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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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遊鶴寺址 |
영어의미역 | Yuhaksa Temple Site |
이칭/별칭 | 장성리 사지,장성리 유학사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산 20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길경택 |
성격 | 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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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고려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산 20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장성리 부연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개설]
장성리 부연마을에는 유학사(遊鶴寺)라 전하는 사찰의 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삼층석탑, 석조여래불상 등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곳이라 도난이 염려되어 1994년 중원민속자료전시관(현 충주박물관)으로 옮겨 야외 전시를 하고 있다. 유학사라는 이름은 절 터가 있는 산이 유학산 자락이었기 때문인데, 기록이 전하지 않아 불분명하여 장성리 사지라 하여도 좋을 듯하다.
[변천]
유학사지의 변화에 대하여는 명문이나 문헌 기록이 없어 판단할 수 없으나 유학사지 삼층석탑이나 석불좌상을 통해서 고려시대에 조성된 사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주변에서 수습되는 기와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사찰의 운용은 고려 전기에 활발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 후기나 조선시대에 운용된 증거는 찾기 어려운데, 이는 대몽 항쟁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즉 다인철소민(多人鐵所民)들의 항쟁 결과 몽고군에게 승리를 거두어 익안현으로 승격했던 지역이 바로 유학사지가 있는 완오리, 본리, 장성리, 금곡리 지역이기 때문이다. 유학사지의 서쪽 400m 지점에 유학산성이 있다고 비정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위치]
유학사지의 북쪽에는 장성리 성종이 있고, 음성에서 충주로 가는 국도 3호선이 보인다. 유학사지의 서쪽에서는 대소원에서 괴산으로 통하는 514호선 도로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것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유학사지의 동쪽은 장성리 성종에서 계곡을 따라 부연마을에 도착하여 유학골을 따라 접근해야 한다.
[현황]
유학사지는 현재 수풀에 덮여 있으며 예전에는 밭농사를 지었으나 지금은 짓지 않고 있다. 1994년 유학사지 삼층석탑과 석불좌상이 옮겨진 후 흔적만이 남아 있고, 사지에서는 기와조각만이 발견된다. 사찰 터에 우물도 있었을 것이나 찾을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유학사지 삼층석탑의 부재 및 석불좌상의 두상이 결실되었지만 조각 수법의 당당함은 미술적 가치를 높인다. 또 유학사지의 400m 동쪽에 있는 테뫼식의 산성이 다인철소민의 항쟁 장소였다는 주장이 있어 주목된다. 정밀한 학술 조사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