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 있는 만수봉 동사면에서 발원하여 수산면 수산리를 거쳐 한수면 탄지리에서 청풍호로 흘러드는 하천. 광천은 어래산[815m] 서쪽에 있는 너부내[넓은내]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그 뜻은 어래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북서류하여 합류하는데 그 지점이 다른 지역보다 넓어서 붙여진 것이다. 광천은 월악산 국립공원의 동쪽 사면에 있는...
-
1894년(고종 31) 청일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일제는 다음 해인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후 친일 내각을 앞세워 조선 정부에 ‘내정 개혁’을 강요하였다. 또한, 11월에는 단발령을 시행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는데,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저명한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가 강학하던 제천의 장담서사(...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호선(權灝善)[?~1897]은 청풍에 살던 선비이다. 호좌의진이 중부 권역의 20개 고을을 관장하던 충주부를 공략할 때 활약하였다. 당시 호좌의진의 주력 부대는 박달재를 경유하여 공격하였는데, 권호선은 신지수(辛芝秀)·조달승(曺達承) 등과 함께 별동 부대를 거느리고 청풍 쪽을 돌아서 충주성을 공략하였다. 충주를 빼앗기고 제천으로...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삼척(三陟). 본명은 김상호(金尙鎬), 자는 경륙(景六), 호는 백우(白愚). 아버지는 김병규(金丙奎)이다. 김상태(金尙台)[1862~1911]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후 영월의 옥동으로 이주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강년(李康秊)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북상한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좇아...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수동(金壽童)[1885~1910]은 단양의 영춘면 동대리 수발마을에 살았으며, 군대 해산 이후 의병 운동에 투신하였다. 1907년(순종 1) 9월 이강년(李康秊) 부하로 의병 활동을 시작하여 그해 말까지 문경·단양·영춘·영월 등의 군내에서 양식과 짚신 등 군수 물자를 징발하는 일을 하였다. 갈평·영월·장현(獐峴)·영춘 지구 전투...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김철상(金喆相)[1878~1966]은 본관이 영양(英陽)으로, 경상북도 용궁 사람이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내리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을 좇아 의병 운동에 가담하였다. 마고성(麻姑城) 전투 이후 의진이 힘을 떨치지 못하게 되자 제천으로 옮겨 호좌의진과...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큰 밭이 있어 한밭 또는 한밭들이라 하였고 한자로는 대전(大田)으로 표기하였다. 예부터 골이 깊어 새말, 한밭들, 라계곡, 뒤싯골, 성담, 새터, 갈문이, 임간리, 내곡, 단지곡, 구람재, 방아다리를 일컬어 열두대전이라 하였다. 조선 말 청풍군 원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제천군 수산면 대전리가 되었다. 1980년...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산.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맏딸 덕주공주가 은둔하면서 불교에 귀의하여 덕주사를 창건하고 상 덕주사지에 마애불을 조성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면서 월악산 일원에 덕주공주의 이름을 딴 지명이 생겨났다. 덕주봉은 본래 무명의 산봉우리였으나 최근에 들어 덕주사와 마애불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덕주봉이라는 이름...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서 제천 덕주사 마애 여래 입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는 신라가 패망한 후 월악산에 머물던 마의태자(麻衣太子)는 미륵사의 불상이 되었고, 덕주공주(德主公主)는 덕주사(德周寺)의 마애불이 되었다고 하는 불상조성담이다. 한수면 송계리에는 덕주사와 보물 제406호로 지정된 제천 덕주사 마애 여래 입상(...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덕산면 월악리에 걸쳐 있는 산. 산 밑에 있는 만수계곡의 이름을 따서 만수봉이라 하였다. 만수(萬壽)는 이름 그대로 산천에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며 자연의 혜택을 두루 입으며 천수를 누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만수봉은 높이 983.2m로 백두대간에서 주능선을 따라 마골치에서 서북서쪽으로 약 1.9㎞ 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덕산면 월악리에 걸쳐 있는 산. 산 밑에 있는 만수계곡의 이름을 따서 만수봉이라 하였다. 만수(萬壽)는 이름 그대로 산천에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며 자연의 혜택을 두루 입으며 천수를 누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만수봉은 높이 983.2m로 백두대간에서 주능선을 따라 마골치에서 서북서쪽으로 약 1.9㎞ 지...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도기리와 단양군 단성면 벌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忠原縣) 산천조에는 “모녀현(毛女峴)은 충원현의 동쪽 80리에 있다. 대미산(帶美山)에서 나온다. 전해오는 말에 신녀(神女)가 음식을 먹지 않고 옷을 입지도 않았으며, 전신에 털이 나서 매우 길었는데, 산등성이를 넘고서 산을 넘는다고 한다[毛女峴在東八十里 帶美...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에 걸쳐 있는 산. 일명 ‘문수산’으로 불리는 문수봉(文繡峰)은 문헌을 통해 지명의 유래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남쪽에 연결되어 있는 대미산(大彌山)[1,115m]의 존재를 통해 불교 신앙, 즉 문수보살(文殊菩薩)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도 있다. 문수봉은 월악산 국립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최고봉으로 높이는...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봉래(鳳來), 호는 우초(愚樵). 민순호(閔舜鎬)[1880~1965]는 경상북도 문경군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있은 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이강년(李康秊)을 따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민순호는 전 재산을 기울여 군자금을 마련하며 의병을 규합하였다. 문경에서 패전한...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한학자이자 순국 열사.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박세화(朴世和)[1834~1910]는 함경도 고원에서 태어나, 일찍이 성인의 학문에 뜻을 두어 23세 때 영흥에서 강학하던 홍직필의 제자인 이사현(李思峴)에게 나아가 10년간 학업을 익혔다. 40대 이후에는 안변, 평강, 회양, 양구...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과 한수면에서 월악산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백성을 도운 월악산신」은 고려 때에 몽고군이, 임진왜란 때에 왜군이 쳐들어왔을 때도 덕산면과 한수면 경계에 있는 월악산성으로 몰려왔던 피난민들은 월악산신의 보호로 무사히 전란을 피할 수 있었다는 당신화(堂神話)이자 신이담이다. 한수면 송계리 쪽의 월악산 산기슭에는 월악사지(月岳祠址...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복초(復初). 서상업(徐相業)은 제천시 수산면 대전리에서 살았다.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 이후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李康秊) 의진의 좌종사로서 가담하였다. 주로 의병을 후원하는 일을 하였는데, 제천·단양·문경 일대 작전에도 참여하였다....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팽개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선고리 팽개바위 유래」는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신립(申砬)[1546~1592]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바위 멀리 던지기로 내기를 하여 우리 편이 던진 바위가 지금의 선고리 고목고개까지 날아와서 조선이 이겼는데, 그때 던진 바위가 ‘팽개바위[投石]’라는 암석유래담이다. 현재...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신기영(辛基泳)[1858~1907]은 제천시 청풍면 상천리에 살던 선비로, 1907년(순종 1) 군대가 해산되고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주로 소백산 일대의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는데, 1907년 예천의 대평(代坪)시장에서 문경 수비대와 경찰의 토벌대가 싸울 때 참여하였다가 14명의 부하와 함께 전사하였다....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이강년 의진의 대장 참모로 활동한 신명희(辛明熙)가 조카이다. 신숙(辛橚)[1843~1926]은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의병을 일으킨 동향의 이강년(李康秊)을 좇아 의병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강년이 제천 의진의 유격군으로 합류한 후에는 수안보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순종...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열경(悅卿), 호는 도암(島菴). 신태식(申泰植)[1864~1932]은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내부 주사(內部主事)와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질 때 문경의 농암 장터에서 일본군 밀정을 총살하면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96년(고종 33) 아관 파천 이후 고종이 의병을 해산하라는...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 신태원(辛泰元)[?~1907]은 본관이 평산(平山)이며, 제천 청풍의 한양지마을에 살던 선비로 이강년(李康秊)의 오랜 동지였다. 1907년(순종 1) 봄, 이강년이 의병을 일으켰다가 큰 부상을 입었을 때 숨겨 주고 치료해 주었다. 그해 여름에 군대가 해산되고 고종이 강제 퇴위하였을 때 이강년이 다시 봉기하자 후군 부대를 이끄는 장수가 되어 경...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안춘흥(安春興)[1883~?]은 지금의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살았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던 때 다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합류하여 종군하였다. 새로 들어온 병사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는 교련관(敎鍊官)으로 활동하였는데, 주로 이강년 부대의 후군장인 신태원(辛泰元)의 휘하에 있었다....
-
1984년 12월 31일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 중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악산 국립공원은 2개 도[충청북도·경상북도], 4개 시·군[제천시·충주시·단양군·문경시], 9개 읍면, 34개 리에 걸쳐 있다. 북으로는 청풍호가 월악산을 휘감고, 동으로 단양팔경과 소백산 국립공원, 남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 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둘러싸고 있다. 월악산은...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신현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고려 시대의 포곡식 산성. 와룡산성은 해발 527.5m의 능선을 서북벽으로 삼아 남동쪽의 계곡을 둘러싼 형태로, 전체 둘레는 2,750m이다. 와룡산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지표 조사를 하여 산성에 대한 개략적인 현황을 파악할...
-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을 재건하여 정미의병을 이끈 의병장 이강년의 문집. 이강년(李康秊)[1858~1908]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岡)이다. 문경군 가은면[현 문경시 가은읍] 출신이다.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을미사변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문경·조령 등지에서 활약했다. 1962년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충청북도 제천에서 의병을 재건하여 정미의병을 이끈 의병장 이강년의 문집. 이강년(李康秊)[1858~1908]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岡)이다. 문경군 가은면[현 문경시 가은읍] 출신이다.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을미사변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문경·조령 등지에서 활약했다. 1962년 건국 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원대리에 있던 고려 시대~조선 시대 권일원(權一院) 터. 권일원이 있었던 곳은 단양과 청풍의 접경 지역으로, 계란치[230m]에서 서쪽 청풍강과 함께 육로의 분기점으로 교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죽령대로는 수산역과 황강역을 경유하여 충주로 통하는 길목으로 지금의 국도 36호선이 통행하는 큰길가에 목조와가를...
-
송계리는 제천시 한수면의 면소재지다. 한수면사무소는 원래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공사로 인해 1984년 6월 송계리로 이전하였다. 제천에서 충주 수안보 방향으로 청풍호를 끼고 가다가 월악교가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산자락에 송계리가 위치한다. 또 충주 수안보에서 제천 방향으로 닷...
-
송계리는 제천시 한수면의 면소재지다. 한수면사무소는 원래 제천시 한수면 황강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충주댐 공사로 인해 1984년 6월 송계리로 이전하였다. 제천에서 충주 수안보 방향으로 청풍호를 끼고 가다가 월악교가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월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산자락에 송계리가 위치한다. 또 충주 수안보에서 제천 방향으로 닷...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유계형(柳桂馨)[1877~?]은 제천의 덕산면 선림동(仙林洞)에 살던 상인이다. 군대 해산 이후 제천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조동규의 부하로 종군하여 문경·예천 등 소백산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된 뒤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개항기 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군서(君瑞), 호는 회당(晦堂). 윤응선(尹膺善)[1854~1924]은 학행(學行)으로 이름이 높아 1889년(고종 26)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주역』를 공부하던 40세에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를 만났다. 윤응선은 본래 양평 출신인데, 병인양요 이후 조부를 따라 청풍 장선으로 이주하였...
-
개항기 박세화(朴世和)가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에 대해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제천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했던 의병장이자 학자 의당 박세화[1834~1910]는 일찍부터 화서학파의 유중교와 교유를 가졌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리고 명성왕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논의하다 붙잡혀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05년...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좌경(佐卿), 호는 창주(蒼洲). 아버지는 이강년(李康秊)이다. 이승재(李承宰)[1881~1917]는 문경에서 태어났다. 단발령 이후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날 때 부친을 좇아 의병에 가담하여 서상업(徐相業) 등과 부친을 보좌하였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상황이 닥쳤을 때 의병...
-
개항기 제천 전투에 참가한 관동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진(共振), 호는 중남(重南). 일명 이준영(李竣榮) 이인영(李麟榮)[1867~1909]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내룡리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발표된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날 때 원주에서 봉기하여 주로 여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과 힘을...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장. 이중봉(李重鳳)[1871~1896]은 본관이 달성(達成)으로, 청풍 도화동(桃花洞)에서 살았다. 1907년 여름 고종이 강제로 물러나고 군대가 해산되는 상황에 분노하여 수많은 의병 부대가 봉기할 때 의병 운동에 참여하였다. 제천에서 의병을 주도하였던 이강년(李康秊)의 휘하에 참여하여 후군장 및 중군장의 소임을 맡았으며, 이후...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증약(曾若), 호는 순초(筍樵). 아버지는 임백헌이다. 이름의 한자 표기가 족보에는 석준(晳準), 『창의사실기(倡義事實記)』에는 석준(奭準)으로 나오는데,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과정에서 철준(哲準)으로 표기되었다. 임석준(任晳準)[1851~1907]은 지금의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서 태어났다. 학문에 뜻을...
-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충청북도 제천시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말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통합을 공고히 하고 지방 세력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명나라 진출을 명분으로 내세워 조선에 대한 침략 전쟁을 감행하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1592년 4월 13일 일본의 부산포 침입으로 개시된 임진왜란은 초기...
-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장락사지에 있는 통일 신라 때의 모전 석탑. 장락사지는 제천시 장락동 65-2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사역의 남쪽에는 보물 제459호인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이 서 있다. 장락사지는 충청대학 박물관에서 2003년 한 차례 시굴 조사를 실시하고 2004년~2008년까지 3차에 걸쳐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장락사지는 삼국...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 조동교(趙東敎)[1878~1907]는 본관이 한양(漢陽)이다. 진위대(鎭衛隊) 소속으로 1907년(순종 1) 군대가 해산되자 6월에 박여성(朴汝成)과 의병을 일으켜 그 휘하에서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박여성 부대에서 독립한 것으로 보이는데, 청풍 의병 대장으로 일컬어졌다. 1907년 8월 15일 일본군이 제천으로 들어왔을 때, 이강년(李...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성암리에서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를 연결하는 일반 지방도. 지방도 534호선은 총연장 29㎞에 2차로 17.6㎞와 미개통도는 11.4㎞로 되어 있다.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에서 모녀재 도경계까지의 미개통도[2.6㎞]를 포함하고 있다. 제천시 덕산면 성암리에서 성천 변에 2차선으로 도기리까지 개통하면서 북동쪽으로 수산면 대전리로 향하는 군도...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채찬(蔡燦)[?~1924]은 일명 백광운(白狂雲)이라 불렸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일이 이어지자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을 좇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여러 해 동안 소백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10년 국권 피탈 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영양(潁陽). 자는 선경(善慶). 천보락(千普洛)[1852~1908]은 문경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 이후 동향 사람인 이강년(李康秊)을 좇아 봉기하여 친일 지방 관료를 공격하였다. 문경에서 의병 활동이 여의치 않아 북상한 이강년이 제천 호좌의진의 유격장으로 참여하자 함께 이동하여 수안보와 조령 등지에서 활동하였...
-
제천 시내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중앙동. 사람들이 깨어 날 시간 중앙동의 여기저기에서 문이 열린다. 하루를 시작하는 중앙동 사람들의 분주함이 이곳 중앙동 시장에 숨을 불어 넣는다. 제천이 1980년 시(市)로 승격되기 이전부터 중앙동은 제천의 중심가였고, 지금도 여전하다. 더군다나 중앙동과 가까운 곳에 제천역과 제천고속버스터미널이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이기...
-
조선 후기 신부.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어릴 때 이름은 최정구(崔鼎九)이다. 충청남도 청양에서 천주교 신자인 최경환(崔京煥)[프란치스코]과 이성례(李聖禮)[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최양업(崔良業)[1821~1861]는 1836년(헌종 2) 프랑스 신부인 모방(Maubant)에 의해 김대건(金大建)·최방제(崔方濟)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에...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하 덕주사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 부도 4기. 하 덕주사지 요사채에서 서쪽으로 80m 거리의 남향 대지에 하 덕주사지 부도가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부도 4기와 현대에 조성된 부도 2기이다. 이 중 조선 시대 부도의 탑신석에는 ‘환적당(幻寂堂)’, ‘부유당(浮游堂)’, ‘용곡당(龍谷堂)’, ‘홍파당(洪波堂)’이라는 명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