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권도연(權道淵)[1886~1910]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1908년(순종 2) 여름 이강년(李康秊)이 체포된 이후, 이강년의 뒤를 이어 호좌의진을 이끈 김상태(金尙台)의 휘하에서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주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접경지대인 소백산 일대에서 전개된 일본군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 3월 초 단양...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권영선(權永先)[?~1908]은 1908년(순종 2) 1월 초 제천시 봉양읍 명암리에 거주하던 중 김윤학(金潤學), 이근백(李根伯), 이동인 등과 의병 장비를 감추고 있다가 영천 수비대에게 발각되면서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운학동[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에서 총살되었다. 당시 제천에서 활동하던 의병 주력 부대는 1907년(순종 1) 말 북상하였...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로(敬魯), 호는 청은(淸隱). 권용일(權用佾)[1884~1971]은 제천시 한수면 덕곡리 딱밭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장으로 일하던 18세 때 청풍의 일본군 헌병 주재소에서 할당하는 마초(馬草)의 감면을 요구하다가 질책을 받자 헌병들을 구타하고 주재소에 불을 지른 뒤 도망쳤다. 이후 행상을...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금성면 성내리, 단양군 적성면 상리에 걸쳐 있는 산. 본디 이름은 백운산이었으나 조선 중기 단양 군수로 있던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몹시 아름다운 이곳의 가을 경치에 감탄하여 금수산(錦繡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양군조에 인용된 김일손(金馹孫)[...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삼척(三陟). 본명은 김상호(金尙鎬), 자는 경륙(景六), 호는 백우(白愚). 아버지는 김병규(金丙奎)이다. 김상태(金尙台)[1862~1911]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으며, 장성한 후 영월의 옥동으로 이주하였다. 단발령 이후 이강년(李康秊)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고, 호좌의진이 북상한 이후 유인석(柳麟錫)을 좇아...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군대 해산 후에 제천에서 활동하던 의병의 주력 부대가 1907년(순종 1) 말 북상하고, 이후 일본군 수비대와 맞서는 의병 활동이 소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될 무렵 일본군은 의병들의 ‘귀순’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한편, 의병 및 의병 협조자들에게 강력한 탄압을 가하였다. 김윤학(金潤學)[?~1908]은 1908년(순종 2) 1월 초 제천시 봉...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삼궁(三弓), 호는 시백(時伯). 형으로 김현갑(金顯甲)과 김현장이 있다. 김현세(金顯世)[1886~1950]는 강원도 정선 출신이다. 포수 생활을 하던 형 김현갑이 이강년(李康秊)의 중군장인 김상태(金尙台) 의진에 참여하였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가자 이를 구해 내고, 둘째 형 김현장이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자 대신 종...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연곡리와 읍리에 걸쳐 있는 산. 청풍부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산이라 하였다. 남산은 청풍부 주산의 진산이자 안산인 명산이며 사직단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남산은 곧 청풍부의 안산으로 소백산에서 온 산맥으로 비봉산 동쪽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남산은 높이 187.6m로 북북서쪽에 대덕산[580m...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와 단양군 적성면 하원곡리에 걸쳐 있는 산. 동산은 충주댐 건설 이전 청풍 동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동산은 옥천계와 조선계 지층 사이의 서창리층과 천등산층 사이 금수산 규암층의 규암과 석영편암을 기반암으로 한 산으로 금수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학고개와 새목재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동산...
-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 있는 자연 휴양림. 박달재는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전설로 남아 있는 곳이다. 1216년(고종 3)에 10만의 거란군을, 1258년(고종 45)에 몽골군을 물리친 전승지로서 조상의 얼을 되새길 수 있는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박달재 자연휴양림은 주론산[903m]과 시랑산[691m] 사이에...
-
고구려·백제·신라가 정립했던 시대의 제천 지역의 역사 고구려·백제·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했던 시기부터 고구려 멸망(668년)까지의 시기에 제천 지역은 삼국의 접경지로 남한강을 둘러싼 영토 쟁탈의 중요한 전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직접적인 자료는 없지만 남한강 강변에 분포하고 있는 돌무지무덤 등을 통해 볼 때, 삼국 중 제천 지역에 가장 먼저 진출한 것은 백제로...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송계계곡에서 널리 알려진 여덟 군데의 명승지. 송계팔경은 송계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월악영봉(月岳靈峰), 자연대(自然臺), 월광폭포(月光瀑布), 수경대(水鏡臺), 학소대(鶴巢臺), 망폭대(望瀑臺), 와룡대(臥龍臺), 팔랑소(八娘沼) 등의 아름다운 8개의 경승지를 일컫는다. 충청북도에는 팔경과 구곡, 2대 산수 문화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제...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송계계곡에서 널리 알려진 여덟 군데의 명승지. 송계팔경은 송계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월악영봉(月岳靈峰), 자연대(自然臺), 월광폭포(月光瀑布), 수경대(水鏡臺), 학소대(鶴巢臺), 망폭대(望瀑臺), 와룡대(臥龍臺), 팔랑소(八娘沼) 등의 아름다운 8개의 경승지를 일컫는다. 충청북도에는 팔경과 구곡, 2대 산수 문화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제...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장. 신기영(辛基泳)[1858~1907]은 제천시 청풍면 상천리에 살던 선비로, 1907년(순종 1) 군대가 해산되고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자 의병을 일으켰다. 주로 소백산 일대의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는데, 1907년 예천의 대평(代坪)시장에서 문경 수비대와 경찰의 토벌대가 싸울 때 참여하였다가 14명의 부하와 함께 전사하였다....
-
개항기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열경(悅卿), 호는 도암(島菴). 신태식(申泰植)[1864~1932]은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내부 주사(內部主事)와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단발령이 내려질 때 문경의 농암 장터에서 일본군 밀정을 총살하면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96년(고종 33) 아관 파천 이후 고종이 의병을 해산하라는...
-
1984년 12월 31일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 중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월악산 국립공원은 2개 도[충청북도·경상북도], 4개 시·군[제천시·충주시·단양군·문경시], 9개 읍면, 34개 리에 걸쳐 있다. 북으로는 청풍호가 월악산을 휘감고, 동으로 단양팔경과 소백산 국립공원, 남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 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둘러싸고 있다. 월악산은...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원덕상(元德常)은 본관이 원주(原州)이며, 지금의 제천시 봉양읍에서 살았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지금의 단양군 어상천면 연곡리 출신의 양반으로 친척인 보산에 살던 의병론자 원도상(元道常)과 왕래하면서 기맥을 통하였다. 의병 활동을 하면서부터 이름을 원건상(原建常)으로 고쳤다고 한다. 1905년(고종 42) 원용팔(元容八)이...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덕산면, 충주시, 단양군, 경상북도 문경시에 걸쳐 있는 산.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고 하여 월악산이라 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월형산이라 하였고, 후백제 견훤이 이곳에 궁궐을 지으려다 무산되어 와락산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명산은 월악이요[신라에서는 월형산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
-
6·25 전쟁 전후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있는 월악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공산 게릴라. 해방 이후 6·25 전쟁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남한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는 좌우 갈등이었다. 이러한 좌우 갈등이 가장 격렬하게 표출된 것이 빨치산 문제였다. 제천 지역에서는 1946년 가을부터 좌익 세력이 모험 노선으로 치닫게 되고, 제천이나 충주에서 미군정에 반대하여 봉기했던 이들이 경찰의...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유계형(柳桂馨)[1877~?]은 제천의 덕산면 선림동(仙林洞)에 살던 상인이다. 군대 해산 이후 제천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조동규의 부하로 종군하여 문경·예천 등 소백산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된 뒤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윤용구(尹容九)는 제천에 살았으며,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 이후에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10월 영월 거석리에 의진이 주둔하였을 때 우선봉장인 백남규(白南奎)가 일시 휴가를 얻어 귀가하게 되어 부대 지휘부를 개편하였는데, 이때에 독전장(督戰將)에 임명되었다. 이후 단양·영춘 등 소백산...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仁·樂寅), 호는 운강(雲崗·雲岡).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다. 이강년(李康秊)[1858~1908]은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면 도태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3월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 선전관이 되었으나, 개화 정책에 불만을 갖고 낙향한 이후 잠시 동학 조직과 관련한 의병을 이...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이근백(李根伯)[?~1908]은 1908년(순종 2) 1월 초, 제천의 명암리에 거주하면서 권영선(權永先)·김윤학(金潤學)·이동인 등과 의병의 무기를 감추고 있었는데, 이 일이 영천 수비대에 발각되는 바람에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운학동[현 제천시 백운면 운학리]에서 총살되었다. 당시 제천은 군대 해산 후 제천 의병의 주력 부대가 1907년(순종...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해수(海水), 호는 산재(汕齋). 아버지는 이부의(李孚儀)이다. 이만원(李萬源)[1867~1943]은 박세화(朴世和)에게 배웠는데, 국운이 기울자 월악산에 들어가 병서를 읽으며 의병 봉기의 뜻을 품었다. 단발령 이후에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였을 때 제천을 중심으로 봉기한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참여하여 이강년...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이용업(李龍業)[1860~1909]은 영춘 어상천 사기막에 살던 농민으로,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봉기한 수많은 의병 부대 중에서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가담하여 포군으로 활약하였다. 영춘·제천·충주·단양 등 소백산 자락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고...
-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인문 지리는 인간 활동에 의한 모든 현상을 말한다. 특히 인간이 자연의 요소를 활용하여 생겨나는 것들을 말한다. 제천은 예부터 강원도와 경상북도, 충청북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중앙선, 충북선, 태백선의 교차 지역으로서 철도 교통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국도의 활성화와 더불어 도로 교통의 중심지 역할도 해내고...
-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증약(曾若), 호는 순초(筍樵). 아버지는 임백헌이다. 이름의 한자 표기가 족보에는 석준(晳準), 『창의사실기(倡義事實記)』에는 석준(奭準)으로 나오는데,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과정에서 철준(哲準)으로 표기되었다. 임석준(任晳準)[1851~1907]은 지금의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서 태어났다. 학문에 뜻을...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와 포전리에 걸쳐 있는 산. 작성산은 이웃의 동산과 함께 중부권에서는 작성산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이곳 사람들은 이를 까치성산으로 부르고 있다. 까치성산이 최근까지 발간되는 모든 지표상에 작성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지형도를 만들면서 한자 표기인 까치 ‘작(鵲)’자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까치성산에는 다음과...
-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 정연철(鄭淵哲·鄭蓮哲·鄭連哲)은 대한제국 군대의 상등병 출신이다. 1907년(순종 1) 군대 해산 이후 이강년(李康秊) 부대에 참여하여 후군장·우익장 등 전투 부대장을 맡았다. 12월 16일 영춘 복상골 전투 이후 의진이 북상하자 중군장 김상태(金尙台) 진영과 함께 뒤에 남아 영춘 지역의 소백산 일대를 중심으로 봉화 방면으로 진출하여 계속 활...
-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제천 출신의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 채찬(蔡燦)[?~1924]은 일명 백광운(白狂雲)이라 불렸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는 일이 이어지자 의병대장 이강년(李康秊)을 좇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여러 해 동안 소백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10년 국권 피탈 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