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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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지역에 세워진 10개의 국영 목장. 조선 정부는 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1429년(세종 11) 8월부터 이듬해 2월에 걸쳐 제주 지역에 중산간 초원 지대에 잣성을 새로 쌓거나 정비하고 그곳 120여 리에 10개의 목장을 조성하였다. 제주목 지역에는 1소장부터 6소장, 대정현 지역에는 7소장과 8소장, 그리고 정의현 지역에는 9소장과 10소장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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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마을. 17세기와 18세기 옛 지도에서 간다시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4~5세기에는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은 오늘날 민간에서 다시라 하고 병다동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후기 고지도에서 간다시 또는 간다시촌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원래 다시 또는 다시을이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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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 2동에 속하는 법정동. 도남동을 돌로리라고 하는데, 다른 마을에는 호열자가 번져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으나 이 동네만 ‘빼놓고[돌라 놓고]’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또한 제주성을 동·서로 가로 지르는 길이 있었는데 이 길 주위의 마을에 ‘道’ 자를 넣어 마을 이름을 만들었다고 하기도 한다. 즉 길의 남쪽이라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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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봉우리. 이 오름의 유래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오름이 지세로 보아 오등동 마을 쪽에서 이 오름까지는 능선으로 이어지면서 넓은 들판을 형성하고 있는데, '들판 위에 있는 오름'의 의미를 지녀 들리, 들위 오름으로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전 사면은 주로 소나무가 자라나고 있으며 그 틈새에는 자연림과 가시덤불도 뒤엉켜 있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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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제도종교에 비하여 성립 시기가 오래 되지 않은 종교 단체들. 탐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주민들의 정신세계는 대체로 무교신앙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제주도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 대상은 한라산신과 바다의 용왕(龍王)이었다. 무교신앙이 지배적이던 제주도에 새롭게 들어온 종교는 불교였다. 탐라국시대부터 절이 있었다는 설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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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군위 오씨(軍威吳氏)의 선조가 난산리에 살다가 5백년 전 이곳에 터를 잡으며 형성되었다고 한다. 군위 오씨 뒤를 이어 담양 전씨(潭陽全氏), 경주 김씨(慶州金氏)가 입촌하게 되었고, 아란 마을은 오랫동안 세 성씨의 집성촌이었다. 고종 을미년에 군위 오씨 일가와 거마에서 이주한 양씨가 대원 마을을 이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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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약 450년전 강씨와 부씨가 물 좋은 곳[알새미]을 찾아들면서 금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후 금천에 거주하던 남평 문씨가 약 330년 전에 아래쪽으로 거처를 옮겨 월두 마을을 형성하였고, 간월동[간드락]은 여씨 조상들이 부근에 거주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아라우, 아란동,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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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행정동. 남쪽의 한라산 정상부에서 길게 뻗어 북쪽으로 펼쳐진 지역이다. 아라(我羅)라는 말은 현재의 아라 1동 지역을 1700년대 아라위 또는 인다라라 불리운 것에 기원하며, 아라리(我羅里)는 『제주삼읍전도』에 표기된 이름으로 지금의 아라 1동과 아라 2동을 말한다. 아라위는 아라호의 변음으로 아라호의 뜻은 확실하지 않고 다만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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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애월읍 구엄리 68-2번지에서 제주시 봉개동 1330-2번지에 이르는 도로. 애조로는 도심과 간선 도로의 통행량을 분산시키기 위해 건립된 도로로 제주시 애월읍에서 신 제주와 구 제주를 우회하여 조천읍 신촌리까지 총 26.3km이며, 일부 구간은 2018년 완공을 목표로 2015년 현재 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제주시의 애월읍과 조천읍을 연결하는 도로라는 의미에서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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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제주 4·3 시기에 쌓은 석성. 오드싱성은 제주시 오등동 주민들이 제주 4·3 사건 당시 해안 마을로 소개되었다가 1951년 마을을 재건할 때 오등동 마을을 둘러싼 석성의 일부이다. 오드싱은 오등생의 토박이 지명으로, 『제주읍지』(1783년)에 ‘오등생리(吾登生里)’라 적혀 있다. 이승만 정부에 의해 제주도 중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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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두싱이 오름 아래가 되므로 오두싱이가 되었다가 뒤에 오등동이 되었다. 이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등생촌(五等生村) 또는 오등생촌(吾等生村), 오등생리(吾等生里)라 하다가 18세기에는 오등리(吾等里)로도 표기하였다. 본래 제주군[북제주군] 중면 지역으로 오드싱 또는 오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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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다시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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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고려 시대 사찰터. 오등동 사지는 예로부터 절왓, 또는 불탄터라고 구전되던 곳이다. 절에서 사용하던 샘물이라는 절새미와 과수원 일대에서 기와편은 물론 명문 기와도 출토되었다. 절터에는 배수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절터에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중기 사이에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시 오등동 일대에 위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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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오드싱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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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죽성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 제주 지역의 신당은 흔히 본향당, 일뤠당, 여드레당, 해신당으로 나누는데, 그 중 본향당은 마을 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성소로 마을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본향당 당신은 마을 공동체의 신인만큼 마을 사람 전체의 생명과 건강, 사업 번창 등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본래는 모든 자연마을마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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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속하는 법정동. 오라 2동은 사평마을, 연미 마을, 정실 마을, 동성 마을을 포함한다. 연미 마을은 약 300여 년 전 문(文)씨에 의해 설촌되었으나 빈번히 화재가 발생하여 당시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네에 판 큰 연못에서 연미라는 마을 이름이 연유한다. 정실 마을은 조선 선조 때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여기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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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 1동·오라 2동·오라 3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연동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시가지 중심 남쪽의 중산간 지대에 있다. 제주 종합 경기장과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을 위시한 도심과 공항 주변으로 연결되는 녹지 지대, 그리고 한라산 북사면으로 전개되는 넓은 지역을 포함하는 다양한 생산, 생활 환경 특성을 보인다. 오라동은 옛 마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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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의 병문천에 있는 다리.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오드싕오름을 오봉악(梧鳳岳)으로 바꾸어 부른 연유에서 오봉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길이는 20m, 폭은 10m, 유효폭은 8.6m, 높이는 5m이다. 경간 구조는 2단순 슬래브이며, 경간 수는 2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0.0m이다. 총 차선 수는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상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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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다리.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오등동과 장구왓을 연결하는 다리이기 때문에 각각 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부르게 되었다. 길이는 27m, 폭은 25m, 유효폭은 16m, 높이는 8.4m이다. 경간 수는 2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13.5m이다. 총 차선 수는 4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설계 하중은 DB-24t으로 1등교(等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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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마을. 오드싱이오름 아래가 되므로 마을 이름이 오두싱이, 오디싱이가 되었다. 오드싱이오름 일대에 형성된 마을을 오싕이라 하고 한자 차용표기로 오등생촌(五等生村·吾等生村) 또는 오등생리(五等生里·吾等生里) 등으로 표기하였다. 1914년에 오등리가 되었다가 1955년에 시가 되면서 오등동의 관할이 되었다. 지형은 그리 높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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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의 끝자락,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 용연을 만난다. 용연은 용두암에서는 약 200m 떨어진 한천 하류에 있는 맑은 못이다. 예부터 용궁의 사자들이 백록담으로 통하는 길이었다는 이 용연은 한라산 정상 백록담 북쪽에서 발원하여 오등동, 오라동을 거쳐 용담동의 동서한두기 사이의 바다와 이어지는 한천 하류로 전형적인 건천이지만, 사철 용천수가 풍부하고 만조시에는 해수가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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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대에 보급된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이르는 말. 조선왕조 5백여 년 동안 유교는 지배 이데올로기이자 생활 윤리로 자리 잡았지만, 제주 지역에서는 무속 신앙 때문에 좀처럼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이형상(李衡祥)[1653~1733] 같은 적극적인 제주목사들의 활동에 힘입어 지방 유림들은 점차 자신들의 위상을 확보해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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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남동을 관할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제주시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최근 구시가지의 팽창으로 새롭게 변모된 곳이다. 제주시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많이 위치하고 있어서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고, 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교통의 요지에 해당된다. 탐라국의 시조 삼신인(三神人)인 고을라(高乙那)·양을라(良乙那)·부을라(夫乙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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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인다마을에 있는 제주 4·3 시기에 쌓은 석성. 이승만 정부에 의해 내려진 제주도 중산간 마을 소개령으로 군경은 1948년 11월 중순경 아라동 주민들을 해안으로 내몬 뒤에 마을을 불태웠다. 해안 마을로 소개갔던 아라동 주민들은 1949년 5월 알인다 공터를 중심으로 석성을 쌓고 전략촌을 형성하여 살았다. 이때 아라 2구인 걸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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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 424-1번지에서 제주시 월평동 159번지에 이르는 도로. 제주 대학로는 제주 대학교 사거리에서 제주 대학교 입구를 거쳐 월평교 앞 교차로까지 이어지는 길이 1,929m의 도로이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가족과 연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한 도로이다. 제주 대학로는 아라 1동과 아라 2동 지역을 지난다. 제주 대학교로 진입하는 도로라는 지역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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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 한내에 있는 바위 문. 오등동과 오라2동의 경계 지점인 내(한내)에 있는 바위로 바위가 문처럼 뚫려있어 사람이 지나 다니게 되어 있다. 예로부터 들렁궤라고 하였는데, 들렁궤는 구멍이 뚫려서 들린 바위라는 뜻을 가진 제주어이다. 한자 차용 표기로는 거암곡(擧巖谷)[俗名들엄괴] 또는 등영구(登瀛邱) 등으로 표기하였다. 이 곳을 방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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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과거 행정 구역. 제주시의 과거 행정구역으로 1931년 제주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어 1955년 제주시로 승격되기 전까지 존속되었다. 본래 구한(九韓)의 하나로 탁라(乇羅), 또는 탐라(耽羅)·탐모라(耽毛羅) 등으로 불리었다. 고대 탐라국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1105년(숙종 10) 탁라를 고쳐 탐라군(耽羅郡)으로 하였다. 이후 1295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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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원불교당.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 출생한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믿음의 대상과 수양의 표본으로 삼아 1916년에 개창한 종교이다. 원불교의 이상은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하여 낙원 세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며, ‘Ο’을 상징으로 나타내어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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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라산 백록담에서 발원하여 용연으로 흐르는 하천. 한라산 정상에서 발원하여 용연으로 흐르는 한천의 상류 탐라계곡 일대에서 용출하는 용진각 물, 용진굴 물은 한라산 고지대의 대표적인 용천수이다. 한천의 상류 탐라계곡을 흐르면서 급경사의 하천을 극복하기 위하여 용암 폭포들이 발달해 있다. 특히 이끼폭포와 비단폭포는 장관이다. 방선문계곡의 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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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1동에 사는 김성원은 물이 귀한 제주에서 용담동은 제주시에서 유일하게 한천과 병문천이라는 두 개의 큰 하천을 끼고 있는 마을인 만큼 좋은 용천수를 많이 갖고 있었다고 한다. 김성원이 어렸을 적에는 용천수가 솟는 곳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었는데, 그 우물을 물지게로 떠다가 집 안의 독에 채워 넣고는 그것을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용담동 물 하면 ‘한두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