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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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北國時代 |
영어음역 | Nambukguk sidae |
영어의미역 | Period of Southern and Northern Kingdoms |
이칭/별칭 | 통일신라시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통일신라와 발해가 병존한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전반의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역사.
[개설]
남북국시대는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뒤 신라와 발해가 대립하던 시기부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서기 936년까지를 의미한다. 신라가 백제를 병합(936)하면서 남원 지역은 신라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신라에서는 백제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조치의 하나로 685년(신문왕 5)에 남원에 소경(小京)을 설치하고 여러 주(州)와 군(郡)의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였다. 그리고 691년에는 남원성을 쌓았다. 이때 쌓은 남원성이 지금의 어느 곳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남원읍 성터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남원「고적조」에는 당(唐)의 유인궤(劉仁軌)가 남원에 정전법(井田法)을 썼으며,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평양이나 경주와 마찬가지로 조방제(條坊制)의 흔적으로 여겨진다.
한편, 838년에는 김양(金陽)이 김우징(金祐徵)과 연합하여 장보고(張保皐) 군과 함께 무주(武州)[지금의 광주광역시]를 점령하고, 남원에 이르러 신라군과 싸워 크게 승리하기도 하였다. 그 뒤 남원은 광주에서 자립하여 전주에 도읍을 정한 견훤의 후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었으나, 936년에 후백제가 고려에 점령됨으로써 고려에 편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