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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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麗水興國寺大雄殿 |
영어의미역 | Daeungjeon Hall of Heungguk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최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9월 2일 - 여수 흥국사 대웅전 보물 제39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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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여수 흥국사 대웅전 보물 재지정 |
성격 | 불전 |
양식 | 다포양식 |
건립시기/일시 | 1195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3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
소유자 | 흥국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에 있는 조선 중기 불전.
[개설]
대웅전은 1624년(인조 2) 계특대사(戒特大師)가 절을 고쳐 세울 때 다시 지은 건물로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절의 중심 법당이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사찰에서 가장 많이 조성된 불전(佛典) 가운데 하나이다.
법화경사상(法華經思想)을 배경으로 조성된 사찰에서는 교주인 석가모니를 대웅세존(大雄世尊) 또는 대웅맹세존(大雄猛世尊)으로 지칭하고 이 석가모니를 봉안한 전각을 대웅전(大雄殿), 또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했다. 그래서 이 대웅전에는 반드시 석가부처 상과 영취산 정상에서 설법한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봉안하는 것이 원칙이다.
[변천]
여수 흥국사 대웅전은 고려시대인 1195년(명종 25)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선시대인 1560년(명종 15)에 법수대사(法修大師)가 중창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의승병의 주둔지와 승병 훈련소로서 호남지방 의병·승병 항쟁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법당과 요사가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후 1624년(인조 2)에 계특대사(戒特大師)가 건물을 삼창하였으나 너무 비좁아 1690년(숙종 16) 통일대사(通日大師)가 개조하여 4창하였다. 1962년 9월 2일 보물 제396호로 지정되고 1985년 명선에 의해 해체 복원되었다. 2008년 대웅전 백의관음벽화 보수작업이 이루어지고 2013년~2014년에 대웅전 단청모사 사업이 있었다.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명성에 의해 대웅전 보수작업을 하면서 후불탱화보전처리를 같이 하였다. 2018년 대웅전 방충사업을 마무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1년 11월 19일엔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처마는 원형 연목과 방형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다. 지붕의 용마루는 호형이며 처마는 수평으로 흐르다가 전각부에서 살짝 반전하는 처마곡선을 표현하였다. 처마의 네 모서리에는 활주를 세웠다.
기둥 사이에 포를 3구씩 배치하여 화려한 느낌을 준다. 정면 3칸은 기둥 사이를 같은 간격으로 분할하고 각각 4분합(四分閤)의 빗살문을 달아 전부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빗살문은 상부를 구분하여 교창(交窓) 모양으로 의장하여 문짝의 키와 주고(柱高)가 높이 있다. 공포(栱包)의 구성은 내외삼출목(內外三出目)이다. 내부의 첨차(檐遮)는 원호곡선이 짧으며 대들보 위에는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정방형의 초석(礎石)위에 기둥은 배흘림의 둥근 원주(圓柱)를 세워 마당에서 보면 고대(高大)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기둥 위로는 창방(唱榜)과 평방(平枋)이 연결되고 그 뒤에 주두(柱頭)와 공포가 결구(結構)되는데 외3출목(外三出目), 내4출목(內四出目)이며 간결한 첨차와 그 사이로 돌출한 앙서와 수서가 있다. 각 주간(株間) 사이로는 공간포(空間包) 삼구(三具)씩을 배치하여 건물 전체의 분위기는 화려한 편이다.
단층기단(單層基壇)은 긴 장대석(長臺石)으로 바른 층 쌓기를 하여 그 위에 갑석(甲石)을 깔았다. 특히 대웅전이 반야용선(般若龍船)을 상징하므로 그 기단은 바다를 상징해서 거북, 게, 해초를 조각하였다. 정면 계단 양편에는 용과 거북을 조각하여 호위하는 형태를 취했다.
내부 중앙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하여 좌우에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셨다. 고주 후벽에는 토벽에다 한지를 바른 후 백의관음보살상을 그려 모셨다. 안쪽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꾸몄고, 건물의 내부에는 모두 우물마루를 짜고 중앙 뒤쪽으로 불단(佛壇)을 놓아 석가삼존(釋迦三尊)을 봉안(奉安)하였다.
불상이 앉아 있는 자리를 더욱 엄숙하게 꾸민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놓았다. 불상 뒷면에는 1693년(숙종 19)에 그린 ‘영산회상도(보물 제578호)’가 있다. 기둥에는 약간의 배흘림이 있고 그 위로는 평방과 창방을 돌려 내외3출목, 다포양식의 포작(包作)을 짰고 건물의 네 귀퉁이에는 활주(活柱)로 추녀를 받쳤다.
공포벽 내외에는 별지화로 각종의 원불을 그렸다 내벽의 원불에는 그 곁에 작은 글씨로 '○○비구'라고 쓰여 있다. 이들은 이 사찰을 조성한 41분의 스님들의 이름이다. 이중 뇌현은 안정복이 도일할 때 동행한 승려이다.
대웅전 내부 고주(高柱) 후벽에는 흙벽에 한지를 덧붙여 특이하게 반가사유(半迦思惟)의 백의관음(白衣觀音) 벽화를 모셔 놓았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정면 3칸은 기둥 사이를 같은 간격으로 분할하고 각각 사분합(四分閤)의 빗살과 ‘井’ 자의 복합문을 달았다. 문 하단부 판막 부분과 창살 부분을 분리하여 창살 부분만 열게 한 것이 특징이다.
빗살문은 상부를 구분하여 교창(交窓)모양으로 의장(意匠)하였으므로 문짝의 키가 높으며 주고(柱高)도 높이 잡아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내부의 대들보 위에는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는데 첨차형식은 교두식(翹頭式)이며 원호곡선(圓弧曲線)을 비교적 짧게 처리하였다.
[의의와 평가]
여수 흥국사 대웅전은 석가불상을 모신 조선시대 수많은 대웅전 가운데 유난히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대웅전 건물은 조선 중기 이후에 흔히 볼 수 있는 다포집 양식으로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같은 양식을 가진 건물에 비해 짜임이 화려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며,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