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006 |
---|---|
한자 | 崔尙重 |
영어음역 | Choe Sangjung |
이칭/별칭 | 여후,미능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성미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여후(汝厚), 호는 미능재(未能齋). 영의정 최항(崔恒)의 6세손이며, 어모장군(禦侮將軍) 최영(崔穎)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최상중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에게 사사했다. 1576년(선조 9)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해, 1589년(선조 22)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한림(翰林)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高敬命)의 막하에서 모량유사로 활약했다. 이후 원수 권율(權慄)이 문무를 겸한 그의 재주를 아껴 조정에 청하여 종사관(從事官)을 삼았다.
1602년(선조 35)에 사간(司諫)을 마지막으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 율곡 이이(李珥)가 소인배들의 모함을 받았을 때 그가 유생(儒生)을 인솔하여 항장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도승지(都承旨)에 추증되었고, 다시 아들 최연(崔葕)의 공으로 대사헌(大司憲)에 가증(加贈)되어 남원의 노봉서원(露峰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