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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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公耳里寺址 |
영어의미역 | Gongi-ri Temple Sit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 산 3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길경택 |
성격 | 사지|절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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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 산 32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 용장골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개설]
공이리는 살미면의 가장 남쪽에 있는 지역으로,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들어가는 입구가 좁고 길어 호로병 같은 형국이라 피난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햇볕이 잘 들고 따스하여 충주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감이 재배되던 마을이었다.
[변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정상부에 파괴된 석탑 1기가 있었다고 하였으나 현재는 석조물이 남아 있지 않고 공이동 사지 내에 와편만 흩어져 있다. 김희경의 「한국탑파의 사리장치에 대한 소고」에서 공이리 석탑 내에서 발견된 사리에 관하여 언급한 걸 보면 석탑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반출된 것으로 짐작된다.
[위치]
살미면 공이리 공이초등학교 정면에 있는 송정 새마을회관 앞을 돌아 용장골 쪽으로 올라가면 절터가 나타나는데, 산길을 500m 정도 더 올라가면 공이동 사지가 있다.
[현황]
현재 높이 3m, 길이 20m의 자연석 석축 위에 공이동 사지가 있는데, 와편만 드물게 보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공이동 사지 내에 사리가 들어 있는 석탑이 1기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이나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아 시대를 유추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이동 사지에서 수습되는 기와가 모두 조선시대의 것이라 현재까지는 조선시대의 사찰 터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