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080 |
---|---|
한자 | 趙東敎 |
영어음역 | Jo Donggy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
[활동 사항]
조동교(趙東敎)[1878~1907]는 본관이 한양(漢陽)이다. 진위대(鎭衛隊) 소속으로 1907년(순종 1) 군대가 해산되자 6월에 박여성(朴汝成)과 의병을 일으켜 그 휘하에서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박여성 부대에서 독립한 것으로 보이는데, 청풍 의병 대장으로 일컬어졌다. 1907년 8월 15일 일본군이 제천으로 들어왔을 때, 이강년(李康秊)·민긍호·정대무·오경묵(吳敬默) 등의 의진과 연합하여 4시간여 동안 교전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이후 이강년 의진과 연합하여 충주를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9월에 문경 지구에서 이강년·이명상(李明相)·이인영(李麟榮) 부대와 함께 수차례 공동 작전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조령에서 수비하던 병사들을 무단 철수시키는 바람에 이인영이 이끄는 원주 의진이 피해를 입었고, 부하들의 군기를 엄히 통제하지 못하여 몇 차례 다른 의병 부대와 갈등을 벌였다. 의병 사이의 갈등은 청풍 의진이 단양의 묵석동에서 일본군에 패하여 이강년 의진의 절제를 받게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결국 영월의 장릉 부근에 주둔하던 9월 말 청풍 의진이 분실한 무기를 호좌의진이 차지한 일 때문에 충돌이 생겨 이강년에게 처형되었다. 이는 군기를 엄하게 다루었던 보수적 유생 출신의 의병 부대와 군대 해산 이후에 의병 대열에 합류한 의병 부대 사이의 갈등으로도 이해된다.
[상훈과 추모]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