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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256
한자 朝天鎭城
영어음역 Jocheonjinseong
영어의미역 Jocheonjin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690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명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5년 3월 25일연표보기 - 조천진성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조천진성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성곽
양식 타원형 석축
건립시기/연도 1590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이옥후|서만일
높이 2.2~4.3m
둘레 128m
깊이 2,545㎡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690 지도보기
소유자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조선 중기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 시설.

[개설]

조천진은 9개 진(鎭)의 외곽을 빙 둘러서 축조한 성곽 중 하나이다. 조천(朝天)은 조선 초기부터 조천방호소와 조천포수전소가 있던 방어의 요충지였는데, 처음 축조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선조 때 개축하였다.

고서의 기록을 통해 조천은 천자의 나라에 조회하러 나간다는 의미로 왕명을 받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고,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풍향을 관측하는 곳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건립경위]

조천진성이 처음 축조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천진은 조선 초기부터 방어의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거기에다 육지에서 온 경래관의 출입이 잦았던 포구였다. 이에 따라 절제사 이옥후는 1590년(선조 23) 전 부장 서만일을 통해 성곽 일부를 개축하도록 했다고 나와 있다.

결국 조천진성은 1590년 이전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개축하면서 동북쪽으로 확장하였고, 성 내의 건물도 축조하는 등 재정비했다. 조천진성의 규모는 둘레가 430척, 높이가 10척이다.

[위치]

조천리 일주 도로에서 북쪽으로 약 300m를 가다 보면 비석거리가 나오고 다시 100m를 가면 포구와 접하여 연북정조천진성이 위치하고 있다. 지리적 위치는 동경 126° 38′, 북위 33° 32′에 해당된다.

[관련기록]

이원진『탐라지(耽羅誌)』에 의하면 “교수(敎授) 곽기수(郭期壽) 중창기에 관(館)은 탁라의 동쪽 25리의 포구에 있는데,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풍향을 관측하는 곳이다. 조천이라는 이름도 이러한 까닭이다.

절제사 이옥후(李沃候)가 부임한 다음 해인 경인년에 막부 제공과 협의한 후, 아전과 주민에게 ‘조천에 관을 둔 것은 이곳이 실로 도적들이 왕래하는 길목을 지키는 요충지이며, 왕명을 받는 곳이기 때문인데, 이같이 성이 좁고 집은 노후할 수 있는가. 농사짓는 틈틈이 개축하여 화려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자 모두 옳다고 하였다.

이에 휘하에 있는 전 부장 서만일(徐萬鎰)이 주관하여 애를 쓰니 10월에 착공하여 섣달에 마쳤다. 성은 동북쪽으로 물러서 쌓고 그 위에 다락을 안치하여 쌍벽이라 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밖에도 조천진성에 대한 기록은 고서에 군데군데 나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38권에는 제주목 관방에 조천관방호소의 소재에 대해 기록되어 있고, 『남사록(南槎錄)』에는 조천성 둘레와 높이 등 규모와 형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밖에 『제주순무어사서계(濟州巡撫御使書啓)』, 『탐영방영총람(耽營防營摠覽)』 등에도 조천진에 대한 기록이 있다.

[형태]

조천진성은 해발 1~2m의 완만한 경사면,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진성의 북측은 해안에 접해 있고, 진성의 둘레는 128m이다. 조천진성은 대부분이 원형으로 남아 있다. 남측 성벽 위에는 북녘의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의 정을 사모한다는 연북정(戀北停)이 있다.

성문은 동문지가 있고, 성곽의 외벽 높이는 2.2~4.3m, 상부 폭이 1.6~3.1m이다. 진성의 축조 방식은 제주도 현무암을 거칠게 다듬어 허튼층쌓기로 협축하여 축조했으며, 외벽의 기울기는 거의 직성형 성벽으로 단경사를 이루고 있다.

1702년(숙종 28) 제주 목사 이형상조천진성을 순력할 때 그린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조천조점」에는 진성 가운데 연북정·군기고 등 5개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연북정을 제외한 당시 건물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제주도의 진성 중 조선 중기 이후에 축조된 전형적인 형태이다. 성곽의 형태가 대부분 잘 보존되어 조선 시대 제주도의 관방 시설 연구에 귀중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특히 진성의 남측 성벽 위에는 북녘의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의 정을 사모한다는 연북정이 있다. 2015년 3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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