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2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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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正斗 |
영어공식명칭 | Choe Jeongd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보라 |
[정의]
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을 주도한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최정두(崔正斗)[1898~1930]는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 양산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북구 양산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5일 서울에서 유학 중이던 최정두는 전라남도 광주로 내려와 독립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제안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만세 시위를 지휘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5일 서울에서 유학 중이던 최정두는 서울 3.1운동에 참가하였던 김철(金鐵)[김복현(金福鉉)]과 함께 전라남도 광주로 내려와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남궁혁(南宮赫) 목사의 집에 모인 동지들에게 서울의 만세 시위 정황을 전달하고, 광주에서도 독립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제안하였다. 최정두는 「독립선언서」, 태극기, 격문, 「독립가」를 인쇄하는 등 시위 준비를 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2시경 숭일학교 학생의 나팔 소리를 신호로 기독교인,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 및 일반 주민들이 부동교 아래 작은장터로 몰려나왔고, 시위 군중은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최정두는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만세 시위를 지휘하던 중 체포되어 1919년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최정두는 1930년 1월 2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