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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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自然災害 |
영어의미역 | Natural Disaster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집필자 | 조헌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기상 현상과 자연 현상 등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재해.
[개설]
충주 지방은 자연재해 중 한해·냉해·설해 등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주로 여름철 집중 호우와 태풍에 의한 피해가 대부분이다.
[풍수해]
충주는 풍수해가 많은 한강 유역 중부에 위치하여 대홍수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잦은 편이지만, 면밀히 기록된 것은 많지 않다. 현재까지의 기록에 의하면, 1920년 7월 5일의 경신년(庚申年) 호우는 중국에서 발생한 996mb의 저기압이 충주를 중심으로 중부 지방을 통과하면서 연일 많은 비가 내리게 한 데서 발생하였다. 그 결과 충주 338.2㎜, 제천 397㎜의 폭우로 가옥·교량·제방·농경지 등이 유실되고 많은 이재민이 나왔다.
1924년 7월 17일 갑자년(甲子年)에 일어난 폭풍우는 북태평양 저기압이 한반도로 세력을 확장해 비를 동반한 폭풍우가 내린 경우였다. 강수량은 단양 280.99㎜, 괴산 256㎜, 충주 250㎜였다. 그로 인해 교통이 두절되고 가옥과 농경지의 유실이 많았다.
1925년 7월 18일 을축년(乙丑年)의 대홍수는 한반도 곳곳을 휩쓸었던 폭풍우 중 하나였다. 필리핀의 루손섬 부근에서 발생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여 충주를 포함한 충청북도 내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이 14명, 가옥이 떠내려가거나 전파(全破)한 곳이 454호, 반파 333호, 침수 가옥 3,001호, 이재민이 11,148명에 이르렀다. 교량·제방·농경지 등도 많이 유실되었다.
1936년 8월 9일 무인년(戊寅年)에는 중국 동북 지방 헤이룽강 유역과 화북 지방에서 997mb의 저기압이 발생 남하하여 강우 전선의 중심부를 남한에 두고 5일간이나 상하 운동을 계속해서 많은 비를 쏟았다. 그리하여 한강·낙동강을 비롯한 남한의 모든 하천이 범람하여 막대한 피해를 냈다. 강우량은 충주 133㎜, 청주 190㎜, 옥천 220㎜, 괴산 222㎜, 단양 361㎜, 제천 475㎜에 달했다.
남한강과 달천의 합류 지점인 탄금대 부근에서는 달천과 요도천이 역류함으로써 강 연안 일대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충주를 비롯한 충청북도 내의 수해로 인한 피해는 사망과 행방불명 140명, 부상 82명, 가옥 파괴와 유실 2,178호, 침수 5,577호에 달하였고, 농경지의 유실이 막대했다. 우리나라 기상 관측사상 최대의 호우 피해였다.
1990년 9월의 한강 홍수시에는 충주댐 유역에 9월 9일부터 4일 동안 206㎜에서 665㎜에 달하는 호우가 집중되었다. 이 폭우로 충주저수지 최대 유입량이 약 21,000㎥/s에 달하였고, 9월 9일부터 10일 동안 총 유출량이 2,948MCM(106/㎥)을 기록하였다. 과거 홍수 분석 기준에 따르면, 충주댐 홍수는 500~1000년 빈도로 추정되었다.
[대책]
충주 지역에서의 극대 홍수 이후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부설 수자원연구소를 통하여 소양강 및 충주 다목적댐을 중심으로 1990년 9월 한강 유역의 대홍수에 대한 현장 조사 및 수문 분석을 수행함과 아울러 홍수 예측 및 제어 시스템에 대한 개선 연구를 즉시 착수하게 하였다.