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059 |
---|---|
한자 | 李範稷 |
영어음역 | Yi Beomjik |
이칭/별칭 | 보경(寶卿),조은(釣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보경(寶卿), 호는 조은(釣隱).
[활동 사항]
이범직(李範稷)[1868~1896]은 단발령 이후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에서 간부로 활동하다가 순국한 ‘육의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대로 집안이 가난하여 몸소 농사를 지어 생활하였는데, 뒤늦게 뜻한 바가 있어 유중교(柳重敎)의 제자가 되었다. 을미 왜변 이후, 강원관찰사 민형식을 찾아가 의병을 일으킬 것을 종용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단발령 이후 의병 봉기를 주장하였다.
이춘영(李春永)과 안승우(安承禹) 등이 먼저 지평의 포군들을 기반으로 의병을 일으키자 적극 참여하여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하는 의진에 가담하였다. 단양의 장회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후에 유인석(柳麟錫)이 대장으로 추대되자 호좌의진의 소모장을 맡아 천안·목천 등 충청남도 지역에서 병력을 모으고 친일 군수를 처단하였다. 제천으로 돌아와서는 가흥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주로 충주의 앙성면 또는 소태면 쪽에서 관군과 접전하였다.
호좌의진이 근거지인 제천을 빼앗긴 이후 음성에 주둔하고 있을 때정인설과 함께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어 의진을 위기에서 구하였다. 제천 의병의 서행 과정에 신지수(辛芝秀)와 함께 앞장섰는데, 먼저 압록강을 건넜다 청나라로부터 무장 해제를 당하였고, 호좌의진을 맞으러 초산으로 다시 나왔다가 관군에게 잡혀 부하 20여 명과 함께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