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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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僧塔 |
영어공식명칭 | Stupa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염승훈 |
[정의]
광주광역시에 건립되었거나 광주광역시로 옮겨진 부도 10기.
[개설]
광주광역시에는 이 지역에서 건립된 8기의 부도(浮屠)와 이 지역으로 옮겨진 2기의 부도가 있다. 이 부도들은 동구에 6기, 북구에 2기, 광산구 2기가 분포한다. 광주광역시로 옮겨진 부도들은 전라남도 담양과 화순에 있던 것이며, 현재는 모두 북구에 있다.
[광주광역시 지정 승탑]
광주광역시에 있는 부도 중에서 국가 지정 문화재는 없으며, 시 지정 문화재는 원효사동부도(元曉寺東浮屠)가 유일하다. 원효사동부도[2m]는 원효사 공양간 동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100m 정도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 형식이며 원효사 인근에 있는 부도 중 양식적으로 가장 정연하며, 돌을 다듬고 조각한 수법도 가장 뛰어나다. 1986년 11월 1일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원효사동부도 탑신 정면에는 탑호를 음각한 흔적이 있지만 판독할 수 없다. 이 부도의 특징은 기단부와 옥개석에 조각된 각종 동물상이다. 이러한 동물상은 1647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탑(海南大興寺西山大師塔)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고, 18세기의 부도에서 자주 보인다.
[기타 승탑]
광주광역시에는 수월당 보문탑(水月堂普文塔), 월암당대사 민성탑(月岩堂大師敏性塔)을 비롯하여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9기의 부도가 있다.
〈동구의 기타 불탑〉
동구에는 증심사 인근에 수월당 보문탑, 월암당대사 민성탑, 원효사 인근에 원효국사탑(元曉國師塔), 회운당 부도(會雲堂浮屠), 원담화상탑(圓潭和尙塔)이 있다. 수월당 보문탑[1.2m]과 월암당대사 민성탑[2m]은 증심사 일주문 좌측의 부도·비군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부도이다. 수월당 보문탑은 일반적인 부도와 다르게 기단부에 귀부(龜趺)가 있다. 귀부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고, 일반적인 귀부와 달리 용두(龍頭)가 위를 향하고 있으며, 좌측으로 고개를 약간 돌리고 있다. 귀부 위에는 방형의 하대석과 계란형의 탑신이 한 돌로 이뤄졌다. 계란형 탑신의 정면에는 ‘수월당보문(水月堂普文)’이라는 탑호가 음각되어 있다. 수월당보문에 대한 설명이나 건립 시기를 알려 주는 명문(明文)은 없다. 수월당 보문탑은 전반적으로 돌을 다듬고 조각하는 수법이 많이 간략화되고 퇴화하였다. 수월당 보문탑의 용두 형태는 매우 독특한데, 이는 1715년(숙종 41)에 건립된 월암당대사 민성탑 옥개석의 용두 형태와 같아 수월당 보문탑은 1715년 전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월암당대사 민성탑은 팔각원당형 부도이다. 이 부도의 하대석은 각 면에 5개의 연주형(連珠形)을 돋을새김하여 우주(隅柱)를 표현하였다. 4면 중 정면과 좌측면, 뒷면은 변형된 연화문을 음각하였고, 우측면은 인면(人面)을 음각하였다. 이처럼 하대석의 각 면에 각기 다른 형태, 다른 문양을 조각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 부도의 팔각형 탑신 정면에는 ‘월암당대사민성(月岩堂大師敏性)’이라는 탑호가 음각되어 있다. 뒷면에는 ‘강희오십사년오월일을미립(康熙五十四年五月日乙未立)’의 명문(明文)이 음각되어 있어, 이 탑이 1715년(숙종 41)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월암당대사 민성탑의 옥개석 내림마루 끝부분에는 용두를 새겼다. 정면의 용두만 좌측으로 약간 고개를 돌렸고, 나머지 용두는 정면을 향하고 있다. 이 부도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탑(海南大興寺西山大師塔)과 유사한 양식이지만, 전반적으로 간략화되고 퇴화하였다. 특히 두 탑 모두 옥개석 내림마루의 끝부분에 용두를 새겼다는 점이 주목된다. 월암당대사 민성탑의 상륜부는 이 탑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상륜부의 형태가 매우 독특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원효국사탑[1.05m], 회운당 부도(95㎝), 원담화상탑은 원효사와 무애암 갈림길 우측의 부도·비군에 있다. 원효국사탑과 회운당 부도는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두 부도는 모두 방형의 지대석, 계란형 탑신, 보주(寶株)로 구성된 석종형 부도이다. 탑신의 상부에 비해 하부가 매우 짧아 불안정하다. 두 부도 모두 탑신의 정면에 장방형의 액(額)을 새기고 그 안에 ‘원효국사(元曉國師)’, ‘회운당(會雲堂)’이라는 탑호를 음각하였는데, 19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효국사탑과 회운당 부도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지역의 부도 중 가장 간략화되고 양식적으로 퇴화하였다.
원담화상탑은 1927년에 건립된 전각형(殿閣形) 부도로 원형의 지대석, 방형의 중대석, 반원구형의 상대석, 장방형의 탑신, 방형의 옥개석으로 구성되었다. 처마가 급하게 반전된 옥개석이 인상적이다. 원담화상탑은 탑신의 정면에 ‘원담화상탑(圓潭和尙塔)’이라는 탑호가 음각되어 있으며, 탑호 좌우에 “발본사원효유허 수법회운원담승훈 도기초적즉연 탑사흘리난힐 숭정기원후오정묘십일월(髮本寺元曉遺墟受法會雲圓潭丞勳道旣超蹟則然塔斯屹理難詰崇禎紀元後五丁卯十一月)”이라는 명문(名文)이 음각되어 있다.
〈북구의 기타 불탑〉
북구에는 국립광주박물관에 전보안사지부도(傳普安寺址浮屠), 전남대학교에 담양 서봉사지부도(潭陽瑞峰寺址浮屠)가 있다. 전보안사지부도는 1982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댐 수몰지구 보안사지에서 옮겨온 고려시대 부도이다. 이 부도는 지대석과 하대석, 탑신만 남아 있다. 전보안사지부도의 탑신은 완전한 구형에 가깝다. 정면, 좌측면, 우측면, 뒷면의 중앙은 원형으로 구획되었으며, 그 안에는 화문(花紋)이 새겨져 있다. 각 문양 사이에는 4개의 횡대(橫帶)를 새겼다. 이 부도의 가장 주목되는 특징은 구형의 탑신이다. 구형 부도는 고려시대 후기부터 살펴볼 수 있으나, 전각형 부도에 비해 그 수가 매우 적다. 그리고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 건립된 구형 부도는 대개 탑신에 아무런 조각이 없는 반면, 전보안사지부도는 화려한 조각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보안사지부도 하대석의 운룡문(雲龍文)은 현재 광주광역시에 있는 부도 중 유일하게 이 부도에서만 볼 수 있는 문양이다.
담양 서봉사지부도[2m]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종형(石鐘形) 부도이다. 이 부도는 원래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정곡리 584-4번지에 있었으나, 도굴범들에 의해 반출되려던 것을 전남대학교에 옮겨 복원하였다. 담양 서봉사지부도의 기단부는 지대석, 하대석, 간략화된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위에 버섯 형태의 보주와 한 돌로 이뤄진 석종형 탑신을 세웠다.
〈광산구의 기타 불탑〉
광산구에는 양림사(養林寺)로 올라가는 길 좌측에 2기의 백룡사 부도(白龍寺浮屠)가 있다. 두 부도는 모두 정면에 탑호가 음각되어 있으나, 희미하여 파악하기 어렵다. 『광주의 불적』에서는 좌측 부도는 벽해당(碧海堂), 우측 부도는 연회당(淵晦堂)이라는 탑호가 음각되어 있다고 하였으며, 광산구청의 조사에서는 좌측 부도는 벽회당(碧晦堂), 우측 부도는 동회당(洞晦堂)이라는 탑호가 음각되어 있다고 하였다.
좌측 부도는 높이 1.6m의 석종형 부도이다. 기단부는 팔각형의 지대석으로 구성되었으며, 탑신은 범종형이나 상부보다 하부의 둘레가 짧다. 탑신의 상부에는 굵은 횡대를 새겨 상륜부와 구분 지었다. 최상부에는 연봉형의 보주를 조각하였다.
우측 부도는 높이 1.9m의 석종형 부도이다. 기단부는 네 모서리의 각을 줄인 방형의 지대석으로 구성되었다. 정면 중앙에는 5조의 동심원문이 새겨져 있고, 그 좌우에는 5개의 연주형을 돋을새김하여 우주(隅柱)를 표현하였다. 지대석 상면의 네 모서리에는 거북이 조각되었다. 탑신은 범종형이다. 하부에 2개, 상부에 1개의 횡대가 새겨져 있다. 상륜부는 최상부의 연봉형 보주(寶珠)를 중심으로 12개의 상이 조식(彫飾)되어 있다. 이 2기의 부도는 아주 장식적이나 그 기법은 퇴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