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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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서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 시대 거석 기념물의 일종. 고인돌은 대부분이 묘제이나, 일부는 집단의 의식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기념물)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고인돌’,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대개석묘(大蓋石墓)’, 유럽에서는 대체로 ‘거석 기념물’ 또는 ‘돌멘(Delmen)이라고 부른다. 고인돌의 일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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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봉우리. 금봉곡 동쪽 능선상에 있는 오름이로 골짜기가 수없이 많아서 아흔 아홉 골이다. 아흔아홉골의 첫 머리에 해당하는 골머리에서 오름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제주시 공원묘지 남쪽 수림 지대에 주로 집중된 이 골짜기들은 가까이는 어승생오름 동록, 멀리는 한라산 북서사면의 꽤 높은 지대에서 발원하는 것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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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둘러보는 유람 활동. 제주시는 탐라의 역사 발상지일 뿐 아니라 제주도의 역대수부로서 행정·산업·교육·문화의 중심지여서 독특한 인문적 관광자원을 간직하고 있다. 제주시 지역은 제주도의 관문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제주시를 통해 방문하게 된다. 제주 방문 관광객의 경우 1971년도에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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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 1동 2651-6번지에서 제주시 삼도 2동 206-5번지에 이르는 도로. 남성로는 병문천과 한천을 양옆에 두고 뻗은 도로로 남문 사거리에서 제주 종합 경기장 교차로까지, 제주 종합 경기장을 지나는 길이1,650m의 왕복 4차선 도로이다. 남성로는 삼도 1동과 삼도 2동, 용담 1동을 지난다. 옛 지명인 남성 마을의 명칭을 반영하여 남성로라고 명칭을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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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한천(漢川) 가에 있었던 신당(神堂). 내왓당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세조실록(世祖實錄)』 세조 12년 기록에 「천외당 무신도 소각」이라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466년 전에는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내왓당이 제주 사대국당(四大國堂)의 하나로 알려진 것으로 보아 아주 규모가 큰 신당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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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동(老衡洞)은 1,950m의 한라산을 정면으로 하여 산북 지방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어 제주시 서부 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어승생과 한라산을 마주하고 있으며 배의 노를 젓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제주도의 산북 지방의 지형이 그러하듯 남고북저의 자연적인 지형 특성을 나타낸다. 주로 한라산과 어승생 주변에서 분출한 용암류와 화산 쇄설물(碎屑物)로 형성된 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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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1동 한천에 있는 다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1동에 있었던 마을인 동산물에 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따서 동산교가 되었다. 길이는 42m, 폭은 35m, 유효 폭은 23m, 높이는 8m이다. 경간 구조는 3 단순 T이며, 경간 수는 3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4m이다. 총 차선 수는 6차선으로 이루어져 교량 폭이 넓다. 다리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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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1동에는 다른 마을에는 있는 산이나 오름이 없이 대개 평탄한 지형을 이루면서도 드물게 병문천과 한천이라는 두 개의 큰 하천을 끼고 있어 물과 관련된 지명이나 이야기가 많다. 병문천은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아라1동, 도남동 서쪽, 오라1동과 2동, 이도2동, 그리고 삼도1동과 용담1동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바다와 만나는 건천이다. 『증보탐라지』에는 ‘제주읍 용담리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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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의 북사면에서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거쳐 건입동의 제주항으로 흐르는 하천. 산지천은 한라산 북사면 해발 약 720m 지점에서 발원하여 제주시의 아라동, 이도동, 일도동을 차례로 흘러 하구(河口)인 건입동의 제주항을 통해 바다로 나간다. 이 산지천은 과거에 큰 비만 내리면 하류 구간이 곧잘 범람하여 부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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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2493-5번지에서 이도 1동 1774-3번지에 이르는 도로. 서광로는 광양 로터리를 중심으로 광양의 서쪽 지역인 서광양을 지나는 도로로, 서광양과 도남동, 오라동을 지나 제주 국제공항과 신 제주로 연결되는 주 간선 도로이다. 삼성혈 남쪽 지역은 땅이 넓은 곳이라 해서 광양(廣壤)이라 불렸으나 현재는 빛이 잘 드는 마을이라는 뜻의 광양(光壤)이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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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마을 수호신이나 여러 직능을 차지한 신이 좌정해 있다고 신성시 하는 장소. 제주 지역의 신당들은 거의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신당은 인가(人家)에서 떨어져 있어야 개소리, 닭소리 등이 안 들리고, 사람의 왕래가 번잡하지 않은 조용하고 음침한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신 신화인 당신 본풀이들을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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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년과의 이야기는 용담동 옛 지경들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신옥년의 기억을 빌리자면 해방 후까지 용담동에는 집들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간간히 한천까지 이어지는 길가에 상점들만이 있었다고 한다. 현 서문시장 인근에도 집이 거의 없었고, 서문시장 위로는 거의 소나무밭이었는데, 시신을 묻는 묘지들이 그곳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한두기 근처나 부러리 근처 서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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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두싱이 오름 아래가 되므로 오두싱이가 되었다가 뒤에 오등동이 되었다. 이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등생촌(五等生村) 또는 오등생촌(吾等生村), 오등생리(吾等生里)라 하다가 18세기에는 오등리(吾等里)로도 표기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오드싱 또는 오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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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라 1동의 옛 이름은 ‘오라호’이다. 오라호는 민군에서 ‘오라위’로 변하였는데 그 뜻은 확실하지 않다. 오라 1동은 속칭 '모로냇가름'이라고 하며 한내를 끼고 있다. 마을 남쪽에 '내머리왓'이 있는데, 한내의 머리에 해당하는 밭이란 뜻이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모르내[한천] 가가 되므로 모르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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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라 2동은 사평마을, 연미 마을, 정실 마을, 동성 마을을 포함한다. 연미 마을은 약 300여 년 전 문(文)씨에 의해 설촌되었으나 빈번히 화재가 발생하여 당시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네에 판 큰 연못에서 연미라는 마을 이름이 연유한다. 정실 마을은 조선 선조 때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여기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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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라 3동은 옛이름은 ‘랑굴’과 ‘구아랑’이다. 랑굴은 민간에서 '중댕이굴' 또는 월구(月龜)라 한다. 굴은 구렁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모르내[한천] 가가 되므로 모르내가름, 모로동, 오라위, 월라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오라리라 해서 제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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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 1동·오라 2동·오라 3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연동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시가지 중심 남쪽의 중산간 지대에 있다. 제주 종합 경기장과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을 위시한 도심과 공항 주변으로 연결되는 녹지 지대, 그리고 한라산 북사면으로 전개되는 넓은 지역을 포함하는 다양한 생산, 생활 환경 특성을 보인다. 오라동은 옛 마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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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로 전체적인 형상은 동서의 길이가 짧고 남북으로 길쭉하게 되어 있다. 제주시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도시적 경관으로 변모한 지역이다. 용담(龍潭)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 또는 취병담(翠屛潭)[용연의 다른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한천을 경계로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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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북쪽에 위치한 해안가 마을로 용두암과 같은 해안 관광지와 더불어 제주의 관문인 제주국제공항이 위치한 지역이다. 도시적 경관과 농촌적 경관이 혼재된 도농복합지역이다. 관내의 법정동으로 용담 2동과 용담3동이 있다. 용담(龍潭)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 또는 취병담(翠屛潭)[용연의 다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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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 2동에 속하는 법정동. 용담 2동[법정동]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도시보다는 농촌적 경관이 우세하다. 용담(龍潭)은 이 지역에 위치한 용연(龍淵) 또는 취병담(翠屛潭)[용연의 다른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한천을 경계로 마을이 형성되어 동쪽은 동한두기, 서쪽은 서한두기로 불리던 것이 인구가 증가하면서 두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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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에서 20여 분을 승용차로 달려 제주시의 시내 중심가로 진입하려는 길목에 용담동이 있다. 용담동은 현재 전체 세 개의 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주국제공항에서 제주 시내로 가는 동안 용담3동, 용담2동, 용담1동을 거치게 된다. 제주 시내 중심가라 일컬어지는 ‘중앙로’와 가장 가까이 인접한 곳이 용담1동이다. 용담1동은 다른 동과 달리 오름이나 산이 없이 평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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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 2동에 있는 탐라 성립기 취락 유적. 용담동 먹돌로 유적은 한천(漢川)을 중심으로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이미 민가들이 대부분 들어서 있어 파괴되었고, 서쪽으로는 아직까지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유적은 해발 40m 내외의 비교적 평탄한 대지상에 위치하며, 해안으로부터 약 1.5㎞ 정도 떨어져 있다. 약 1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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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 탐라 성립기의 취락 유적. 유적은 제주시 서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은 한천을 중심으로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유적의 동쪽은 이미 민가들이 대부분 들어서 있어 파괴되었고, 서쪽은 아직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유적은 해발 40m 내외에 해당하는 비교적 평탄한 대지상에 형성되어 있으며, 해안과는 약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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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유적은 속칭 ‘먹돌새기’라고 하는 월성 마을에 위치한다. 유적은 해안에서 해발 40m 정도 올라온 비교적 평탄한 지형에 형성되어 있으며, 해안과는 약 1.5㎞ 정도 떨어져 있다. 유적의 동쪽으로 500m 지점에는 한천이 흐르고 있고, 서쪽으로 200m 지점에는 용담동 고분이 자리하고 있다. 이 유적은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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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탐라 후기의 제사 유적. 용담동 제사 유적은 제주시 앞 해안가에서 한 단 올라온 표고 20m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날씨가 좋을 때면 관탈도·추자도·해남 반도의 여러 섬 끝머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옛 제주읍성의 서쪽으로 흐르는 한천과 병문천 하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드넓은 ‘동한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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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한두기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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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오라동 일대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대에 해당하는 생활 유적. 제주시를 아우르고 있는 하천인 한천·병문천·산지천 중에서 탐라 시대에 중심이 된 하천은 한천이다. 한천 주변에는 10만여 평에 가까운 고대 마을터·옹관묘·석곽묘·9기의 고인돌·제사 유적 등이 남아 있다. 이 유적들과 유물의 분석을 통해 한천 주변에는 탐라 시대에 거점 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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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은 용담동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용담1동, 2동 구분을 잘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1동에 살던지 2동에 살던지 간에 모두 용담동 사람들이라는 한묶음으로 그들을 엮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인 즉 오히려 행정적 구분을 짓고 인구수를 동별로 추정하는 것은 일련의 식자층들이란다. 실제로 제주시 주민들은 모두 용담을 하나같이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용담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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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서 기우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제주시 용담2동의 한천(漢川) 하류에 있는 용소(龍沼)는 이름 그대로 용이 와서 머문다는 못이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 7년간 계속된 가뭄을 끝냈다는 고대장은 제주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대장본풀이」의 실질적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주시 삼도동 무근성[陳城洞]에 고대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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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한천 하류의 계곡 바위벽에 새겨진 마애명. 용연(龍淵) 마애명(磨崖銘)은 영주 12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용연야범(龍淵夜泛)의 계곡, 즉 용연(龍淵)에 새겨진 마애명이다.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임한 제주목사들은 방선문에서의 봄꽃놀이와 용연의 밤뱃놀이를 최고의 풍류로 쳤는데, 바로 그 용연에서의 밤뱃놀이를 용연야범(龍淵夜泛)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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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과 용담2동의 경계에 있는 못과 바위. 한천 하구에 형성된 깊은 소(沼)인 용연은 영주 12경중의 하나인 '용연야범(龍淵夜泛)'의 장소로 '취병담(翠屛潭)'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임한 목사들이 용연에서 여름밤 뱃놀이를 풍류로 즐겼다고 한다. 용이 살았던 연못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용두암은 용이 머리를 처든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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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의 끝자락,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 용연을 만난다. 용연은 용두암에서는 약 200m 떨어진 한천 하류에 있는 맑은 못이다. 예부터 용궁의 사자들이 백록담으로 통하는 길이었다는 이 용연은 한라산 정상 백록담 북쪽에서 발원하여 오등동, 오라동을 거쳐 용담동의 동서한두기 사이의 바다와 이어지는 한천 하류로 전형적인 건천이지만, 사철 용천수가 풍부하고 만조시에는 해수가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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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서 서식하는 오리과의 조류. 우리나라 중부 지역의 산간 계곡의 숲, 연못 등에서 번식하며, 겨울에는 강가나 저수지, 호수, 해안의 조간대 등에서 지낸다. 몸길이는 43~51㎝이며, 몸무게는 444~550g이다. 수컷의 몸 빛깔은 화려한 색을 띠며, 붉은 갈색의 늘어진 댕기와 흰색으로 된 눈 둘레, 자갈색의 윗 가슴, 노란 옆구리와 위로 올라간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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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남동을 관할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최근 구시가지의 팽창으로 새롭게 변모된 곳이다. 제주시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많이 위치하고 있어서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고, 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교통의 요지에 해당된다. 탐라국의 시조 삼신인(三神人)인 고을라(高乙那)·양을라(良乙那)·부을라(夫乙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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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의 지형과 지질 구조 및 기후 등의 자연 환경. 제주시는 제주도의 북부를 비롯하여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우도, 비양도의 7개 유인 도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 끝은 우도면 조일리로 동경 126°58′20″, 서쪽 끝은 한경면 고산리로 동경 126°08′43″이며, 북쪽 끝은 추자면 대서리로 북위 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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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소재한 탐라 형성기의 대단위 마을 유적. 제주 용담동 유적[발굴명: 용담동 2696-2번지 연립 주택 신축 부지 내 유적]은 북위 33˚30´12″, 동경126˚30´36˝에 위치한다. 해안에서 직선거리로 약 1.4㎞ 떨어져 있는 해발 45m내외의 평탄 대지상에 위치한다. 전체적인 지형은 남고북저의 완만한 평탄면을 하고 있으며 한천 쪽인 동편으로 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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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한천(漢川) 가에 있었던 내왓당[川外堂]의 무신도. 모두 10폭으로 되어 있으며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가로 32㎝, 세로 62㎝의 한지에 그려진 무신도 10폭은 모두 소나무 판자에 붙여져 있다. 모두 진채 물감으로 그려졌으며, 각 폭마다 신위 1위(位)씩을 앉은 자세로 그려 넣었다. 무신도 10폭 중 남신도(男神圖)가 6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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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제주도식 고인돌은 지석의 고임 상태와 매장 시설의 위치를 기준으로 여섯 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제1형식은 지석 없이 상석이 지표에 막 바로 닿는 개석식 또는 무지석식 고인돌이다. 제2형식은 남방식 유형에 속하나, 전형적인 남방식에 비해 지석 대부분을 제대로 다듬지 않은 할석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지석의 숫자는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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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여신이다. 제주도에는 설문대할망이 만들었다는 산·바다·섬·바위 등의 자연물이 많아서 제주도 전체가 설문대할망의 작품이라고 할 정도이다. 설문대할망 설화는 신이담(神異譚) 중에서 초인담(超人譚)에 속하며 거인(巨人) 설화로 분류된다. 오늘날 전해지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제주도민이라면 낯설지 않다. 그만큼 일반적이라 할 만한데, 그 주인공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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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의 북부 지역을 포괄하는 행정 구역.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의 실시로 이전의 제주시와 북제주군이 통합되어 제주도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제주(濟州)라는 명칭은 1223년(고종 10)경에 탐라군(郡)이 행정단위 개편으로 제주로 불려진 데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먼 바다를 건너가는 고을이라는 뜻이다. 제주시는 탐라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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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철기 시대는 크게 둘로 분류된다. 그것은 초기 철기 시대[청동기 시대 후기, 철기 시대 Ⅰ]와 원삼국 시대[철기 시대 Ⅱ, 삼국 시대 전기]로 구분된다. 초기 철기 시대는 기원전 3세기경 한반도와 중국 북방 지역과의 철기 문화 접촉에서 출발한다. 철기의 출현은 중국 하북성 북부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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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이후 지속적인 도로 확장과 병문천, 한천의 복개 공사로 용담1동의 지리적 변화는 급격했지만, 최근에는 일도 지구나, 연동 지구에 새로운 시가지들이 형성되면서 용담1동은 50년대에서 80년대 누렸던 호황은 가라앉고 한적한 분위기 속에 도심의 관문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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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 관음사 입구에서 한라산으로 이어진 등산로에 있는 계곡. 제주시 3대 하천의 하나인 한천의 상류로서 한라산 북면 가운데에 위치해 동·서로 나누어진 계곡이다. 동쪽 계곡에는 이끼폭포 등이 있어 그 신비함과 함께 장엄함을 간직하고 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계곡이라는 데서 유래한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한라산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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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육지 표면에서 일정한 물길을 형성하고 흘러가는 물줄기. 제주도 하천의 대부분은 한라산의 1,400~1,600m 지점에서 발원하여 방사상 모양으로 발달되어 있다. 이 지역의 하천은 화산 지형상의 특징과 하천 유로상에서 발달된 투수층, 하상에 발달한 주상 절리 등에 의하여 하수가 쉽게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에 대부분 물이 흐르지 않은 건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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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해방 후 해외 동포들의 귀국과 한국전쟁으로 피난민이 유입되고, 4·3(1947년 3월 1일~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으로 일어난 대규모 주민 학살) 의한 소개민의 이입 등 급격한 인구 증가로 새로운 도시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 때부터 용담동에서 먹돌새기 동네가 형성되고 촌락이 비대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제주시 승격 이후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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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향교와 서문시장, 용담1동 노인회, 용담1동사무소, 인근 식당가 등을 들르면서 필자는 용담1동이 용담2동, 용담3동과 함께 용담동으로 묶여 있었다는 이야기를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원래 1950년대까지는 지금처럼 용담1동에서부터 용담3동까지 나누어진 동이 아니었다고 한다. 때문에 용담1동의 설촌과 지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전체 용담동의 설촌 이야기부터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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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의 한천(漢川)에 있는 다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 죽성마을 남쪽의 한북리 마을에 있는 다리이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길이는 75m, 폭은 10m, 유효폭은 8.6m, 높이는 6m이다. 경간 구조는 5슬래브이며, 경간 수는 5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5.0m이다. 총 차선 수는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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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하여 용연으로 흐르는 하천. 한라산 정상에서 발원하여 용연으로 흐르는 한천의 상류 탐라계곡 일대에서 용출하는 용진각 물, 용진굴 물은 한라산 고지대의 대표적인 용천수이다. 한천의 상류 탐라계곡을 흐르면서 급경사의 하천을 극복하기 위하여 용암 폭포들이 발달해 있다. 특히 이끼폭포와 비단폭포는 장관이다. 방선문계곡의 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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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1동에 사는 김성원은 물이 귀한 제주에서 용담동은 제주시에서 유일하게 한천과 병문천이라는 두 개의 큰 하천을 끼고 있는 마을인 만큼 좋은 용천수를 많이 갖고 있었다고 한다. 김성원이 어렸을 적에는 용천수가 솟는 곳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었는데, 그 우물을 물지게로 떠다가 집 안의 독에 채워 넣고는 그것을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용담동 물 하면 ‘한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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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터. 해륜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억불 정책으로 쇠퇴를 거듭하다가 1702년(숙종 28)에 제주절제사 겸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이형상에 의해 훼철되었다. 이형상의 『남환박물(南宦博物)』에는 해륜사와 관련해 “주성(州城) 동쪽에 만수사(萬壽寺)가 있고 서쪽에 해륜사(海輪寺)가 있어서 각각 불상은 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