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660
한자 鶴洞八距離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최소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36년연표보기 - 광주천 정비를 위해 학동팔거리 조성
변천 시기/일시 1946년 - 학동팔거리 인근에 백화마을 조성
변천 시기/일시 1992년 - 학동팔거리 판잣집 철거 후 백화아파트 준공
변천 시기/일시 2008년 - 학동팔거리 백화마을 재개발
변천 시기/일시 2011년 - 학동팔거리 학2마을아파트 준공
변천 시기/일시 2015년 - 학동팔거리 광주백범기념관 개관
성격 교차로
면적 약 39,669㎡

[정의]

일제 강점기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었던 광주천 정비를 위해 만든 방사형 거리.

[개설]

학동팔거리(鶴洞八距離) 지역은 1930년대 생활이 어려운 자들의 자립을 조선총독부가 경제적·사회적 수단을 동원해 돕는 명목으로 물리적 생활공간[갱생지구]을 마련해 준 곳이나, 실질적으로는 부랑자들을 관리 감독하기 쉬운 주거공간 체계로 흡수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공동우물을 중심으로 원심에서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방사형 팔거리는 특이한 가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즉, 장방형 단지의 중앙에 하나의 팔거리를 두고, 단지의 네 모서리 부분에 각각 하나씩 네 개의 팔거리를 두어 도합 5개소에 팔거리를 배치한 것이다. 이러한 팔거리 모습은 갱생지구 주요 구성 통제와 감시 기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덤(Jeremy Bentham)이 설계한 일망 감시 시설인 파놉티콘(Panopticon)의 기본 개념을 차용하여 나타낸 것이다.

[형성 및 변천]

1930년대의 일제 치하 전라남도 광주에서 이루어진 국가 정비 사업 중 하나인 궁민(窮民) 구제 토목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광주천이 홍수로 범람하여 광주천변의 부랑자들의 생활공간이 없어지게 되자, 1936년 일본인 스기야마[杉山]가 전라남도 광주부 학강정(鶴崗町)에 12,000평[약 39,669㎡]의 부지를 사서 갱생지구를 조성한 후 광주천변의 부랑자들을 집단으로 이주시켰다. 이는 학강정 지역을 생활 갱생의 특정 지도 구역으로 삼아 부랑자들을 관리하고 감독하기 쉬운 주거 공간 체계 내에 살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1937년 도시 간이학교를 설치하고 면서기를 주재시켜 우범 계급을 조사하고 지도하였다. 1937년 말 이주민은 280여 호였고, 거주민의 직업·생활 정도·가족사항·노동역량을 조사하여 생활 갱생을 위한 다양한 조직[호주회, 부인회, 근로조합, 저축조합 등]을 만들어 지도하였다.

광복 이후 1946년 김구(金九)[호는 백범(白凡)]가 광주천변 피난민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마을을 조성하였는데, 모든 가구가 화목하게 지내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백화(百和)마을로 지었다. 1991년 주거 환경 개선 지구로 판잣집들이 철거되고, 1992년 165가구의 백화아파트가 들어섰다. 2008년 주거 환경 개선 사업으로 백화아파트는 그대로 두고 철거 공사에 착수하였고, 2011년 학2마을아파트가 들어섰다.

[현황]

광주광역시와 대한주택공사 광주전남지역본부[지금의 한국토지주택공사 광주전남지역본부]가 사업비 1280억 원을 투입하는 광주광역시 동구 학2지구 주거 환경 개선 사업으로 2008년부터 철거 공사를 시작하였다. 광주광역시는 김구의 뜻을 좇아 백화아파트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 지역은 철거한 뒤, 2011년 옛 학동팔거리 인근에 학동역사공원을 조성하였고, 학2마을아파트가 준공되었다. 2014년 광주백범기념관이 건립되어 학동팔거리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6.28 내용변경 [형성 및 변천] 100가구→모든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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