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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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입동 해녀탈의실은 서부두수협직판장 뒷골목 허름한 창고 이층에 있다. 이렇다 할 간판이나 표지판 같은 것은 없다. 2층으로 올라가면 두 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샤워장이고 다른 하나는 휴게실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샤워실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 개인용품을 둘 수 있는 사물함과 책상 하나가 놓여 있는 휴게실이 있다. 책상위에는 전화가 놓여 있고 사물함은 한 20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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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열이 한림읍 금릉에 살 때에는 마당은 아주 넓었고 방 2개, 마루, 부엌, 고팡이 있는 초가집이었다. 남편이 죽고 어린 자식들을 키우면서 물질을 하여 번 돈으로 1984년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샀다. 고시열이 집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지어진 집을 샀다고 했다. 처음 이사할 당시에는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가 이사를 가고 5일장이 그 자리에 생긴다고 했었다. 5일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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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열은 14살에 약혼해서 1948년 음력 12월 27일 16살에 결혼을 했다. 시집도 금릉에 동네에서 결혼했다. 남편 이름은 이두행이고 두 살 위였다.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어머니 살아계실 때 시어머니가 동네에서 오고 가며 보고는 고시열을 착하고 예쁘다고 며느리 삼겠다고 했다. 어른들끼리 와서 술 한 잔 하면서 사돈하자고, 결혼 시키자고 얘기 한 것이 약혼이었다.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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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직업이라는 게 남들은 천하다고 하지만 자본 안 들어서 돈 벌어 살 수 있다면서 남편이 죽고 아이들 다 키운 것이 해녀 직업이라고 해녀 일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남편이 죽고 본격적으로 서부두에서 물질을 다시 시작했을 때도 물론 상군 노릇을 했다. 탑동에서는 천추(우미)가 많이 나왔었다. 옛날에는 미역과 우미가 주로 작업 대상이었고 20여 년 전부터 소라도 수출이 되고, 횟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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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행정리. 옛 이름은 베렝이다. 베렝이는 벌레의 뜻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마을 안에 있는 속칭 금동산이라는 이름에서 따와 배령리(盃令里)라 하였다고도 한다. 1002년 전 비양도가 용출하기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용출에 따른 침수로 주민들이 전멸한 뒤 새로이 거주가 시작되었다. 18세기 중후반까지는 행정 단위의 마을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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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태극도에서 갈라져 나온 신종교 단체. 태극도(太極道)에서 갈라져 나온 박한경(朴漢慶)은 1969년 6월 서울의 성동구 중곡동에 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였는데, 증산교 계통 가운데 전국적으로 가장 신도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신앙의 대상은 구천상제(九天上帝) 즉 강증산이며, 무자기(無自欺, 정신개벽), 지상 신선 실현, 지상 천국 건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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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제도종교에 비하여 성립 시기가 오래 되지 않은 종교 단체들. 탐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주민들의 정신세계는 대체로 무교신앙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제주도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 대상은 한라산신과 바다의 용왕(龍王)이었다. 무교신앙이 지배적이던 제주도에 새롭게 들어온 종교는 불교였다. 탐라국시대부터 절이 있었다는 설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