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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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城誌- |
영어음역 | Yongseongji |
영어의미역 | Geographical Document of Yongse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호석 |
성격 | 읍지|지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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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이구징|방두천 |
편자 | 이도|최여천 |
저술연도/일시 | 연대 미상[1752년 이후] |
편찬연도/일시 | 연대 미상[1752년 이후] |
간행연도/일시 | 연대 미상[1752년 이후] |
권수 | 11권 |
책수 | 2책 |
사용활자 | 목활자본 |
표제 | 龍城誌 |
소장처 | 전주향교 |
소장처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26-3[향교길 139] |
[정의]
조선 후기 이도(李燾)와 최여천(崔與天)이 편찬한 전라도 남원읍지(邑誌)의 증보판.
[개설]
1699년에 이도와 최여천이 편찬한 『용성지』에 보유(補遺)편을 추가하여 1725년 이후에 다시 편찬한 것이다. 방두천(房斗天)이 발문을 지었으나, 보유편을 누가 짓고, 언제 누가 편찬하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편찬/발간경위]
『용성지』는 남원부사로 부임한 이구징(李耈徵)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내용을 신증(新增)하라는 조정의 명을 받아 이도와 최여천을 시켜 1699년에 편찬한 구지(舊誌)를 저본(底本)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이 책의 편찬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책의 내용 가운데 1752년에 쓴 『남원복호사적(南原復號事蹟)』이 들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무렵이 아닌가 추정된다.
[서지적 상황]
18세기 후반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는 『용성지』의 목활자본은 남원향교에 보관되어 있으며, 아마 이것의 필사본으로 추정되는 책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그 뒤 1923년에 와서 이병혁(李秉爀)이 동향인인 김교우(金敎友)·황도현(黃道顯)·최병우(崔炳祐) 등과 함께 1699년의 구지에 속지(續誌)를 첨가하여 『용성속지』를 편찬하였다.
[형태]
11권 2책의 필사본이다.
[구성/내용]
내용은 건(乾)·곤(坤) 2책 11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편목은 다음과 같다. 권 1에는 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강계(疆界)·방명(坊名)·성씨(姓氏)·풍속(風俗)·형승(形勝)·산천(山川)·토산(土産)을 다루고 있다.
권 2에서는 성곽(城郭)·관우(館宇)·누정(樓亭)을, 권 3에서는 학교(學校)·서원(書院)·공서(公署)·교방(敎坊)·좌영(左營)·역원(驛院)을, 권 4에서는 교량(橋梁)·진강(津舡)·장시(場市)·사묘(祠廟)·불우(佛宇)·총묘(塚墓)·제언(堤堰)·명환(名宦)·관안(官案)·좌영관안(左營官案)·오수찰방관안(獒樹察訪官案)을 기술하고 있다.
권 5에는 인물(人物)·우거(寓居)·명현(名賢)·유일(遺逸)을, 권6에는 효자(孝子)·효녀(孝女)·효부(孝婦)·열녀(烈女)를, 권 7에는 충신(忠臣)·문과(文科)·음사(蔭仕)·무과사(武科仕)·무과(武科)·남무(南武)·생원(生員)·진사(進士)·호액(戶額)·전안(田案)·재곡(財穀)·공부(貢賦)·진상(進上)·병안(兵案)·이안(吏案)·천안(賤案)·공장(工匠)·서판(書板)을 기술하고 있다. 권 8과 권 9에는 제영(題詠)을, 권 10은 기문(記文)을, 권 11은 기문(記文)과 보유발문(補遺跋文)이 있다.
[의의와 평가]
『용성지』는 구지와 신증편을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구지의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내용과 거의 같으며, 신증의 내용은 구지 발간 이후의 사적들을 첨가한 것이다.
특히 인물편이 대폭 첨가되어 향촌사회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사적이 효자부터 진사에 이르기까지 서술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호남읍지(湖南邑誌)』 소재의 다른 읍지와 비교하더라도 그 내용이 매우 충실한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