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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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證心寺梵字七層石塔 |
영어공식명칭 | Brahmi Script Seven-story Stone Pagoda of Jeungsimsa Temple |
이칭/별칭 | 증심사 칠층석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운림동 56]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염승훈 |
이전 시기/일시 | 1930년 초반 - 증심사 범자칠층석탑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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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2003년 - 증심사 범자칠층석탑 이전 |
현 소재지 | 증심사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운림동 56] |
성격 | 석탑 |
재질 | 석재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증심사오백전 오른쪽에 있는 조선시대 석탑.
[개설]
증심사 범자칠층석탑(證心寺梵字七層石塔)은 새로 만들어진 1매의 판석(板石) 위에 7층의 탑신이 있는 석탑이다. 증심사오백전(證心寺五百殿) 오른쪽에 증심사오층석탑(證心寺五層石塔)과 나란히 있다. 증심사 범자칠층석탑은 원래 광주 대황사(大皇寺)에 있었다. 1930년 초반에 증심사로 옮겨진 증심사 범자칠층석탑은 2003년 이전까지는 증심사오백전 남쪽에 증심사석조보살입상(證心寺石造菩薩立像)과 나란히 세워졌었다. 2003년 증심사오백전을 해체·보수하면서 여러 곳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증심사오백전 오른쪽에 있다.
[위치]
[형태]
증심사 범자칠층석탑은 새로 만들어진 1매의 판석이 기단을 대신한다. 탑신부에는 층마다 다른 범자문(梵字文)이 새겨졌고, 상륜부에는 7층 옥개석(屋蓋石)과 한 돌로 이루어진 커다란 연봉형(蓮峰形) 보주(寶珠)가 있다.
탑신은 7층이다. 탑신과 옥개는 모두 각각 한 돌로 이루어졌는데, 탑신에는 우주(隅柱)가 새겨진 대신 각 면에 가장자리에 방형의 액(額)이 돋을새김되었다. 그 안에 1층은 퇴화된 화문(花紋)을 돋을새김하였고, 2~7층은 층마다 각기 다른 범자(梵字)를 각 면에 가득하게 돋을새김하였다.
탑신 받침과 옥개 받침은 없다.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는 매우 완만하고, 전각의 반전은 급하다. 우동(隅棟)은 뚜렷하고, 전각의 끝과 거의 일직선이다. 처마 반전의 정도는 전각의 반전과 거의 비슷하다. 처마에는 간략하게 추녀를 모각(模刻)하였다.
[특징 및 평가]
증심사 범자칠층석탑은 고려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公州麻谷寺五層石塔)과 유사한 형식이지만,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에 비하여 전반적으로 많이 퇴화되었다. 『광주의 불적』과 『전남의 석탑』에서는 증심사 범자칠층석탑을 '라마탑[lama塔] 계통의 말기적 요소를 보이고 있다.'고 하였지만,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처럼 상륜부가 라마탑 형식을 취하고 있지 않다. 또한,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開城敬天寺址十層石塔)처럼 '아(亞)'자형의 평면이 아니므로 범자문이 새겨져 있다는 점만을 가지고 라마탑 계통으로 보는 것은 검토가 필요하다.
증심사 범자칠층석탑의 건립 시기는 조선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증심사 범자칠층석탑은 탑신부의 각 면에 범자문이 새겨진 귀중한 예이다. 옥개석의 처마에 간략하게 추녀를 모각한 것도 증심사 범자칠층석탑만의 독특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