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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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인조 15) 조선 15대 국왕인 광해군이 폐위되어 제주로 유배된 사건. 1575년(선조 8) 선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조선의 제15대 국왕이 되었다. 1623년 3월 13일에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태안으로 이배되었다가 다시 강화도로 옮겨졌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637년(인조 15)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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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중기 광해군의 적소로 전해져 온 터. 광해군은 조선조 15대 임금으로, 재위 15년인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광해군으로 강봉되었다. 강화도에 잠시 유배된 뒤 1637년(인조 15) 5월에 제주도로 이배되었다. 광해군이 위리안치되었던 곳은 서성 안이라는 설과 남성 안이라는 설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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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정(士精), 호는 남봉(南峰) 또는 심곡(深谷). 아버지는 부사 김시회(金時晦)이며, 영의정에 추층된 김시민(金時敏)[1554~1592]에게 입양되었다. 1597년(선조 30)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세자시강원설서를 거쳐 1608년(선조 41)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사가독서(賜暇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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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인물. 1613년(광해군 5) 인목대비의 부친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한다는 무고를 받고 역모죄로 사사(賜死)되었으며, 3년 후인 1616년(광해군 8) 부관참시되었다. 김제남의 아들 김래·김규·김선도 목숨을 잃었다. 김제남의 가족 중 손자 김천석(金天錫)과 노씨부인만 화를 면하였다. 그러나 1616년(광해군 8)에 유생 이공헌·박몽준 등이 노씨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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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시행되는 민사, 형사 및 행정 사건의 재판권 행사에 관한 모든 제도. 좁은 의미의 사법은 재판 작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민사·형사 및 행정 사건 등의 재판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소송 절차를 거쳐 어떻게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선언하는 국가의 행위이며, 대립하는 양 당사자의 주장을 들어보고 공평한 제3자의 지위에서 국가가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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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출신의 내의원 의녀. 조선시대 의녀는 1406년(태종 6)에 창설될 때부터 주로 부인병의 치료와 침구술을 겸행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제생원에서 양성하였으나 그 후 제생원이 혜민서에 병합되면서 그 임무는 내의원과 혜민서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그 후 성종 말기부터 연산군 때에 이르러 의녀들은 의서를 습독하는 것 이외에 가무를 배우며 화장을 하여 기녀들과 함께 공적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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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정의현감과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602년(선조 35) 12월 이연경(李延慶)의 후임으로 정의현감에 부임하여 1605년(선조 38) 4월까지 재임하였다. 광해군 때 이이첨(李爾瞻)[1560~1623] 등과 결탁하여 광해군의 총애를 받았으며, 1619년(광해군 11) 10월 홍걸(洪傑)[?~1619]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 재임 중 탐학이 극도로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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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역사. 제주도는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한반도 남쪽을 거쳐 일본 큐슈[九州]로 이어지는 해상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 동남아 지역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중도 기항지가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과거 유물·유적의 분포지가 대부분 제주도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나 한반도로부터의 선진문물의 유입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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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행정리. 옛 이름은 용소 또는 용못이다. 용당은 한자 뜻 그대로 용못이라는 데서 붙여졌다. 1600년 조선 광해군 때 속칭 산밭승물 이라는 곳에 7호가 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말 이전에는 두모리에 속했으나, 19세기 말부터 용수리에 속하였다. 1963년 한림면 용수리의 일부를 갈라 용당리라 하여 한경면에 편입되었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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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어온 사람들이 겪은 일과 감정 등을 문학화한 작품. 제주도는 절해 고도로서 환해성·격절성·협소성을 지니고 있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제주 유배 문학은 대부분 조선 시대에 제주도에서 유형을 받은 지식인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따라서 제주 유배 문학이란 조선 시대의 시대적·정치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유형수로서 원악지인 제주도에 유배되어 겪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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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죄를 지어 그 형벌로 제주 지역으로 귀양 왔던 사람들. 유배는 오형(五刑) 가운데 하나로 죄인을 귀양 보내던 형벌인데, 유배인을 귀양 보낼 때는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원근(遠近)의 등급이 있었다. 제주도는 조선왕조 500년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귀양살이 했던 곳이다. 조선시대는 왕족이나 중신 그 누구를 막론하고 왕명을 거역하거나 정사에 과실이 있을 경우, 그 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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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된 왕족. 본관은 전주. 자는 자강(子强), 호는 규창(葵窓). 할아버지는 선조, 아버지는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이며, 어머니는 윤휘(尹暉)의 딸이다. 부인은 풍산심씨이다. 아버지 인성군은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위를 적극 지지한 바 있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반정공신 이귀(李貴)가 인성군이 광해군 복위를 모의하고 있다고 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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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대정현감·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1622년(광해군 14)에 함경북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부임할 때 친분이 있던 신경유(申景𥙿)[1581~1633]의 권유로 광해군[1575~1642]을 축출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계획에 가담하여, 1623년(광해군 15) 3월에 일어난 인조반정 때 큰 공을 세웠다. 인조반정 후 정사공신 2등에 녹훈되어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가 평안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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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도 보성군수를 역임하고, 1586년(선조 19) 5월 전라도 부안현감으로 부임하여 1588년(선조 21) 3월 암행어사에 의해 파직되었다. 1610년(광해군 1) 2월 변양걸(邊良傑)의 후임으로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류큐국[琉球國] 왕자가 항해하던 중 제주에 표착하였다. 이기빈은 제주판관 문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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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명(系明), 호는 서봉(西峰), 시호는 충정(忠靖). 아버지는 연평부원군 이귀(李貴)[1557~1633]이며, 영의정 이시백(李時白)[1581~1660]의 아우이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아버지와 함께 가담하여 정사공신 2등으로 연성군(延城君)에 봉해졌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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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선조의 왕자 인성군 가족이 제주로 유배되어온 사건. 1628년 모반의 혐의로 선조의 일곱 번째 아들인 인성군이 진도로 유배당한 뒤 죽고, 부인 윤씨와 아들 삼형제, 두 딸은 제주도로 유배당한 사건이다. 인성군은 선조의 일곱 번째 왕자이다. 정빈 민씨의 소생으로서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선조의 사랑을 받았다. 12세에 인성군에 책봉되었고, 커서는 사옹원과 종부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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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제주도에 들어와서 정착한 최초의 동일 성씨 선조. 제주의 토착 성씨인 고씨·부씨·양씨를 제외하면 제주의 성씨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건너온 성씨들이다. 이들이 어떠한 이유로 제주에 들어와 정착했든 그 후손들은 제주에 최초로 정착한 선조를 입도조라 칭하였다. ○ 제주입도조 가운데는 유배된 사람들이 많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조선 개국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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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도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아버지는 정유명(鄭惟明)이며, 어머니는 장사랑 강근우(姜謹友)의 딸이다. 1601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임명되었다. 1610년(광해군 2) 별시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광해군 때 영창대군이 강화부사 정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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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행정·군정 실무를 담당한 종5품 관직. 판관은 중앙의 상서원·내자시·군자감 등 17개 관청에, 지방에는 각 도·유수부·대도호부·목·도호부에 설치되어 있었다. 지방에 설치된 판관은 지방 장관을 보좌하는 일종의 부관(副官)으로 지방 장관을 도와 행정·군정에 참여하였다. 제주 지역의 경우, 제주 목사가 제주도의 실질적인 책임자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정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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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제주의 역사. . 조선 시대 제주는 독립성을 상실한 채 중앙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제주는 말의 특산지로 부각되면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중앙 정부에 의해 과중한 경제적 수탈이 이루어졌다. 특히 제주도 중산간 지역을 목장으로 만들어 개간을 금지했기 때문에 제주인들은 해변 지역의 일부 땅만을 이용해 농사를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