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3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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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佛敎 |
영어공식명칭 | Buddhism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명철 |
[정의]
붓다를 교조로 삼고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하는 종교.
[개설]
광주광역시는 역사적으로 백제 문화권에 속하는 곳이다. 따라서 광주광역시의 불교 역시 붓다(Buddha)의 가르침을 지상에 실현함으로써 민중에게 삶의 희망을 제공하려는 차원에서 일찍부터 포교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기록이 없어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백제시대에 이미 인근 전라남도 영광과 장성을 거쳐 자연스럽게 민중들에게 불교가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있는 원효사(元曉寺)와 동구 운림동에 증심사(證心寺)가 건립된다.
왕권 강화의 차원에서 불교를 장려한 고려시대에 광주의 불교 역시 활발한 포교가 이루어졌으며, 성리학의 이념을 토대로 발전한 유교가 주도적인 종교였던 조선시대에는 상대적으로 불교의 교세가 약화되었음에도 민중들의 의식과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1924년에 발간한 『광주읍지(光州邑誌)』에 의하면 당시까지도 증심사, 불명암, 원효암, 규봉암, 금석암, 장원암, 여둔사, 성거사, 상원암, 본원사, 광종사 등의 사찰이 현존하였다. 그밖에 무량사, 천복사, 개룡사, 양림사, 장불사, 삼일암, 금탑사, 대자사, 빙발암 등의 암좌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효사나 증심사는 광주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건립된 대표적인 종교 도량이며, 현재도 종교를 떠나서 광주 시민에게 심신의 평안과 휴식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백제와 통일신라 시대의 불교]
광주광역시의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제의 불교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백제의 불교는 384년(침류왕 원년)에 인도 간다라 출신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남중국 동진을 거쳐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마라난타가 건립한 백제 최초의 사찰로 알려진 불갑사(佛甲寺)는 백제 불교의 초전성지(初傳聖地)로서 광주광역시를 포함한 호남 서부 지역 불교 융성의 시발점이다.
아신왕, 성왕, 법왕 등에 의해 사회 통합의 차원에서 포교가 이루어진 백제 불교의 특징은 불국토(佛國土)를 지향하는 미륵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백제시대에 직접적으로 광주광역시에 건립된 사찰은 기록상 알 수는 없지만, 전라남도 영광·함평·장성 지역에 다수의 암자와 불당이 있었기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주 지역에도 자연스럽게 불교가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광역시의 사찰 가운데 북구 금곡동에 있는 원효사는 신라 지증왕과 법흥왕 재위 기간, 즉 500년(지증왕 원년)에서 540년(법흥왕 27) 사이에 지어진 암자로 출발한 사찰이다. 원효가 직접 세운 사찰이라기보다는 한때 원효가 이곳에서 수행하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일 것이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1954년 원효사 중창(重創) 시기에 발견된 삼국시대 금동불상 6점과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6점 등이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약사사(藥師寺)[약사암]라고 부르는 사찰은 철감선사(澈鑑禪師)가 증심사를 세우기 이전에 기거한 암자로, 원래는 인왕사(人王寺)라고 했는데 고려시대 충렬왕 때 약사암(藥師庵)으로 개칭하면서 이어진 사찰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철감선사가 860년(헌안왕 4)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증심사를 건립한다. 증심사는 송광사에 딸린 사찰이다. 증심사의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증심사삼층석탑(證心寺三層石塔)과 보물로 지정된 광주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光州證心寺鐵造毘盧遮那佛坐像)이다. 두부(頭部)와 재질이 9세기 말에 유행한 양식임을 미루어 통일신라 후기이나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지산동 백주사(栢州寺) 터에 있는 광주 지산동 오층석탑은 전형적인 신라시대의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백주사 역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된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불교]
고려시대는 왕조의 건국과 더불어 민심을 통합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불교를 장려하고 발전시켰다. 한국 불교의 기틀이 되는 조계종과 신라시대에 없던 천태종이 등장한다. 반면 조선시대는 공자와 공자 제자들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현실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성리학이 정치적 이념으로 수용되면서 불교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 따라서 당시 광주 지역의 불교 역시 민간신앙으로서는 여전히 의미와 가치가 보존되었을 것이지만, 이전 시대의 역동적인 종교적 기능과 역할은 침체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증심사삼층석탑과 유사한 형태의 증심사오층석탑(證心寺五層石塔)이 건립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지역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오백나한(五百羅漢)과 10대 제자상을 봉안한 증심사오백전(證心寺五百殿)이 1609년(광해군 원년)에 건립되었으며,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현대의 불교]
광주광역시에서 활동 중인 주요 사찰은 원효사와 증심사를 비롯하여 광륵사, 무각사, 원각사, 보은사, 문빈정사, 백록사, 향림사, 선덕사, 대원사, 금광사, 관음사, 광덕사, 신광사, 대각사, 문수사, 정광사, 정안사, 수선사, 운천사 등이다.
광복 이후 기독교의 선교와 함께 전체적으로 광주광역시의 불교신자가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2015년 기준 광주광역시 불교 인구는 13만 9000여 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주광역시에서의 불교는 호국 불교 및 민중 불교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비의 정신과 생명, 인권 존중의 가치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기도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