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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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 관아를 ‘영’이라 불렀고, 제주목 관아와 관덕정 사이에 있는 골목 일대를 ‘영뒷골’(영의 뒤쪽에 있는 골목이라는 뜻임)이라 한다. 처음에는 ‘영뒷골’에 살다가 태평양전쟁이 한참일 때 집을 지어서 이사했다. 김금심은 4·3 때 여중생이었고 북교 후문 전신전화국 사택 근처에 살았다. 그 당시 이 근처는 주택가가 아니었다. 묵은성에도 농사짓는 밭들이 있었다. 주로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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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동마다 청년회 및 바르게 살기운동협의회, 마을 운영회 등이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모임이나 조직들이 활성화되어 있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김성원은 몇 개의 조직과 친목에 참여하고 있는데, 바르게 살기운동협의회와 서사라 마을회를 비롯해 갑장 친목, 이웃 동네 친목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 중 서사라 마을회는 모여서 마을 청소도 하고 방범도 선다고 한다. 그 외 서문시장 상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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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집을 뒤로 하고 새로운 시장 건물 2층에 자리한 상인회 사무실을 찾았다. 그곳에서 김성원 상인회 회장을 만났다. 시장 상인들을 만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상인들이 ‘그렇게 서문시장에 대해서 듣고 싶으면 상인회 회장을 만나보라’고 권유를 했다. 마침 그때 지역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도 서문시장에 대한 이야기라면 김성원을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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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이 어렸을 때 사람들이 노동복으로 즐겨 입던 옷은 ‘갈중이’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노동복도 다양해졌지만, 예전에 제주 사람들은 입는 것에 그리 녹록치 않았다고 한다. 이 ‘갈중이’는 아직 익지 않은 감을 따서 빚은 다음 즙을 짜서 광목천에 들여 옷을 만든 것으로 파란 감물은 말릴수록 어두운 갈색으로 변하는데, 감이 갖고 있는 성분 때문인지, 땀을 자주 식혀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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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이 27살 때(1967년) 누이동생이 인근 편물점에 편물 기술자로 있는 현재의 부인(당시 22살)을 소개시켜 주어 혼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부인은 당시 용담동 인근의 편물점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김성원이 혼인할 당시 남자 나이 스물일곱은 혼례 치르기에 다소 늦은 나이였다. 친구들은 거의 장가를 간 때였다고 한다. 스물다섯만 되면 부모들이 장가를 보내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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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은 오현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일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제주 시내에는 신통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육지로 일자리를 찾아 출도했다고 한다. 작은 형도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 1960년대에는 제주에서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 육지로 취업하기 위해 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제주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학교를 중퇴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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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마을. 지형이 달과 비슷한 형국 또는 달이 뜨는 모습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과 또는 달이 뜨는 모습이 잘 보일 만큼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주향교 북쪽에 동~서로 난 옛날의 구 한질을 이르는 동네로서 제주성의 서문 밖에 부러릿질 서쪽 길가와 개물동산 남쪽의 비석거리를 말한다. 또는, 동북쪽 방향의 골목길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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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행해지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상업의 의미는 경제의 발전과 함께 변화해왔다. 넓은 뜻의 상업은 생산에서부터 소비자에게 상품의 사회적 배급, 생산 및 소비의 지도, 가격의 조정, 배급 활동을 효율화하기 위한 촉진적 보조 활동 등을 포함한다. 또한 생산·유통·소비라는 경제순환의 한 과정인 사회경제현상을 일컫는다. 좁은 뜻의 상업은 물품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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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1동 인근 사람들에게 용담1동에서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을 물어보면 향교와 용연 그리고 서문시장을 꼽았다. 이 곳 중에서 사람냄새 나는 서문시장은 어떨까 싶어 발길을 돌렸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현대화’라는 명목 아래 시장은 일목요연한 형태로 정리가 되어있었고, 새롭게 지어진 시장 건물과 기존 상가들이 어우러져 판을 벌이고 있었다. 새롭게 지어진 시장 건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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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상설시장. 서문공설시장은 제주시의 구도심권에 속해 있지만 지형적 조건이 동문공설시장과는 달리 협소하고 계속되는 제주시 도심 인구의 유출로 인해 성장 잠재력에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최근 경기 침체와 시설 노후·교통 불편·대형 할인 매장의 등장으로 그 기능과 규모가 현저히 축소되고 있다. 서문공설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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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교환·거래하는 장소. 제주 지역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육지 상업 시설의 복구, 상품 생산의 증가, 교통의 발달 등으로 유통망이 새로이 구축되었고 이에 따라 제주 지역에도 동문시장, 서문시장 등 상설 시장이 개설되었다. 특히 동문시장은 당시 제주 읍내 중심지에 위치하여 제주의 관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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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년과의 이야기는 용담동 옛 지경들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신옥년의 기억을 빌리자면 해방 후까지 용담동에는 집들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간간히 한천까지 이어지는 길가에 상점들만이 있었다고 한다. 현 서문시장 인근에도 집이 거의 없었고, 서문시장 위로는 거의 소나무밭이었는데, 시신을 묻는 묘지들이 그곳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한두기 근처나 부러리 근처 서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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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에서 20여 분을 승용차로 달려 제주시의 시내 중심가로 진입하려는 길목에 용담동이 있다. 용담동은 현재 전체 세 개의 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주국제공항에서 제주 시내로 가는 동안 용담3동, 용담2동, 용담1동을 거치게 된다. 제주 시내 중심가라 일컬어지는 ‘중앙로’와 가장 가까이 인접한 곳이 용담1동이다. 용담1동은 다른 동과 달리 오름이나 산이 없이 평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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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끼고 있는 만큼 용담1동의 어업 활동도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용담동 사람들은 한두기 포구와 다끄내 포구를 이용해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를 했다고 한다. 김성원에 의하면 한두기 어부들은 제주의 다른 지역과 달리 농사와 뱃일을 겸업하지 않았다고 한다. 해녀들도 있었는데, 용두암 근처에서 물질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물질을 했던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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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은 용담동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용담1동, 2동 구분을 잘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1동에 살던지 2동에 살던지 간에 모두 용담동 사람들이라는 한묶음으로 그들을 엮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인 즉 오히려 행정적 구분을 짓고 인구수를 동별로 추정하는 것은 일련의 식자층들이란다. 실제로 제주시 주민들은 모두 용담을 하나같이 인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용담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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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향교와 서문시장, 용담1동 노인회, 용담1동사무소, 인근 식당가 등을 들르면서 필자는 용담1동이 용담2동, 용담3동과 함께 용담동으로 묶여 있었다는 이야기를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원래 1950년대까지는 지금처럼 용담1동에서부터 용담3동까지 나누어진 동이 아니었다고 한다. 때문에 용담1동의 설촌과 지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전체 용담동의 설촌 이야기부터 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