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6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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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母山縣 |
영어음역 | Mosanhyeon |
이칭/별칭 | 운봉,운봉고원,하영성,하막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최윤진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일대의 신라 때 행정구역.
[개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비롯된 남원에 신라의 모산현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기록은 『고려사』 「지리지」, 그리고 조선 후기인 1864년 김정호가 쓴 『대동지지』까지도 동일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다른 기록이다. 삼국시대 초기부터 남원시와 남원군의 일부 지역이 신라의 땅이었다는 기록은 사실이 아님은 다음의 근거를 통해 알 수 있다.
[명칭유래]
모산현은 신라가 남원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게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원이 두 땅으로 나뉘어 한쪽은 백제의 고룡군(古龍郡)과 거사물현(居斯勿縣)이 설치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신라 땅으로 모산현이 설치되어 있다고 『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신라는 555년(진흥왕 16)에 비사벌(比斯伐)[현 경남 창녕]에 지방 상주 군단인 정(停)을 두어 주(州)로 삼고, 557년에는 사벌(沙伐)[현 경북 상주]에 있던 주를 감문(甘文)[현 경북 김천군 개녕]으로 옮겨 대가야(大伽耶)[현 경북 고령]를 압박하다가, 562년에 대가야를 침공하여 멸망시켰다. 그뒤 565년에 비사벌에 있던 주를 대가야로 옮겨 대야주(大耶州)로 삼았다.
이 대야주를 발판으로 신라는 거창군, 함양군 등 경남 서부 지방을 침공해 들어갔다. 신라는 565년경 소백산맥을 넘어 남원의 운봉지역을 점령해 모산현을 설치하였다고 추정된다.
백제가 602년(무왕 3)에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일명 母山城]을 포위하여 공격했다는 기록은, 서기 600년 무렵까지 운봉지역이 신라의 영토였음을 알려준다. 당시 백제는 이 싸움에서 참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무렵 백제와 신라는 운봉과 남원 사이의 산줄기를 경계로 대치했던 모양이다.
백제는 616년(무왕 17)에 신라의 모산현을 공격해 운봉지역을 탈환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가 624년(무왕 25)에 함양, 산청 방면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은 운봉지역이 서기 624년 무렵에는 백제의 영토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삼국시대에 운봉지역은 약 2,30년 동안 신라에 편입되었으며 모산현이라는 신라의 행정구역이 설치되었다고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는 운봉현(雲峰縣)으로 개명하고 천령군(天嶺郡)[현 경남 함양군]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 운봉현은 남원부에 속하게 되었고, 조선 말기인 1895년(고종 32)에 운봉군으로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운봉군은 남원군(南原郡)에 통합되어 운봉면이라고 하였으며 1995년에 운봉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