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2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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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御來山說話 |
영어의미역 | The Tale of Eoraesan Mounta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안상경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전해지는 어래산(御來山)에 관한 설화.
[개설]
어래산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浮石面)과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下東面),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永春面)의 경계에 있으며, 높이는 1,064m이다. 설화의 주인공인 배극렴(裵克廉)[1325~1392]은 조선조의 개국공신으로,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진주, 상주의 목사를 역임하고 이후 이성계와 함께 여러 차례 왜구를 토벌하였다
[내용]
고려 공민왕으로부터 총애를 받던 배극렴은 왕의 시역 사건이 일어나자 정사에 뜻을 버리고 부인과 함께 충주 고을로 낙향하였다. 배극렴은 어래산 동굴로 찾아 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기로 다짐하고 머루, 다래 등을 따먹으며 살았다.
그런데 당시 좌우군도총사였던 이성계가 왕실을 한 손에 휘어잡게 되고, 자신의 정권을 위한 명분으로 고려 중신이었던 우현보(禹玄寶),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배극렴과 같은 사람들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을 고집하자 우현보와 이색은 하옥하였고, 정몽주는 격살하였다.
이성계는 배극렴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팔도 수령 방백에게 찾아내도록 명령을 내렸다. 우연히 배극렴이 충주 고을에서 은거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직접 배극렴을 찾아갔으나 첫 번째도 만나지 못하고 두 번째도 만나지 못하고 세 번째 가서야 동굴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배극렴을 만날 수 있었다. 배극렴을 만난 이성계는 앞으로의 집권 계획을 밝히고 협조해 줄 것을 간청하였고, 이를 들은 배극렴은 다시 정사에 나서서 개국공신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이성계가 친히 세 번씩이나 이곳을 찾아 왔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삼방리’라 하고, 그 산의 이름을 ‘어래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극렴이 나무를 하던 골짜기를 ‘배나무골’이라고 부르고, 이성계가 배극렴을 만나 국사를 의논했던 곳을 ‘국사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조선을 창건한 이성계가 직접 인재를 찾아 내려왔다는 내용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왕이 인재를 찾아오는 이야기가 전승된다. 배극렴 역시 이곳 출신의 인재로서 왕이 직접 찾아와 모셔갈 정도의 큰 인물이기 때문에 이에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