다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애국장을 받았다. 「2.8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귀국한 후 광주 3.1운동 당시 주역으로 활동한 정광호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 참사 등을 지냈고, 애국장을 받았다.
최혜순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인 함평 출신 김철의 부인으로 임시의정원 전라도 대표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국내 독립운동]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및 학생운동 지도, 노동·농민 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들도 많았다.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중에 광주가 본적인 독립운동가는 24명이다. 조선청년총동맹 회원으로 신사상운동을 전개한 김재명, 노동조합을 결성한 김호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한 노석정·문동길·이윤호, 대동단 단원으로 활동한 노석중은 애국장을 받았다. 강해석, 김덕선, 김이현, 김태호, 문근실, 박오봉, 서재익, 유한선, 장순기, 전순협, 주봉식, 지용수는 애족장을 받았다. 김유성, 김재중, 차남진, 최영훈, 최원순, 허권삼은 건국포장 및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해외 대신 고향으로 낙향하여 농민·노동 운동을 전개하며 일제에 대항한 분들도 많았다. 광주학생운동에 앞장서 참여하다 퇴학당한 이기홍이 고향인 완도 고금면에 낙향한 후 전남운동협의회를 결성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한 경우가 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